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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이걸 Jan 07. 2024

선 넘오는 물건은 내 거다

마흔의 사랑1_초등학교 남자친구

“선 넘어오는 물건은 내 거다”

잊혔던 추억의 친구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원에서 수학수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학생들 중 누군가  속닥속닥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가 들려온다.  4학년 학생 두 명이 두 눈에 들어왔다. 

"공부에 집중하세요~"라고 말하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다시 공부에 집중하는가 하더니 옆 친구가 어려운 문제를 물어보았는지 문제풀이를 알려주려고 하는 듯 보였다. 수학선생님의 차가운 레이더에 잡힌 범인은 초등 4학년 남학생과 여학생이다. 두 학생은 학교가 끝나면 함께 하교를 한다. 용돈이 있는 날이면 학원건물 아래 CU편의점에 들러 간식을 사서 나눠 먹는다. 항상 둘 다 싱글벙글 밝다. 간식을 손에 들고 즐겁게 수학학원 문을 열고 들어온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둘 다 교실을 울릴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하는 해맑은 모습에 내 맘도 해맑아진다.  수업의 시작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사랑스러운 두 학생을 보면 차가운 레이더가 따뜻한 무지개로 변한다. 두 학생을 바라보면 남학생과 여학생이 이리 가깝게 잘 지낼 수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요즘은 남녀 절친도 꽤 많다.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오르는 날이다.

엄청 소심하고 말도 없고 수줍음 많던 어린 시절 나에게도 남사친(남자사람친구)이 있었다. 코로나로 요즘은 교실 좌석 배치가 한 줄로 앉는 1인석이 많지만 나의 어린 시절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에선 가로로 긴 2인용 나무책상이었다. 21세기 책걸상은 MDF에 무늬만 나뭇결의 판자를 붙인 가구들이지만 30여 년 전 초등학교엔 진짜 나무책걸상이었다. 나무에 사포질을 하고 린스칠을 하고 페인트를 바른 튼튼한 책상이었다. 2인용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꼭 짝꿍과 같이 앉아야만 했다. 그것도 남녀짝으로. 4학년시절 자리 바꾸는 날 새 짝꿍과 만났다. 밖에서 많이 놀아서인지 얼굴은 타서 까맣고 머리숱이 많은데 반곱슬이라서 머리가 더 풍성해 보였다. 빗질이 안되어서 까치집 같은 머리를 하고 옷은 허름했는데 같은 옷을 오래 입고 다니는 아이였다. 그 시절 책상에는 가운데 줄이 굵게 한 줄로 파여있었다. 옆 짝의 물건이나 몸이 넘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여기 넘어오면 안 돼." 나는 조금 꾀죄죄해 보였던 짝이 넘어오는 게 싫었다. 짝도 좋다고 했다. 어느 날 수업에 집중하다 내 지우개가 짝의 자리로 넘어갔다. 금을 넘은 것이다. 짝은 웃으며 

"금 넘어왔으니 이제 이 지우개는 내 거야."

"안 돼. 내놔."

짝은 도망을 갔다 나는 쫓아갔다. 그런데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너무 웃겼다. 쫓아가서 때렸는데도 짝은 웃으면서 약을 올렸다.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우린 그냥 그 상황이 놀이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우린 친해졌고 친구가 되었다.

서로 금을 넘으면 웃으면서 서로를 아프지 않게 때렸다. 까르륵 웃고 또 도망가고 쫓아가고를 했다. 그리고 웃으며 다시 자리로 돌아와 둘이서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마흔이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시간에 나의 어린 시절 웃음을 준 그 짝꿍이 그리워진다.  놀이처럼 서로 싸우더라도 화가 나지 않고 웃음이 나오는 놀라운 경험을 나에게 주었다. 놀리지만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 순수한 친구가 그립다. 서로 때리고 싸우는데 아프지 않고 웃으면서 싸움이 끝나는 마법 같은 일이 또 생겼으면 좋겠다.


마흔의 싸움은 신중해야 한다. 내가 싸움을 할 경우 상대와는 이제 다시 못 볼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니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대화로 마무리하고 감정적인 싸움은 절대 해선 안된다. 웃으며 한 한 마디에 상대가 상처받고 나를 험담하는 뒷얘길 듣는 일이 생기면 의도치 않게 나 또한 상처를 받는다. 친구라고 생각한 사람이 친구가 아닌 스쳐가는 인연으로 바라봐야 할 때도 많다. 특히 주의해야 하는 건 기분이 좋더라도 내 마음을 다 풀어버려서도 안된다. 서로 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금의 친구가 시간이 지나 멀어져도 그는 세월의 친구라고 믿고 헤어질 수 있어야 하는 마흔이 되었야 한다는 거다. 나는 오늘도 마흔의 친구 사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찬바람이 부는 10월이 접어들었다.

내 짝이 더 그리워지는 마흔의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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