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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이걸 Jan 13. 2024

낯선 남자의 손을 잡다.

마흔의 사랑 2_23살 운명의 사랑

계룡산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처음 만난 남자의 손을 잡았다. 


23살 대학생시절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신입생 때부터 친했던 대학선배언니가 취직해서 살고 있는 대전으로 놀러를 갔다. 선배네 자취방에 며칠 묵으며 대전도 구경하고 나름 혼자만의 여행을 즐겼다.

금요일 저녁, 퇴근한 선배가 계룡산에 가자고 했다.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분의 차를 타고 계룡산 아래 술집으로 향했다. 우린 막걸리와 파전을 먹으며 술기운에 젖어들었다. 대학시절 함께 원룸에서 룸메이트로 지내며 나를 친동생처럼 생각해 준 언니였다. 우린 웃고 떠들며 옛이야기에 빠져들었었다. 계룡산의 맑은 공기와 막걸리, 그리고 옛 추억과 함께 마음이 뭉개 뭉개 하늘을 날아갈 듯 좋아졌다. 늦은 밤 우린 남자분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된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남자분은 술집에서도 거의 말이 없었다.  

    

 차를 몰고 집으로 가려는데 남자분이 술이 취한 것 같다며 운전을 못하겠다는 것이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해서 술을 마시지 않았던 선배언니가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선배는 장롱면허라며 벌벌 떨며 계룡산 길을 운전하기 시작했다. 계룡산을 내려가는 내리막 길에선 수동기어 운전이 힘들어서 시동을 몇 번이나 꺼먹기까지 했다. 그는 우릴 차로 태워주려고 따라온듯한데 막걸리 한잔 마시고 떡 실신이 되다니 이 상황이 나에겐 웃음이 나왔다. 


운전에 온 신경이 쏠린 선배가 있는데 나는 그 남자분의 손을 잡았다.

차 안에서 난 왜 그랬을까? 몸이 힘들어서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있던 그 사람이 안쓰러워서였을까? 그 손을 잡아주었다. 그도 이상하게 처음 만나는 여자의 손을 놓지 않았다. 술 한잔 먹고 필름이 끊긴 게 아니기에 정신은 멀쩡해 보였는데 말이다. 선배는 긴장한 상태로 계속 운전에 집중하고 있어서 우리가 손을 잡고 있는지도 몰랐다. 선배집에 머물던 날 중 장맛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밤 남자분이 선배랑 함께 저녁에 자취방에 왔다. 주택집 앞에서 나는 비를 맞으며 뛰어다녔고 함께 웃었다. 이상할 정도로 우린 대화는 없었지만 함께한 잠깐의 시간이 묘했다.      

선배집에서 며칠 지내다 집으로 돌아갔고 곧 일상으로 돌아갈 거라 믿었다. 근데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냥 좋았다. 첫사랑이었다.

이 사람과는 뭔가 인연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명이었나 보다. 우린  1년 반의 연애 후 결혼까지 했다. 내 나이 24살. 20대 대학시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결혼보다 사회에서 뭔가 큰 일을 해 낼 것만 같았던 난, 결혼 후 바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자만심과 자기 고집으로 똘똘 뭉친 한 여대생이었다. 대학 운동권에는 한 번도 가담한 적 없었지만 사회에 대한 정의감은 넘쳐났다. 대단하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연애도 못했다. 이런 대단한 사람이 연애할 시간이 어디 있냐며 바쁘게 다녔다. 

23살까지 연애다운 연애조차 제대로 못했던 내가 1년 반이라는 시간을 통과하며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과 함께 나의 인생은 너무나 바뀌었다. 환경만 바뀐 게 아니고 머릿속 사고까지 바뀌어야만 했다. 한 아이의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살아간 20대의 시간은 나의 모든 걸 바꾸었지만 그 누구보다 소중한 가족이 생겨서 지금의 내가 있다.

     

 마흔이 되어 돌아보니 너무나 급격한 삶의 변화였지만 인간으로 살아가며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일들이지 않았을까 한다. 소설 <파친코>의 선자도 임신과 함께 인생의 큰 변화를 맞는다. 아이의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며 일본에서 힘든 삶을 살게 된다. 일제강점기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겪었을 시련과 가족을 돌보기 위한 강한 어머니로 살아간 그 시간들이 내 몸에서도 느껴졌다. 그래서 소설을 읽으며 선자의 마음에 동화되었고 함께했다. 누구든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 닥친다면 힘들 것이다. 20대의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마흔이 되어 24살에 엄마가 된 과거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두려워 말고 너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 선인아. 인생은 여행 같아서 고단하고 갑자기 생긴 일로 힘들어질 수 있어. 그래도 여행을 시작했으니  주위를 잘 둘러보며 그 여행을 즐겨야 해. 그리고 내가 서 있는 이 순간의 감정에 충실했으면 해. 넌 잘 해낼 거고 자신을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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