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사람인지 찾아가는 법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펄스널 브랜딩이 중요한 시점에 나는 뭘 잘하지? 뭘로 어필할 수 있을 까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다. 디자이너로써 잘한다라고 이야기 듣는 것은 시각적으로 멋지게 표현하는 비주얼 아트 디자이너, 보기 쉽고 깔끔하게 사용성에 맞춘 UX에 특화된 디자이너가 둘 중 하나다. 디자인 실력과 경력이 늘면 늘수록 더 많은 고민에 빠졌다.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는 그저 디자인을 잘하고 싶었고, 그냥 저들처럼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그들이 어떻게 왜 사랑받는지는 깊게 분석하지 않는 채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드는 생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은 그들만의 철학과 취향,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자신과의 수많은 도전과 싸움이 있었다. 작가적인 성향이 강한 디자이너들도 자신의 스타일을 잘 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기업에 특화된 디자이너들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원하는 것을 파악하기 위해 수많은 테스트와 실패로 싸워 왔다. 보통 잘 나가는 디자이너를 일컫는다면 작가적 성향이 강할 것이다.
나는 디자인 스타일이 딱히 크게 없다. 그리고 기업이나 회사에서 정말 잘하는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에 취향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고객들을 끌어 모으기 위한 방향으로 고민하고, 고객의 Needs와 Wants에 맞춰서 디자인되기 때문이다. 혹 취향을 반영한 디자이너라면 아트성이 강한 작가에 더 가깝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쪽 디자이너일까?
작가적 성향에 맞는 디자이너 VS 기업 성향에 맞는 디자이너
그동안에 내 작업물들을 보면 취향이 반영된 적이 드물었다. 브랜드 디자인에 최대한 맞춰서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각각의 스타일로 변화해 왔다. 하지만 브랜드 콘셉트가 강한 기업에서 일하다 보니 겉으로는 작가적 성향이 강한 느낌이었지만 오로지 나로만 봤을 때는 기업에 맞춘 디자이너의 성향에 가까웠다. 그런 일들을 하다 보니 왜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데 스타일이 없지? 잘 나가는 유명 디자이너들과 다르다는 생각에 나의 스타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무엇인지 계속 찾아 나갔다. 전시회나 시장조사를 통해 마음에 와닿는 것들과 핀터레스트로 좋다고 영감을 얻거나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수집해 나갔다. 수집된 보드를 보니 초반에는 굉장히 방대하기 그지없게 스타일이 중구난방이었다. 그렇게 모아보다 보니 궁금증이 생겼다. 이 작업물들에 어떤 면, 왜 끌렸을까? 퀄리티가 높아서? 귀여워서? 나는 작품들을 보면 결과물에서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닌, 그 작품의 의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는지에 대한 등 그들만의 스토리,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작업 과정이 느껴지는 것들을 좋아한다. 생각해 보니 내 작업물도 그러했다. 스토리가 없는 작업물들은 하나같이 완성도도 떨어지고, 시장에 내보내기 부끄러워질 때가 많다. 하지만 스토리가 탄탄하고 의도를 잘 표현한 작품들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고, 그들에게도 마음에 오래 기억되는 듯했다.
더군다나 나는 디자인 분야에서도 다양한 일을 접했다. 패키지, 브랜딩, UX/UI, 마케팅 등 뭐 하나 집중해서 하기보다는 넓고 다양한 방향으로 경력을 쌓았다. 그렇다 보니 나는 다른 전문 디자이너들보다 그쪽 분야에서 그들을 뛰어넘을 수도, 그 한 방향을 고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직업 간의 경계가 흐려지다 보니 나는 무슨 디자이너인가?라고 하기에 저 위의 리스트 중에서 하나를 뽑기에는 모호했다. 그렇게 한정해서 붙일 수도 없었다.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다. '나는 어떤 것을 하는 사람인가?' 디자이너가 아닌 그 사람으로의 가치를 놓고 봤을 때,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사람은 특별함, 다름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빌 비숍의 <핑크펭귄>이라는 책에서 뒤죽박죽 뒤섞인 개념들과 끝까지 살려볼 만한 아이디어들은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하나로 아우르지 못해 우리의 스토리를 자신 있게 전개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간단한 스토리를 전달하는, 셀프 PR을 못 하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자신의 생각을 멈추고 고객에 대해 생각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고 한다. 고객이 당신을 찾아오고, 그들이 얻는 이득이 무엇인지 생각하라고 야기한다.
나는 고민 끝에 '잠재적으로 숨어있은 제품의 장점과 스토리를 끄집어내어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정했다. 그들의 잘하는 점, 사람들의 관심을 끌 스토리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역할이다. 디자인 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디자이너의 역할이 그저 비주얼 적으로만 예쁘고 멋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껍데기만 휘향 찬란한 것들은 처음에는 이목을 끌지 모르겠지만, 오래가기는 어렵다. 어떻게 하면 우리만의 이야기를 들려줄지, 브랜드를 하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때 캐릭터를 강화하고, 매력적인 친구로 만들어 가까이하고 싶게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어렸을 때 꿈은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다. 그럼 나는 꿈을 이룬 걸까? 꿈을 직업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말이 최근 들어서야 더 크게 와닿았다.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꿈을 재정비해보는 것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