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일리 Oct 11. 2024

B와 D 사이의 C

B, C, D는 각각 무엇을 뜻할까요?

"00이 죽었다."


20권 마지막 페이지까지 가야 할 길이 한참 남았는데 등장인물 태반이 죽음을 맞이했다. 고작 3권인데 전염병의 희생자들이 우수수 발생한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극을 비중 있게 이끌어 가리라 예상했던 인물들이 갑자기 사라져 어안이 벙벙했다. 심지어 죽음을 알리는 문장은 감정 없이 무미건조했다.  


갑자기? 이렇게 죽는다고?



이렇게 허망하게 갈 수 있나 싶었다. 설상가상으로 한 여인이 사망한 날, 그녀의 남편은 묫자리에 그녀를 묻고 돌아왔다. 그리고 몇 시간 뒤, 핏덩이 혼외자를 품에 안는다. 직접 불륜녀의 아이를 받아내면서 한날 동시에 탄생(Birth)과 죽음(Death)을 경험한다. 그렇게 생과 사는 공하는 것이었다.



윤보형님이랑 영팔이하고 지를 묻어놓고 돌아왔는데, 그라믄 아즉도 하룻밤이 안 지났다 그말이제?
<토지 3>, 박경리



불륜, 혼외자 등의 단어로 천인공노할 분노에 휩싸이셨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조선 , 개화기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토지> 속 상황이다. 일부다처제가 암묵적으로 용인되던 사회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라도 그 남자는 조강지처를 더 인정하고 그리워했다. 그럴 거면서 왜 불륜에 뛰어들었는지, 왜 그런 선택(choice)을 했는지 나는 이해가 지 않았다. 








우리는 매일 무수한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오늘 무얼 입고 나갈지, 점심에 어떤 옷을 입을지,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책을 읽을지, 또는 유튜브를 볼지 등등등. 이 과정에서 어떤 선택이 불러올 나비효과까지 깊이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현재만 놓고 따져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 삶은 크게 육아 전과 육아 후로 나뉘는 것 같다. 출산 전에는 굉장히 우유부단해서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했다. 계속 장기적으로 생각하려 했고, 대의와 목표를 중시했다. 그러다 보니 성과에 집착했고, 기대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면 자책하고 후회했다. '후회 없이 살자'는 좌우명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내 삶의 근간이 마구 흔들렸다. 일단 나는 자연분만을 하면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일단 살고 보자'라는 생각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분만실을 나왔다. 어떻게 살지(how)보다는 존버가 더 중요해졌다. 거기에다 맨땅에 헤딩으로 돌입한 육아는 나를 단거리 경주마로 만들어 버렸다. 일단 하루를 버티면 되는 하루살이랄까?


그러다 보우유부단함과 결정장애는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이었다. 일단 무언가를 결정했으면 뒤를 돌아볼 시간, 그럴 여유도 없었다. 24시간 중 대부분 아이를 케어해야 했는데, 그 외 시간에는 시간 투자 대비 최대 효율을 끌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것이 소득이건 자기 계발이건 을 위한 시간이건 간에.  육아와 교육은 장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긴 하지만, 내 개인적인 선택은 아주 직관적인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 빠르게 옵션을 선택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 것이 나의 주안점이다.



예를 들어 마음에 드는 옷을 만나면 같은 디자인이라 할지라도 깔별로 구비를 해둔다. 이제 옷, 액세서리 등을 고르는 시간조차 아깝고, 차라리 기회비용이 높은 쪽에 시간을 투자하고 싶기 때문이다. 미혼/신혼 시절 나에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이가 두 돌이 지나고 육아가 비교적 쉬워졌을 때쯤 (지금도 절대 쉬운 것은 아니다) 나는 일상을 루틴화 했다. 아이가 등원을 했거나 잠을 자는 시간 동안 영어/글쓰기/독서 등 나만을 위한 소일거리를 하기로 한 것이다. 미라클 모닝으로 새벽 시간을 확보함은 물론이고, 나만의 시간에는 무조건 집안일을 최소로 하는 것이 핵심! 예전 같으면 지저분한 상태를 못 보고 하나하나 다 치우고, 쓸고, 닦고 했었는데 이제는 적당히 하고 내버려 둔다. 내 시간을 뺏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틴을 하나씩 해치우다 보면 결국 한 것과 하지 못한 것만 남게 된다. 하지 못한 것은 주로 새벽이나 주말을 이용해서 메꾼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을 줄이고 지난날에 얽매이지 않으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나는 이렇이생을 살아가고 있다.






아이를 어린이 집에 보내고 집도 대충 치웠겠다, <토지> 3권을 펼쳤다. 마지막 몇 장을 다 읽고 생과 사의 허망한 공존에 머리가 살짝 멍해져 있었다. 마침 라디오에서는 'Il Mondo(일몬도)'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는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국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이 결혼을 하는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나온다. 식장에서 나와 부부와 하객들이 기념사진을 찍는데 비가 억로 쏟아지고 돌풍이 몰아친다.  '비 오는 날 시집가면 잘 산대'라는 말이 영국에도 있나 싶을 정도로 그들은 내내 함박웃음을 지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영국은 맑다가도 비가 갑자기 내리는 변덕스러운 날씨로 유명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들이 개의치 않아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점점 더 폭우가 쏟아지며 하객들이 뛰어다니는 아수라장이 되지만 그 장면은 오히려 웃음을 선사했고, 동시에 내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했다. 너무나 행복하고 사랑이 넘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음악과 어우러져서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혀 모르는 이탈리아어의 노래인데도 나는 분위기에 취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출처: https://m.blog.naver.com/changkyun07/223557026162 (팝페라가수 오창균 블로그)



일몬도, 즉 '세상'은 항상 돌고 돌고. 그 속에서 우리는 낮과 밤, 슬픔과 사랑, 시작과 끝을 끊임없이 경험한다는 내용의 노래이다. 렇지만 변하지 않는 건 '당신을 향한 마음'이라는 담백한 고백을 담고 있다. 이 영화의 주제를 생각해 봤을 때, 시간은 절대 되돌릴 수 없으니 사랑하는 사람과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을 살라는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끝없이 도는 세상일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면(死) 그 세상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아마 박경리 작가님도 <토지>에서 이런 덧없음을 말하고 싶으신 게 아니었을까?



사람은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간다.



흙, 다시 말해 토지(土地). 지금의 우리가 언젠가는 가야 할 곳. 하지만 언제 갈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그 여정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여정 속에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갈림길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겠고. 따라서 나만의 가치관과 중심을 지키며 매 순간을 소중히 살아가는 뚝심이 필요하겠다.



인생은 B(Birth; 삶)와 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 선택)다.

- 사르트르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