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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Dec 10. 2024

온기를 나눠요

어린이집 하원을 하러 갔을 때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내 목에 둘러져 있던 목도리를 달라고 했다. 평소 아이가 좋아하는 보들보들한 털 재질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목도리를 받자마자 아이는 얼굴에 털을 비비며 좋아했다. 나는 내 목이 허전한 것쯤은 상관없었다. 오히려 내 체온이 묻은 따뜻한 목도리를 건넬 수 있어서 기뻤다.




박경리 작가님의 소설 <토지>에서 큰 서사의 축을 담당해 오던 '월선이'가 임종을 맞이했다. '월선옥'에서 국밥을 팔며 연인인 '용이'의 첩까지, 그리고 그녀의 아들까지 먹여 살린 월선이다. 미련할 정도로 착하고 정이 많은 여자였다. 일용직 일꾼들은 일이 끝나고 월선옥에 와서 따끈한 국밥에 술 한잔을 걸쳤다. 그리고 동향 사람들은 국밥을 핑계로 거나하게 취해와선 주저리주저리 넋두리를 늘어놓고 갔다. 그것이 월선옥이었다. 누군가에겐 쉼터였고, 누군가에겐 위로였다.




나도 온기를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국밥까지 나눠주지는 못할지 언정 온기라도. 그런데 혹자는 내게 충고한다. 요즘 세상에서 그러면 호구가 된다고 말이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만큼 세상이 각박해졌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눈 뜨고 코가 베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를 얻어야만 하나를 내어주는 마음은 내겐 힘든 일이다. 계산기를 두드리다가 오히려 내 정신이 더 핍박을 받곤 한다. 난 원래부터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였다.




월선이의 빈소에서 그녀의 삼촌 '공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옛말에 사람이란 관뚜껑에 못을 박아야만 그 사람이 어떻다는 말을 할 수 있다 했는데 그 말이 맞는 말이야.


월선이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는 조문객들을 보며 공노인은 조카의 영면에 안도했다. 그리고 그녀와 끈질긴 연으로 얽혀있던 사내, 그녀 인생에서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던 용이도 비로소 용서할 수 있었다. 상주 역할을 하고 있는 용이의 아들 '홍이'에게선 든든함 마저 느꼈던 공노인이다.




내 관뚜껑이 덮이는 날, 나는 어떤 사람으로 회자될까? 일단 내 빈소에 와줄 사람이나 있을는지 모르겠다. 내 장례식은 엄숙하기보다는, 서양 영화에서처럼 웃으며 추억하며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라는데... 상상을 해보니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이라도 "잘" 살아봐야겠다. 주위에 온기를 나누면서 살아보려 하는데, 설마 늦은 건 아니겠지? 지금부터, 그리고 이 자리에서부터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아보리라.



당장 눈앞에 "사랑의 저금통"이 보인다. 어린이집에서 연말을 맞아 기부금 조성 차원에서 보내주신 것이다. 평소에 카드 또는 계좌 이체를 통해서만 결제를 하다 보니 저금통에 넣을 동전이나 지폐가 전혀 없었고, 현재 저금통은 텅텅 빈 상태다. 하지만 이 역시 내 관심과 정성이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반성을 해본다. 오늘부터 차곡차곡 모아서 어린이집에 전달해드려야겠다. 모두에게 따뜻하고 사랑이 가득한 연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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