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써 본 소설 습작. 과감하게 당시 직접 만들던 독립잡지에 실었다.
아름다울 미, 싸울 투. 우리들의 아름다운 투쟁이라는 의미를 지닌 페미니즘 잡지 ‘美鬪’는 2019년 3월.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외롭지 않기를 바라며 만든 독립잡지다. 소설이 실린 2호는 2020년에 텀블벅으로 판매를 진행했다. 현재는 판매도 안하고 재고도 없다.
(잡지가 궁금하다면? 페미니즘 잡지 <美鬪 아름다운 투쟁 2호> 차별,탈코,비혼 | 텀블벅 - 크리에이터를 위한 크라우드펀딩 (tumblbug.com) )
추후 3호도 제작 할 예정이다. (일정은 미정..아마 밥벌이를 제대로 할 때쯤이 아닐런지...ㅎㅎㅎ)
소설을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에 브런치에 남긴다.
운수 좋은 날/ 정소이
희진 선배를 만난 건 피부가 베일 것 같이 찬바람이 부는 겨울날이었다. 오매불망 가고 싶어 하던 J그룸 최종면접을 보던 날.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 같았던, 그런 날.
얇은 검정스타킹에 감싸진 다리가 떨렸다. 짐짓 태연한 척 하고 싶어 손으로 다리를 꾹 누르며 심호흡을 했다. 감았던 눈을 뜨니 새하얀 종이컵이 보였다. 연한 연두빛깔의 녹차를 든 손을 따라 시선을 올리니 갈색 중단발 머리에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은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와이셔츠 깃 사이 줄에 매달린 사원증이 눈에 담겼다. J그룹 마케팅본부 마케터 서희진.
“마셔요”
“네? 아! 네, 감사합니다.”
멍 때리는 내가 의아했는지 희진 선배는 내 손에 종이컵을 쥐어주곤 옆 자리에 앉은 대기자에게 컵을 건넸다.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여러 명의 손에 컵이 들려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희진 선배는 내가 속한 면접조 담당이었고 근라 대기를 하며 녹차를 마신 건 우리조가 유일했다.
면접은 엉망이었다. 예상했던 질문은 다 빗겨갔고 당황한 난 입으로 똥을 싸는 흑역사를 생성해 주변 지원자들의 동정어린 눈길을 받으며 면접장을 나섰다. 백전백패를 자랑하는 나의 촉에 이번 면접은 필패였다. 무수한 실패에도 태연해지지 못하고 눈가가 점점 붉어졌다.
이번에 떨어지면 다시는 최종까지 올라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취업의 세계는 최종까지 갔다고 서류무적패스가 되는 그런 세계가 아니니까. 서탈이든 최탈이든 결국은 똑같이 불합격이니까.
‘이게 하반기 마지막 면접이었는데...’
“또 봐요.”
패배감에 휩싸ᆞ여 급히 코트를 입고 나서는 내 등 뒤로 듣기 좋은 목소리가 퍼졌다.
‘아니요..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아요...’
서러웠다. 아홉수를 코앞에 두고도 이뤄 놓은 게 없는 내가. 겨우 온 기회를 못 잡고 길거리에 주저앉아 펑펑 우는 내가. 또 보자는 말에 그러자고 대답을 못 하는 내가. 너무 후져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 자기 전에 소원을 빌었다. 이번에 내 인생의 운을 모두 끌어다 써서라도 합격이란 걸 시켜준다면 열심히 살겠다, 다시는 게으름 피우지 않겠다 등등. 다이어리 첫 장에나 쓸법한 공수표를 믿지도 않는 신에게 새벽마다 날려댔다.
내 기도가 너무 간절했던걸까. 2두 쥐 말도 안 되는 행운이 내게 찾아 왔다. 합격자가 입사를 포기해 턱걸이로 합격을 한 것이다. 부모님은 내가 문 닫고 합격한 사실은 쏙 빼놓은 채 “운이 좋았지 뭐, J기업이 대기업이라 기대 없었는데 이렇게 붙으니 다행이지 뭐. 우리가 뭐 한게 있나 운이 좋았지” 라며 겸손을 가장한 자랑을 일주일 내내 보이는 사람마다 하고 다녔다. 친구들은 “될놈될이다. 면접 망치고 울더니 역시 취업은 운이야. 기 좀 받자”며 부러움 섞인 응원을 건넸다.
입사 후 내 옆자리에는 희진 선배가 앉아있었다. 일을 알려 줄 사수라고 했다. 희진 선배는 첫인상처럼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희진 선배를 너무 좋아하고 잘 따르자 사내에는 희수와 희진의 ‘희’를 붙여 우리를 희자매라 불렀다. 당시 초고속 승진으로 상사의 신뢰를 한 몸에 받던 선배의 애정은 내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물론 회사의 모두가 선배를 좋아한 건 아니었다. 선배에 대한 회사 내 평판은 극과 극이었다.
“서희진 솔직히 여우과지. 진부장한테 살살 웃는 거 봤냐.”
“일할 때 히르테리 부리는 거봐. 노처녀 히스테리냐? 걔 요새 연애 안하지?”
“서희수. 너도 정신차려. 걔 성격에 후배 끌어 줄 것 같냐, 뒤통수나 치지.”
“그래. 자기 동기 그렇게 됐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거 봐.”
“동기가 왜요?”
“어? 아냐. 그런 게 있어.”
남자 선배들은 희진 선배가 연애 안하고 후배 고생시켜 성과를 낸다며 독한 사람 취급을 했고, 상가들과 친분이 쌓인다 싶으면 여자라 예쁨 받는다며 시샘했다. 여자라 예쁨을 받는다는 회사의 여성임원 비율이 4%도 안 된다는 건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당당히 남자 동기를 제끼고 빠르게 승진하는 희진 선배가 여자 후배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도. 여성이 남자 동기보다 빠르게 승진하는 경우는 그만큼 이례적인 일이었다. 여전히 남자 동기가 과장을 달 때 여자동기는 만년 대리를 하는 게 당연한 부서가 많았다.
독고다이라고 욕을 먹는 희진 선배는 여자 후배에게 유난히 관대했다. 선배는 술만 마시면 여자는 여자가 끌어줘야 한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좋은 사수의 지지를 돛단배 삼아 동기 중 월등한 성과를 뽐내며 인정받는 날 두고 동기들은 사수 운이 좋아 부럽다고들 했다.
“선배는 목표가 뭐예요?”
“목표? 회사원이면 임원까진 가봐야 하지 않을까?”
“임원이요? 여자 잘 안 뽑잖아요.”
“그러니까. 되면 더 좋잖아.”
“음, 그럼 저도 선배 옆에 앉아있을게요. 이왕이면 두 명이면 더 좋잖아요.”
왜 이렇게 잘 해주냐는 물음에 희진 선배는 “희수, 너 저번에 부장님이 인턴한테 커피 타오라고 하니까 그건 아닌 것 같다고 그 자리에서 말하더라”라며 웃었다. 당시엔 뜬금없는 대답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선배는 나를 통해 자신의 신입시절을 떠올렸던 것 같다.
함께 성장하자며 야근도 불사하던 우리의 사이가 갈라진 건 ‘김부장’ 사건 때문이었다. 사건은 중국 파견에서 시작됐다. 당시 해외파견은 승진을 하려면 한번쯤은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는데, 경쟁률이 치열했다. 내심 내가 뽑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희진 선배는 평소와 달리 미지근한 반응이었다. 계절이 바뀌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도 했다. 계절이 바뀌고 가도 상관은 없었지만 그 사이에 진급이 누락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희수야. 지금까지 해온 성과만으로도 충분해. 조급해할 필요 없어. 가끔은 쉬어갈 필요도 있고.”
‘중국 파견 가서 하루빨리 선배처럼 진급하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꽤 단호하게 말하는 선배의 못브에 애써 말을 삼켰다.
‘내가 너무 빨리 승진해서 선배한테 위협이 될까봐 견제 하는 건가.’
‘선배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굳이 갈 필요는 없겠지.’
오락가락 싱숭생숭한 상태로 지내기를 며칠, 해외파견을 총괄하는 해외사업본부 김지석 부장에게 제안이 왔다. 내가 중국 파견을 갔음녀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러면서 저녁을 함께 하자고 했다. 파견을 같이 갈 직원끼리 미리 안면을 익히면 좋겠다며. 평소였음 희수 선배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 했겠지만 괜히 한소리 들을 것 같아 대충 인사를 하곤 사무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