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 2

by 정소이



받은 주소에 도착해보니 고급 일식집이었다. 방문을 열자 동기 지현이와 인사만하고 지내던 은지 선배, 그리고 희진 선배가 앉아 있었다. 희진 선배가 있는 것도, 남자 사원이 없는 것도 이상했다. 김부장은 벌써 술을 상당히 마신 듯 했다.


“어, 어, 우리 희수 씨. 앉아, 앉아.”


김부장은 가정적이고 회식을 싫어하는 ‘바른 남자’ 이미지가 강한 사람이었는데 그날은 평소와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술자리에서는 중국 파견을 하게 되면 얻을 수 있는 장점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오갔다. 김부장은 술을 빠르게 권했고 술기운이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그 순간 김부장 옆자리에 앉은 지현이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김부장이 슬쩍슬쩍 지현이 몸을 만지고 있었다.


‘뭐야, 왜 저래. 내가 지금 그만하라고 말 해도 되나? 지현이는 괜찮나? 지현이가 참고 있는데 내가 말하는 건 좀 아닌가?’

“그만하시죠.”


별별 생각이 다 들 때쯤 평소 말수가 적다고 생각했던 은지 선배가 입을 열었다. 입사 초, 같은 부서에 있긴 했지만 만년 대리라 업무적으로 본받을 게 없다고 생각해 크게 관심두지 않았던 선배였다. 소심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은지 선배는 무서운 기색하나 없이 부장을 응시하며 그만하라는 말을 한 번 더 했다.


“후회하지 마시고 그만하시죠. 이거 범죄예요.”

“범죄? 이은지 대리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죠?”

“방금 저희 앞에서 은지현 사원 팔뚝이랑 허벅지 만지셨잖아요. 지금 성범죄 저지르신 거라고요.”

“하...”


말문이 막힌 듯 은지 선배를 가만히 응시하던 김부장이 갑자기 소리 치기 시작했다. ‘너 따위가’ ‘주제파악을 못하고’ 어쩌구 하며 소리를 질러대는 부장은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빤히 보던 은지 선배는 몸을 일으켜 지현이를 챙겼다. 그러자 김부장이 선배를 밀었고 책상 위에 있던 유리컵이 깨졌다.


너무 놀라 선배를 급히 일으키고 방에서 나가자 방 앞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결국 얼아 안 지나 가게 사장이 부른 경찰이 도착해 난생 처음 경찰서에 가 조서를 썼다. 은지 선배는 깨진 유리병에 손이 찢어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아수라장이었다.


그 와중에 희진 선배는 담담하게 상황을 정리하고는 집에 돌아갈 택시를 불러 한명 씩 태워 보냈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경찰서를 벗어나고 김부장 부인이 경찰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입사 초기 그녀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부장과는 사내연애를 하다 결혼했다고 했다. 동기 중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입사해 현재 우리 회사의 주력 사업인 J푸드 사업의 기반을 닦았다는 그녀의 일화는 사원들에게는 구전처럼 내려왔다. 대형트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임원을 바라보던 사람. 대화를 들을 때마다 늘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만삭 때도 프로젝트 뺏기기 싫다고 회식을 3차까지 따라갔대.”

“J푸드 성공시키고 회장 눈에 들어서 최연소 여성임원 후보까지 올랐었는데.”

“그니까. 그때 이후로 여자는 후보에도 잘 안오르잖아. 애 낳으면 회사 떠난다고. 그런 거 보면 민폐 아니냐. 괜히 후배들 앞길 막은 거잖아.”

“그렇다고 후배들 길 닦아주려고 자기 애 안 키워?”

“김지석이 애 키우면 되지. 능력도 없는데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 사무실 왜 나오냐. 더 다닌다고 저 능력에 임원 되냐고.”

“에이, 그래도 애 낳고 육아휴직하고 그러면 어차피 임원 물 건너 간 거지. 하필 그때 임신을 하냐. 그리고 김부장 가정적이니까 집에서 육아하는 거 괜찮지 않으려나?”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는 생기가 없었다. 멍한 눈, 정돈되지 않은 머리, 급하게 입은 듯 한 옷차림까지.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은 없지만 상상과 달랐다. 그녀는 나와 선배에게 김부장을 대신해 사과했다. 차분한 목소리였는데 왠지 모르게 울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느껴졌다.


“이 밤중에 면복이 없네요. 미안해요.”

“안녕하세요. 선배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서희진이라고 합니다. 선배님께서 사과하실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오셨으니까 저희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녀는 선배의 이름을 듣더니 멈칫하곤 고개를 돌렸다. 다음날 출근을 하자 회사가 뒤숭숭했다. 이미 소문이 쫙 퍼진 모양이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옆 부서에 가보니 은지 선배가 손에 붕대를 감은 채 일을 하고 있었다. 멀찍이 쳐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지금 선배를 찾아가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줘 봤자 소문에 소문을 보태는 격밖에 안 될 테니. 점심 시간이 되자 여직원협회 위원장인 구자연 과장이 나를 찾아왔다.


“이번 일은 여협 차원에서 대응할 생각이에요. 지현씨와 은지씨도 동의했고요.”

“김부장은 그럼...회사에서 나가나요?”

“몇 년 전에 비슷한 일이 있기도 해서. 해고를 요구할 생각이에요.”


전부터 그래왔다는 과장의 말에 왜인지 모르게 희진 선배의 얼굴이 스쳤다. 구팀장과 다음 만남의 약속을 잡고 사무실로 돌아오자 희진 선배가 자리 앞에 서 있었다.


“아무 것도 하지마.”

“선배...!”

“그냥 하지마. 희수야. 제바. 너만 힘들어. 너만 다칠 거야.”


희진 선배는 하지 말라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다음날 구과장과의 면담에서 선배가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구과장은 일목요연하게 사건을 정리했다.


“지금 지현 씨랑 은지 씨는 고발에 동의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목격자에 가까운 희수 씨의 증언이 중요해요. 문제는 전례를 봤을 때 이정도로는 해고가 어려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난 사건과 함께 고발했으면 하는데 그때 사건 당사자가 공론화를 꺼려서 쉽지는 않네요.”

“희진 선배는요?”

“아, 희진 씨는 아마 안 할거예요. 목격자라고 하기도 애매하고요.”

“왜요?”

“윤선희라고 희진 씨랑 친한 동기가 있었어요. 몇 년 전에 퇴사한.”


구과장이 해준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희진 선배가 입사했던 해 김부장은 마케팅본부 과장이었는데 희진 선배와 희진 선배 동기에게 남몰래 지속적인 성희롱을 했고 결국엔 동기에게 성폭행까지 시도했다는 것이다. 당시 동기와 절친했던 희진 선배는 망설이던 동기를 설득해 회사에 고발을 했다고 했다.


“고발을 했는데...왜...”

“그게 문제였어요. 고발을 했는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렀어요. 김지석 부장이 평소에 이미지가 좋으니까 오히려 고발을 한 선희 씨가 승진 때문에 꼬시려고 한거다 뭐다 말이 이상하게 흘렀어요. 그때는 지금보다 분위기가 안 좋았거든요”

“희진 선배는요? 괜찮았어요?”

“선희 씨도 희수 씨처럼 엄청 밝고 할 말 다 하는 사람이었는데 고발은 좀 망설였나봐요. 그걸 희진 씨가 설득한거고. 본인이 설득했는데 일이 그렇게 되니까 희진 씨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결하려고 엄청 애썼지. 그런데 회사에서 묻겠다는데 일개 사원이 어째. 결국 선희 씨는 못 견디고 퇴사하고, 희진 씨는 그때부터 버티면서 지금까지 온 거지.”


“서희수. 너도 정신 차려. 걔 성격에 후배 끌어 줄 것 같냐. 뒤통수나 치지.”

“그래. 자기 동기 그렇게 됐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거 봐.”


선배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희진 선배는 자신이 개천용이라고 했다. 가진 것 없는 상황에서 나홀로 대기업에 입사해 부모님의 자랑이라고. 실제로도 선배는 남동생 대학 학비와 부모님 용돈을 많은 부분 부담하고 있었다. 선배는 회사를 그만 둘 수 없었을 것이다.


“그냥 하지마. 희수야. 너만 힘들어. 너만 다칠 거야.”


선배는 내가 상처받는 게 싫었던 걸까. 내가 선배에게 함께 하자고 하는 건 선배에게 상처가 될까. 답을 알 수가 없었다.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 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대요. 해고될 수도 있대요.”

“...”

“그날 있던 사람들 다 고발한다고 했대요. 선배만 도와주면 다를지도 몰라요.”

“...”

“우리가 이번에 아무 말도 안하면 또 같은 피해자가 생기는 거예요.”

“희수야. 나는 네가 다치는 걸 보고 싶지가 않아. 우리가 더 열심히 해서 임원되고 더 힘가지면 그때 회사 분위기 바꿀 수 있어.”

“...”


고발과 관련해 여사협 회의실에 다 같이 모인 날, 은지 선배는 희진 선배에게 더 이상 부탁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말했다.


“저희가 그 선배 미래까지 책임져줄 것도 아니고 안 좋은 기억 들추는 것도 폭력적이라고 느껴져서요. 문제가 있다고 말 하는 게 중요한거잖아요.”


그날 밤 내 고민을 들은 친구는 잠심 침묵하더니 날 보며 운이 좋다고 말했다


“희수야 거기 나와. 잘 됐다. 네가 운이 좋다니까. 이번에 우리 회사 사람 구하잖아. 저번에 만난 차장님 기억나지? 너 안부 궁금해 하더라고. 너무 깊게 생각 하지마. 그래도 다행이지. 네가 그런 큰 일 당했으면 어쩔 뻔했어. 아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그 성명서? 고발? 거기에는 이름 올리지마. 혹시 모르잖아.”


고발 하루 전, 희진 선배는 집 앞에 찾아와 동기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퇴사했던 자신의 동기는 퇴사 후오랜 시간 상담을 받았다고 했다. 고발을 한 후 친했다고 믿었던 회사 동료들의 변한 태도와 시선에 아주 많이 힘들어했다고도 했다.


“네 생각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 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그 사람이 잘못한 거 맞잖아요. 잘못한 걸 잘못했다고 말하는 건데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어요. 앞으로 회식 갈 때마다 마음 졸이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괸다고 생각하니까 계속 그러는 거 잖아요. 그래도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선배는 고발에 동의한다는 동의서를 내 손에 쥐어줬다. 한동한 회사는 우리의 고발성명으로 시끄러웠다. ‘선비 같은 김 부장이 그럴 리가 없는데 승진 욕심 과하게 부리던 여자 사원들이 괜히 심술을 부린다’는 말도 있긴 했지만 희진 선배가 걱정하던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우리의 고발성명이 그동안 쉬쉬하던 회사 내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는 시발점이 될 거라는 반응도 있었다.


대자보에는 응원한다는 포스트잇이 붙었고 동시에 김부장을 믿는다는 탄원서가 상부에 보고되기도 했다. 얼마 후 사건이 공론화 되면서 #직장내성폭력out 해시태그 운동이 일어났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여론이 잠잠해지자 김부장은 해고 대신 지방에 있는 계열사로 좌천이 됐고, 사건은 모두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갔다.

하지만 점심 회식을 하는 부서가 늘고, 성적인 농담을 하는 직원이 사라지는 등 회사 곳곳에는 크고 작은 변화들이 또렷이 생겨났다. 그리고 난 회사를 떠났다. 희진 선배의 말처럼 고발 후 믿었던 회사 동료들이 김부장 탄원서를 쓰고, 사건을 왜곡해 소문을 내고 나를 비난하는 걸 견뎌내는 과정이 너무 고됐다.


“미안해. 또 너를 지켜주지 못했네.”

“아니요. 입사하고 지금까지 선배가 저를 지켜줬어요. 선배. 우리가 이긴 거예요. 앞으로도지지 말아요. 우리.”

“...그러자.”


새로 이직하는 날 두고 친구들은 말했다. ‘운이 좋았다고’


“그래도 그 부장 좌천됐다며. 그것도 사실 힘든 일이잖아. 그리고 고발까지 했는데 너 승진이나 제대로 됐겠냐. 별일 없이 이직했으니까 다행이지. 변태새끼 또 있으면 어떡해. 이 회사는 대표부터 임원들 거의 여자래. 다행이지. 운이 좋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