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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loura May 31. 2021

먹보의 길

네 식구가 모여도 치킨 한 마리를 다 먹지 못하는 밥통 작은 집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음식에 대한 흥미가 없었다. 음식을 남기면 지옥에 가서 모두 섞어 먹어야 한다는 무서운 이야기 대신 배가 부르면 억지로 먹지 말라는 이야기를 밥상머리 교육으로 들었다. 농부의 땀 한 방울이 쌀 한 톨이라며 밥그릇 싹싹 긁어먹어야 했던 또래보다는 음식을 남기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바나나맛 단지 우유를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한 번에 다 마셔본 적이 없다. 대학교 시험기간 땐 먹는 것도 귀찮아 밥 대신 한 번에 삼킬 수 있는 알약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배부른 포만감보다 약간의 허기가 좋아서 1,2년 전까지만 해도 몸무게 앞자리가 5였던 적은 평생 없었다.


뽀얗고 포동한 얼굴의 동생이 아침부터 한약을 챙겨 먹은 후 내뱉은 한마디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한 번씩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난다. "언니이~ 저 같은 돼지들은 이런 한약도 달아요. 어으~ 맛있다!" 하고 입맛을 다시는 그녀를 보며 속으로 흠칫 놀랐더랬다. 전날 저녁에 남겨둔 피자가 먹고 싶어서 아침 일찍 일어나 먹고 왔다는 동생을 보며 내 속이 대신 부대낀 적도 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아침밥보다 잠을 택하는 줄로만 알았던 나의 편견을 그 동생이 가볍게 깨 주었다. 그리고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아마 동생의 손을 꼭 붙잡은 채 힘차게 긍정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다음날 먹을 메뉴 생각에 잠이 안 오는 그 설레는 경험을 나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퇴사 후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입이 심심한 자유시간이 길어졌다는 뜻이다. 배가 고플라치면 달달한 간식을 찾아 주방을 어슬렁거렸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던 밥은 적당한 돈, 넘치는 시간을 든든한 지원군 삼아 만찬으로 격상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자주 접하니 숨겨졌던 나의 식욕이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식욕이 무서운 게 가랑비 옷에 젖듯이 한다는 점이다. 맛있는 음식을 눈 앞에 두고도 배가 불러 남길 수밖에 없게 되자 이전과 달리 작은 내 위가 아쉽고 억울해졌다. 마지막으로 한 입만 더, 더! 하면서 먹는 식습관으로 어느새 배 터지게 먹는 게 익숙해져 버렸다. 두둑해진 배는 잠들기 전까지도 꺼질 줄 몰랐다. 그러면서도 침대에 누워 다음날 먹을 메뉴를 고민하며 먹음직스럽게 찍어둔 음식 사진을 뒤적거렸다.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다. 메뉴가 다양해지고 세분화되면서 나처럼 짧은 입맛에도 딱 맞는 음식이 많이 등장했다. 양념과 후라이드에 불과하던 치킨은 간장, 치즈, 짜장, 매운 양념, 더 매운 양념, 후라이드, 매운 후라이드.. 메뉴는 셀 수도 없는데 사이드 메뉴까지 계속 나오고 있다. 까르보나라 아니면 토마토소스뿐이던 파스타 가게는 오일, 로제, 먹물 크림, 트러플 소스 등등 자신만의 시그니처 메뉴를 내세워 손님들의 입맛을 당긴다. 


엄마를 모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갈 때면 '딸 있으니 같이 좋은 것도 먹고 너무 행복하다'라는 듣기 좋은 말을 꼭 한 번씩 듣는다. 비싼 가방, 가전제품을 턱턱 사주진 못해도 가끔 둘이서 오붓하게 먹는 식사는 스스로 대단한 효녀가 된 냥 어깨가 절로 펴지게 한다. 만족스러운 식사로 나만의 맛집 리스트가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줄 생각에 신이 났다. 다른 지역으로 놀러 간 친언니에게 그 지역 맛집을 추천했는데 대기줄이 있어 그냥 가겠다는 말을 듣고 몇 번씩이나 전화를 걸어 집요하게 설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에 대한 집착은 정직한 결과로 내게 되돌아왔다. 살 안 찌는 체질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오래지 않아 처참히 무너졌다. 사람의 기세라는 것이 변곡점을 뚫으면 폭발적인 성장을 하듯 몸무게 500그램 차이도 크게 느껴지던 것이 한 번 내려놓게 되자 체중계에 올라설 때마다 신기록을 우습게 갈아치웠다. 바지 위에 배가 얹힌 모습에 뜨악하게 하더니 딱 붙는 옷을 입자 근육맨처럼 울퉁불퉁 필요 없는 굴곡들이 여기저기서 모습을 비췄다. 생전 관심도 없던 부위에 살이 붙자 거울을 볼 때마다 그곳으로 불편한 시선이 계속 갔다. 나이가 들면서 기초대사량이 떨어져 그만큼 적게 먹어도 몸무게는 줄어들지 않았다. 운동이라면 연중행사처럼 앞산이나 한두 번 갈 뿐 평소에도 숨찬 건 질색하는 내게 근육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 정도면 귀여운 아랫배' 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기엔 귀엽지도 않거니와 좀처럼 없던 허리 통증이 생겼다. 갑자기 뱃살이 늘면 허리디스크 위험에 노출된다는 기사를 읽고서야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눈물을 머금고 앞자리 4를 되찾기 위해 지금까지의 호사를 포기할 것인가. 지금 생활에 운동을 하며 건강한 먹보로 거듭날 것인가. 


늘어난 식욕을 감당 못해 살찐 나를 자책하기엔 이 세상에 대단한 음식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이전으로 돌아가진 못할 듯하다. 어려운 갈림길에서 난 건강한 먹보의 길을 택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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