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릴 적 엄마랑 나란히 골목길을 걷던 참이었다. 반대편에서 느릿하게 걸어오고 있는 낯선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멀리서부터 계속 나를 쳐다보기에 나는 거기다 대고 냅다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뚱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더니 아무런 대꾸도 없이 지나쳤다. 유치원에서는 어른들에게 큰소리로 인사하는 거라고 배웠는데 이상했다. 엄마는 이 일로 나를 ‘모르는 어른에게 인사할 정도로 인사성이 바른 아이’로 기억했지만 사실 나는 그때를 떠올리면 무안함에 얼굴이 벌게진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엄마가 침이 마르게 해 준 칭찬보다 모르는 할아버지의 뚱한 그 표정이 더 강력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에 나는 무안하다는 감정을 피부로 배웠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아이에게 친절하지 않은 어른은 있기 마련인데, 그걸 몰랐던 난 처음 겪은 이 일로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요즘은 대부분 아파트에 살다 보니 엘리베이터 내에서 이웃을 마주칠 일도 많다. 아파트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서 다들 인사는 어쩌나 싶기는 한데 한동안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인사를 먼저 하진 않았다. ‘어릴 적 인사를 씹힌 기억’ 때문일 리는 없다. 단지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굳이 저 사람이 내 이웃이라는 생각도 잘 들지 않을뿐더러 몇 번 인사를 먼저 건넸더니 돌아오는 답이라고는 ‘네’ 뿐인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의 대답이 ‘네’라는 한 글자라니. 내가 그릇이 작은 지는 몰라도 ‘‘네’라는 단답을 들을 바에 아예 하지 말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던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꼬마를 만났다. 스치듯 눈이 마주쳤는데 둘 다 별다른 말은 없었다. 삭막해진 요즘을 사는 아이가 조금 안됐다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15층에서 내가 먼저 내리고 문이 다시 닫히는 찰나의 순간,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이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안녕히 가세요!!!!”
순간 아차 싶었다. 나도 다급하게 닫힌 문에다 대고 “응, 잘 가!!” 하고 외쳤지만 아마도 못 들었을 걸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아이에게 친절하지 않은 어른들 중 하나가 나인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저 아이가 어린 시절 나처럼 무안함을 느끼진 않았을까 내내 걱정되었다. 아이는 15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좁은 공간에서 얼마나 많이 고민했을까. 내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더욱 엄두가 안 났을 거다. 인사를 해도 씹힐 거라는 불길한 예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준 용기가 대견했다.
그 뒤로 난 엘리베이터 안에서만이라도 먼저 인사를 시작했다.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사실 인사하기가 겁난다. 씹힐까 봐. 그래도 한다. 먼저 하지 않으면 돌아오는 건 아예 없다는 걸 알았다. 내가 먼저 해야 반반의 확률로 받을 수 있다.
나는 받고 싶다.
그래서 먼저 한다. 그때 만난 그 아이처럼.
그리고 아주 어릴 적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