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 대하여
오늘도 실패다.
새벽 6시 기상이라는 미션을 해가 바뀌고 딱 한 번 성공했으니 미션 성공률은 여태 10퍼센트도 안 된다.
자기 계발에 빠져있는 요즘이라도 잠만큼은 통제가 안 된다.
-찬물로 샤워하기
-명상하기
-100번 노트 쓰기
- 에세이 쓰기
- 책 읽기
이 목록 중에 어찌 보면 가장 쉬운 게 일찍 일어나는 것일 텐데 나는 그게 제일 어렵다. 뭐랄까. 자는 동안의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일찍 일어나기엔 잠이 너무 좋다. 특히 겨울엔 잠에서 헤어 나오기가 정말 쉽지 않다. 이불 안에 갇혀있는 내 온기가 포근하고 따뜻하다. 그럴수록 몸을 더 동그랗게 말고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마구 헤맨다. ‘일어나야 되는데..’라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억은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어쩜 그렇게 단번에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나는 걸까. ‘흠냐 흠냐-’ 하고 뒤척이다 보면 십 분은 무슨, 두어 시간은 훌쩍 지나가 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유치원, 초등학생 때도 친척 집에 놀러 가면 사촌 중에 제일 오래 자서 항상 눈 떠보면 나만 구석에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그렇게 오래 자면 허리도 안 아프냐'며 주변 어른들이 엄청나게 놀랐었는데 그땐 진짜 허리도 안 아팠고, 지금은 허리가 아파도 잔다. 중학생 땐 성당 다니는 친구가 미사 때문에 주말에도 여섯 시에 일어난다는 소리를 듣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늦잠 없는 삶이라니 생각만 해도 가여웠다. 학창 시절 내내 졸음과 싸워야 했던 게 제일 괴로웠다. 잠을 깨려고 교실 뒤에 일어서서 수업을 듣다가 휘청거리며 쓰러질뻔한 적도 있다. (지금 생각난 건데, 더 어릴 땐 버스에서 서서 졸다가 진짜 쓰러진 적도 있다.) 잠결에 쓴 글씨를 하나도 못 알아보고 울상 지으며 다시 필기하던 기억이 난다.
태생이 롱 슬리퍼인 내가 그래도 자기 계발을 시작하겠다며 일찍 일어났을 땐 그 성취감이 어마어마했다. 나만의 상상처럼 새벽에 일어난다고 뒷목이 엄청 당긴다거나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느낌도 없었다. 오히려 정신이 가장 맑게 깨어나는 시간이라 새로운 에너지가 차오르는 기분도 들었다. 책 속의 내용처럼 나만의 보너스 시간이 생긴 것 같아 좋았다.
하지만 내 안의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잠’은 만만치 않은 녀석이다. 내가 살짝 방심한 사이 그 멋진 성취감보다는 포근함을 향해 냅다 달려가 버렸다.
하지만 번번이 낙첨되어도 희망을 잃지 않고 새로 산 로또를 지갑에 다시 갈아 끼워놓는 것처럼 나도 '내일은 꼭 일찍 일어나야지.' 하고 매일매일 비장한 각오로 잠을 청한다. 그러다 보면 어쩌다 한 번씩(10퍼센트도 안 되는 확률로) 여섯 시에 일어나곤 한다. 그러면 또다시 기쁜 마음에 ‘내가 어떻게 일찍 일어났지? 어제도 같은 마음으로 잤을 뿐인데.’ 하며 일어난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전날의 신체 활동, 컨디션, 카페인 섭취량 등 분석을 시도해 봤지만 이렇다 할 인과관계를 못 찾았다.
조금은 우습지만, 내게 잠은 어느 정도 운의 영역인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건 로또 당첨될 확률보단 아주 높은 확률로 일찍 일어난다는 것.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오늘도 어제처럼 ‘일찍 일어나게 해 주세요. 제발 제발 제발.’을 외치며 잠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