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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loura Mar 09. 2023

글보다 어려운 카톡

얼마 전 ‘기자의 글쓰기’라는 책을 읽었다. 절판되어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책인데 어찌 된 일인지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들의 필독서가 되어 버려 중고 시장에서 웃돈을 줘야만 살 수 있는 책이라고 한다. 구하기 어려워지자 더 궁금해졌고 국회도서관 우편 복사 서비스를 통해 일주일 만에 구해서 읽었다. 글이 술술 잘 읽힌다. 글은 곧 말이라더니 정말 작가가 앞에 앉아서 이야기하듯 재미있게 읽힌다. 또 재미있는 것은 글쓰기 강좌 수강생들의 생생한 수필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작가라는 직업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지만 글쓰기에 목마름이 있다는 것이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에 더 친근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중에서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만든 글을 읽었다.     


“선생은 다리를 철썩철썩 때렸다.”라는 문장 때문이었다.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스승이 뇌종양으로 왼쪽 마비가 생겼다.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세계를 누비던 스승은 머릿속 작은 종양 때문에 주저앉아 버렸다. 병을 얻은 것보다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것이 원망스러워 자신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철썩철썩 때린 것이다.    

 

어린 시절 이모집에서 사촌 동생과 함께 놀 때도 그랬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마당을 빙글빙글 돌고 있을 때 사촌 동생이 쫓아왔다. 술래잡기처럼 신이 나서 나는 더 빠르게 페달을 밟았다. 마당은 수돗가며 장독대 때문에 페달 몇 번만 밟으면 한 바퀴를 다 돌 만큼 좁았다. 그런데도 사촌 동생은 나를 잡지 못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해 제대로 걷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당을 몇 바퀴쯤 돌았을까. 동생이 결국 주저앉아 원망 섞인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다리를 철썩철썩 때렸다. 유치원 때 기억이니까 벌써 삼 십 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다. 잊은 줄 알았던 그 기억이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책 속의 한 문장을 보고 생생히도 떠올랐다.     


그 사촌동생과는 추억이 많다. 우리 쌍둥이 자매와 두 살, 네 살 터울의 남매들은 우리를 곧잘 따르고 좋아했다. 이모가 일을 하러 가면 초등학교 2학년이던 우리가 어린이집에 동생들을 데리러 갔다. 문방구에 데려가 저금통을 깬 돈으로 알록달록 캔디도 사주고 만화 비디오도 빌려줬다. 가끔 한글도 가르쳐줬는데 오랜만에 만났을 때 ‘컨츄리콘’이라는 과자봉지를 그대로 읽어서 깜짝 놀랐다. 그 후로 우리 집이 대구로 이사 갔을 땐 보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도 방학마다 왔다. 그러다 여느 집처럼 사춘기를 차례로 보내면서 데면데면 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애틋한 사이라는 건 서로 잘 안다.      


생각난 김에 카톡이나 해볼까 하고 휴대폰 목록을 쓸어내리다가 안부인사 대신 글을 쓴다. 아무리 애틋해도 ‘잘 지내지?’ 그 한마디가 이렇게 쓰는 글보다 어려운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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