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야, 안녕? 엄마야.
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처음으로 편지를 써. 너에 대한 글은 많이도 썼는데 이렇게 막상 편지를 쓰려니 부끄럽기도 하네. 언젠가 우리 연우가 한글을 떼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직접 이 글을 읽을 생각을 하니까 더 잘 써야겠다 싶어.
2년 전 오늘, 네가 태어난 날의 이야기를 해줄까?
그날은 엄마가 태어나 난생처음으로 수술을 한 날이기도 해. 수술은커녕 입원해본 적도 없던 엄마는 속으로 얼마나 긴장되던지 수술베드에 눕기만 했는데도 입술이 덜덜 떨리더라. 영화 속 한 장면에 뚝 떨어진 것처럼 비현실적인 기분마저 들었어. 천장에 누워 하얀 불빛만 보고 있는데 나이 든 수녀님이 들어오셔서 엄마 손을 꼭 잡고 푸름이와 엄마의 건강을 위해 기도해 주셨어. 곧이어 수술방으로 들어갔는데 멀리서 들리는 삑- 삑- 거리는 기계음 소리와 차가운 공기에 다시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면서 온몸이 떨렸어. 엄마도 모르게 눈물이 자꾸 흘렀지. 그땐 아마 너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렘보다는 긴장이 컸던 것 같아. 마른 수건으로 엄마 눈물을 닦아주던 의사 선생님이 긴장하지 말라며 다독여주셨지. 의료진들이 모두 모여 다시 한번 기도를 해주셨어. ‘이제 곧 소중한 생명이 태어납니다.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하게 수술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는 내용이었지.
수술 준비가 모두 끝났을 때 의사 선생님이 한 마디 하셨어.
“우리 2분 뒤에 수술 시작합시다.”
시계가 조금 빨랐나 봐. 마지막 진료 때 세시에 수술해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약속 시간에 맞춰 2분을 기다려 주신 거야. 제왕절개를 하는 산모들이 좋은 사주를 위해 태어난 시를 받아오는 경우도 있어서 시간을 정확히 맞춰주려는 배려였지. 한창 의료 파업일 때라 일분일초가 아쉬웠을 텐데 사소한 배려까지 해주신 감사한 분이셨어.
2024년 3월 25일 오후 3시 2분.
수술은 세시 정각에 맞춰 시작되었고, 우리 푸름이는 딱 2분 만에 나왔어. 너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의사 선생님이 ‘아이고 목소리 크다’ 하셨지. 빨갛고 쭈글쭈글한 게 정말로 목소리는 어찌나 우렁찬지 그 소리가 아직도 선명하네.
돌이켜 보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어. 엄마 모르게 연우는 언제 이렇게 큰 걸까. 연우가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이 고맙고 기특하면서도 마음 한켠엔 늘 아쉬움이 남아. 보고 있어도 아깝기만 한 연우야. 너는 지금 이 시간들을 기억 못 할 테지. 괜찮아. 네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이 많은 아이인지 엄마가 대신 기억하고 기록해 줄 거야.
어제도 연우는 새벽에 일어나서 한참을 뒤척였어. 지난 주말에 다녀온 동물 농장이 생각났는지 염소, 말, 토끼 흉내를 내기도 하고, 배가 고파서 밥! 밥! 을 외치기도 했지. 불 꺼진 주방에서 밥 대신 바나나를 먹고도 너는 한참이나 잠들지 못했어. 엄마도 옆에서 연우가 잠들 때까지 한참이나 토닥였단다. 괴로운 듯 오래도록 잠을 청하는 너에게 엄마가 해준 말 기억나? ‘연우야, 생일 축하해’ ‘엄마아빠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사랑해.’
요즘 연우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싫어’ 거든. 엄마도 싫고, 아빠도 싫고, 연우도 싫다고 말하는데 어제는 엄마가 해주는 말마다 너무 예쁘게 ‘네-’라고 대답해 줘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이제 곧 말을 하게 되면 그 입술로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순간도 곧 오겠지? 벌써부터 기다려지네.
아니야, 그래도 우리 연우는 천천히 말해도 좋을 것 같아. 아직 말로 표현을 못해서 엄마가 연우를 더 자세히 관찰하는 일도 아주 즐거운 시간이거든. 연우가 자기 전에 엄마 손목을 잡고 ‘띵띵-’ 하면 손목시계로 알람을 맞춰 달라는 이야기고, 엄마 손가락을 잡고 천장을 향해 동그라미를 그리면 달 그림을 보여달라는 뜻이야. 지난 주말엔 연우가 간식을 먹다 말고 ‘악어!’를 외치더니 정말로 책장에 달려가서 악어 그림이 있는 동화책을 꺼내 오는 게 너무 귀여웠어. 머릿속에 연우 나름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말이야.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연우는 기차 장난감을 좋아하는데 기차를 ‘치코’라고 불러. ‘또’라는 말을 할 땐 ‘꼬’라고 말해. 아빠가 연우를 거꾸로 들어주거나 목마를 태워줄 때 주로 ‘꼬!’를 외치면서 손가락으로 ‘한번 더’를 표현하는데 아빠는 그 모습을 귀여워해서 항상 여러 번 태워주곤 하지. 그렇다고 연우가 엄마아빠한테 요구만 하는 건 아니야. 엄마가 힘들어 보이면 말없이 뒤로 다가와서 어깨를 주물러 주기도 하고, 청소할 땐 항상 연우도 작은 청소도구를 들고 바닥을 같이 닦아줘. 연우가 기억 못 하던 시절에도 연우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기지?
오늘도 연장반에 혼자 남아 있을 너를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파. 이렇게 예쁜 아기를 두고 회사로 출근해야 하는 게 너무 속상해서 엄마 아빠는 아침에 한참이나 발을 동동 굴렀지. 하지만 연우야. 엄마가 작년부터 일을 시작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너와 떨어져 있어도 충분히 사랑해 줄 수 있다는 거야. 몸은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생각하면서 연우도 엄마도 자라고 있다고 믿어. 엄마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연우를 오래 바라보고, 오래 기억하고, 오래 사랑할게.
우리 연우, 엄마 아빠에게 와줘서 고마워. 두 번째 생일을 맞은 연우야. 진심으로 축하해.
사랑해.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