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보다 잠, 잠보다 아기

by 로엘라

어릴 땐 자고 일어나야 식욕이 생기는 줄로만 알았다. 전날 저녁에 남겨둔 피자를 먹으려고 아침 일찍 일어났다는 지인의 말을 농담으로 들었다. 배고파서 잠을 못 잤다는 표정이 꽤나 진지한 데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옆 사람들을 보고서야 식욕이 먼저인 사람도 있구나 눈치챘다.


나는 밥보다 잠이다. 어릴 적 엄마가 가장 부러워한 자식이 ‘안 깨워도 스스로 일어나는 아이’였을 만큼 한번 자면 쉽게 깨지 못했다. 친척 집에 놀러 가서 거실에 나란히 누워 자도 다음 날 일어나면 내 이불만 동그랗게 남았다. 언제까지 자나 싶어서 안 깨웠더니 해가 중천이 되도록 일어나질 않아 엄마 속만 더 태웠다.


잠이 많은 내가 아이 낳기를 고민한 것도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잠을 못 잘 것 같아서.’


그래도 신생아 새벽 수유만 좀 고생하면 이후엔 괜찮아지지 않을까 희망을 품고 임신했다. 조카는 생후 7개월부터 12시간씩 통잠을 잤다. 그런 아기라면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임신 기간은 행복했다. 남편이 오후에 출근하고 나면 퇴근해서 올 때까지 실컷 잠만 잤다. 대학가 원룸에서 매트리스 하나 달랑 놓고 살던 신혼집이었다. 한눈에 주방과 화장실이 훤히 보였다. 열 걸음 채 걷지 않아도 집구석구석을 돌아볼 만큼 아담한 곳이었다. 낮에도 불을 켜지 않고 매트 위에 가만히 누우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적막한 그곳에서 겨울잠을 자듯 열 달을 보냈다.


남편은 밤늦게 돌아왔다. 늦은 저녁을 먹고 매일 드라이브를 했다. 차 안에서 ‘내년 이맘쯤엔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할 거야.’ 하면서도 실감은 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새벽 세 시. 언제부턴가 그 시간엔 뱃속의 아기도 자지 않고 꼬물거리며 자기 존재를 알렸다.


24개월이 지난 지금, 연우는 지금까지도 새벽 세시에 벌떡 일어나 엄마를 찾아 안방으로 뛰어온다. 엄마를 닮지 않은 탓에 잠보다 밥인 아이다. 자기 전엔 치즈를 달라고 울고, 쪽쪽 빨아먹는 간식을 달라고 입술을 쪽쪽 내민다.


연우는 잠들기도 어렵고, 잠들어도 자주 깨는 아이다. ‘아이를 키우면 잠을 못 잘 것 같다.’는 막연한 걱정이 24개월째 지독한 현실이 되었다. 뒤집기를 처음하고 다시 되집기를 못해서 깼고, 자기도 모르게 앉느라 깼다. 그리고 자다가도 침대를 잡고 서느라 깼다. 지금은 그냥 깬다. 엄마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두 돌이 다되도록 통잠은커녕 하루 평균 수면시간이 12시간이나 될까. 눈 밑에 다크서클을 달고서 안 자겠다고 버티며 엄마의 화를 돋운다. 평소 아이 대하는 내 모습을 보고 ‘생불’이라 부르던 남편은 ‘제발 잠 좀 자자’며 아이 앞에서 오열하는 나를 보고 어쩔 줄 몰라했다. 아빠가 대신 재우려 하면 더 크게 울며 손짓으로 ‘나가’라고 휘이 내젓는다.


다행히도, 인지가 조금씩 생기면서 캄캄한 밤엔 자야 한다는 걸 아는 눈치다. 새벽에 깨면 나가자고 떼쓰는 대신 혼잣말을 하며 잠을 청한다.


‘일곱.. 아홉!’

‘일곱.. 아홉!’


‘아빠 엄네’ ‘응, 아빠 안방에서 코 자고 있지?’

‘엄마 엄네’ ‘엄마 연우 옆에 있잖아’

‘헝아 엄네’ ’ 연우 형아 보고 싶어? 5월에 만나러 가자.’


‘없네’라는 말을 배운 지 얼마 안 되어 자신이 아는 단어 조합으로 문장 만들기만 여러 번. 눈 감고 정해진 답을 하다 보면 연우도 어느새 모로 누워 물에 잠기듯 잠에 든다.


연우가 두 시간 만에 잠들면 나만 눈이 말똥말똥해진다. 머리는 깨질 듯 아프고 눈은 뜨겁다. 조금 전까지 연우가 내뱉던 문장들을 한 번씩 곱씹어 본다. 발바닥도 한번 잡아보고, 머리도 넘겨준다.


대학가 원룸에서 얼마나 많이 잤던지 자고 일어나면 나 혼자서 우주를 떠도는 기분마저 들었다. 시간조차 흐르지 않는 곳에서 문득 외로웠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못 자도 좋으니, 어서 빨리 뱃속의 아기를 만나고 싶다고.


오늘처럼 잠이 부족한 날이면 그때 그 생각 하나로 버틴다. 못 자도 좋으니 빨리 만나고 싶다던 마음.


적막했던 방이 연우의 숨소리로 가득 찬다.


여전히 밥보다 잠이지만, 그래도 잠보다 연우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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