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버스,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에 겨우 비집고 들어가 자리 잡았다. 중심을 잃지 않으려 발가락 끝에 힘을 주고 버티고 있는데, 등 뒤로 웬 아기의 목소리가 들린다.
새해가 지나 이제 막 세 살이 되었을까.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서 아기는 창 밖 어둠이 신기한 듯 연신 쫑알거린다. 우리 집 아기처럼 차만 타면 그곳이 실내인 줄 아는 듯 양말을 벗은 채 맨발을 엄마 다리 위에 떡하니 올려놓았다. 땅은 얼마 밟아보지도 않은 탓에 발바닥엔 오동통 살이 올라 귀엽다. 작은 발톱 위로 빨간 점이 하나씩 박혀 있다. 엄마처럼 자기 발에도 똑같이 색칠해 달라고 엄마를 붙들고 조른 날이 있었겠지.
목소리를 들으니 얼굴이 궁금해서, 자그마한 맨발이 앙증맞아서 힐끔힐끔 훔쳐보다가 아차 싶어 시선을 거두었다. 천진난만한 아기를 다루는 엄마의 목소리에 난감함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말이 통하지 않을걸 알면서도 괜히 아이에게 쉿!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입단속을 한다. 아기를 보는 주변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다는 사실은 새까맣게 모른 채 아기 엄마 혼자 바쁘다.
두어 달 전, 기침감기를 막 시작한 연우가 하루에도 몇 번씩 토를 했다. 자는 중에도 기침을 하다가 토를 하는데, 기어코 눈동자가 떨리고 숨이 가쁜 듯 헥헥거렸다. 순식간에 39도까지 열이 오르는 아이를 지켜볼 수만은 없어서 아이를 둘러업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태어나 처음 가본 그곳은 적막 그 자체. 간간히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밤늦은 시간이라 환자 대부분은 링거를 맞으며 잠을 청하고 있었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연우의 호흡기 치료가 시작되었다. 쉬익- 소리를 내며 새어 나오는 가스가 무서웠을까. 졸음과 싸우며 힘없이 엄마 품에 안긴 아기가, 놀란 듯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치료를 하는 십 분 동안 아이는 쉬지도 않고 울부짖었다.
아무리 달래도 달래 지지 않는 울음을 십 분째 내뱉던 연우가 야속할 정도였다. 비명을 지르는 아이를 안고 토닥이면서 할 수 있는 건 주변 눈치를 살피는 것뿐이었다.
어서 시간이 흐르기만을 바라며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아이의 소리에도 개의치 않고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불편한 기색도 없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평온하기까지 한 표정. 죄송한 마음에 고개라도 숙여 인사하고 싶은데 아이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는 어른들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무관심이 오히려 고마울 때도 있다는 걸. 난처해진 엄마에게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 의도적으로 쳐다보지 않는 사람들의 배려에 마음이 울컥했다.
아이를 키우면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 늘 긴장하게 된다. 잔뜩 움츠러든 채 아이를 감추며 살듯 지내온 날들이 많았다. 생각해 보면 날 선 눈빛을 받은 적도 없으면서 괜스레 아이와 내가 다칠까 봐 먼저 몸을 사렸다. 버스에서 만난 아기의 살찐 발바닥 덕분에, 그날의 퇴근길이 조금 더 밝아졌다는 걸 아이의 엄마가 알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날의 무관심으로 오히려 마음이 따듯해졌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