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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hilarious Nov 12. 2023

대중성보다는 감독의 고집이 더 중요했던

뒤늦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리뷰

90년생들은 알 것이다. 정도에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지브리와 해리포터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그런 추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브리의 신작이 나온다는 사실은 설레이게 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지브리의 최근작들이 조금 주춤했던 적이 있긴 하지만 그 신작들도 거의 10년은 된 작품이니 새로운 지브리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그래서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고들 하던데 그 팬심 하나로 영화를 보러 갔다. 보고나니 느껴지던 것은 영화가 정말 관객의 눈치를 볼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관객이 어떤 것을 보여줘야 좋아할까를 고민했다기 보다는 자신의 예술혼과 철학을 담는 데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가는 관객의 몫이지만 관객의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일념이 보여서 좋았다.


1. 인류애가 사라진 전쟁의 시기, 선택에 갈림길에 선 주인공

이 영화의 중요한 화두는 죽음이다. 죽음을 당한 사람도 있고, 죽음을 목도한 이들도 있고, 죽음을 방관한 이들도 있다. 전쟁의 시기에 들어서면, 여러가지의 방식으로 죽음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끝없이 생겨난다. 그런 시기를 살아내고 있는 마히토는 어느 날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괴기한 새의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면서 어떤 환상의 세계로 인도된다. 그 세계는 새 생명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니 태초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 같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결된 세계인 것은 확실한데, 그 곳에서 마히토는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의 젊은 나날을 보게 된다. 미래에 화재로 죽게되는 그녀는 태초에 세계에서 불을 다루는 것을 보니 그녀의 삶에서 불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매개체인 것 같다. 이런 세계를 보고 있자면 인간의 운명은 어쩌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발버둥을 쳐도 결국 만나게 되는 어떤 매개체는 존재하는 것 같다. 내 삶에서는 그것이 글인 것 같은데, 글 쓰기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일은 직업으로 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글로 먹고 살고 있는 것도 그렇고, 이렇게 아무말 대잔치 글을 써내고 있는 것을 보면 철자와는 뗄 수 없는 걸까 생각한다. 아니, 그냥 이과적 머리가 없는 인간의 변명일까.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의 운명은 결국 정해져 있는 걸까 싶다가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현재의 집중해야 한다고 다시 생각을 고쳐먹는다.  과거는 지나간 일이니 어떻게 할 수 없으나 현재, 미래는 결국 한 인간의 선택으로 결정되는데, 현재의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나의 미래는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거지같은 과거에 얽매여 있을 것인지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마히토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과거에 매여 있었다면 어머니를 죽였던 전쟁의 광기를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구축할 수 있는, 자신만의 균형을 찾을 수 있는 그 세계에 남아 있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히토는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거지같은 현실이라도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던 것 같다. 현실을 도피해 새로운 나만의 세계를 만드는 것 보다는 현실에 부딪혀 보고 싶었던 것 같다고 이해했다.


2. 다소 허무한 결말

영화가 전체적으로 친절하진 않다. 결말에 현실 세계로 돌아온 마히토는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 등등 모험을끝내고 돌아온 그의 모습을 끝으로 뒷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아 엥? 스럽긴 하다. 뭐, 돌아오고 바로 끝나는 게 어딨어 라고 생각했는데, 곱씹어보니 약간 구운몽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던 걸까. 꿈에서 깨어난 마히토의 삶은 관객이 알아서 상상하라는 뜻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마히토는 그 곳에서의 경험들을 점점 잊어갈 것이지만 그의 무의식 속에 깊게 자리해 결국 그의 인생의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과거의 어머니의 죽음을 덜 떠올리게 될 것이고 새엄마와의 새로운 관계를 맺고, 새 생활에 적응해 나갈 것이다. 마치 불로 인해 죽게 되었어도 '널 낳았던 멋진 일'을 놓칠 수 없다는 마히토 엄마의 말을 곱씹고 있자면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살다보면 간헐적으로 좋은 일들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준다. 나의 과거가 거지같았을 지언정 이 거지같음이 영원하지 않고, 뜻밖에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인생은 예상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 오는 것이기에 한 번은 살아볼 만 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라고 내 나름의 결론을 내었다.

영화가 친절하지 않으면 보는 동안에는 당황을 하게 되는데, 오히려 곱씹게 되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나름의 정답을 찾으면 그걸로 영화 한 편 다 본 게 아닐까. 그러다보니 오히려 영화의 메시지가 정확하다 못해 관객을 가르치려고 하는 영화들이 더 비호감을 느껴질 때가 있다. 이번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은 관객에게 메시지를 정확하게 구현하지 않고 추상적으로 여기저기 숨겨놓은 듯하다. 그리고 마무리조차 정확하게 짓지 않았다. 관객에게 불친절한 영화이긴 한데, 모든 해석의 자유를 관객에게 넘긴 것 같다. 혹자는 그걸 무책임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혹자는 어떻게든 의도를 찾아내고자 기를 쓸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답을 찾아 합리화를 할 수도 있다.


그 결론이 뭐든 미야자키 하야오는 관객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저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어떻게 보면 지독히도 예술가스러운 그의 기질이 느껴져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렇게 계속 타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영화로 돈을 버는 사람이지만 뚝심이 없는 것만큼 멋없는 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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