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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ica n May 20. 2024

어제로부터의, 그리고 오늘과 앞으로의 나

뿌리/확증편향로부터 시작하는 출발 #2


 자기 신념과 고집의 경계에 대해, 허물을 벗지 못하면 죽는 갑각류와 곤충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곰곰이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다. 그 말을 들려준 방송인은 이어 이런 말을 했다. 그들은 탈피하지 못하면 죽지만, 사람은 곧장 죽지 않기 때문에 티가 바로 나지 않는다고. 마침 내가 대학생 시절부터 입버릇처럼 올리던 말이 또 내 머리에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와, 이번에 그 말을 누가 했는지 싶어 찾아보았다.

어제 한 일이 아직도 대단해 보인다면,
오늘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과거 성취가 현재의 성취보다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수년 전에 한 일을 보면서 지금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발전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 앨버트 허버드


내가 기억하는 문장은 전문 가운데 앞의 두 문장이인데- 결국 앞으로 더 나아가는 것을 지향하지만, 단순히 발전적인 태도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과거가 되어버린 것들에 안주해선 안된다는, 그것은 현재가 아니라는 의미 때문에 이 말이 항상 가슴에 와닿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어디서부터 유래했는가, 내 생각이며 믿음, 철학 모두 때로는 나만의 것일 수 있다는 객관화가 필요해졌다. 뿌리는 때로 흔들리지 않는 지지대가 되지만, 동시에 어딘가로 출발하지 못하는 닻이 되기도 한다. 요새 여기저기 정리를 하면서, 나름의 결단(어떻게 보면 구국의 결단)을 할 순간을 자주 마주하게 되는데- 그동안 내가 미뤄온 숙제려니 하면서 매번 눈을 질끈 감는다.


그간 한 보따리 쌓아놓았던 책을 팔러 가던 길, 한 2년만인 것 같다.


 내가, 나의 현재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추동’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일까, 그것으로부터 헤어 나와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모순과 어떤 결핍을 안고 살아가고, 그것이 삶을 움직이는 하나의 큰 동력/축이 될 수 있지만, 결국 그것으로부터 어떻게 졸업하고 성숙해질지가 '삶의 여정'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각자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가치관과 주관을 쌓고 살아간다. 그것은 나를 안정되고 단단하게 지켜주는 지지대며 안전망이 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내가 더 넓은 세계를 마주하고 사고하게 하는데 가림막이 되기도 한다.

 한 사람의 경험량은 한계가 있고, 때문에 그 일부는 분명 일리가 있는 동시에 전체의 일부이므로-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각자의 배경과 입장, 그리고 논리 밖의 무수히 많은 감정이며, 돌발적인 변수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배는 닻을 내리고 정박할 때 가장 안전하지만, 우리 배는 평생 정박만 하고 있을 수 없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삶을 위해 우리는 아주 잠깐이라도 항해를 나서야 한다. 그 항해 동안 닻은 반드시 거두어 놓아야 하는 상태가 되며, 거친 파도를 만나지 않더라도 잘못된 앵커링은 배를 전복시킨다.

  결국 우리는 항해와 정박 모두의 의의를 살피며, 부정이 아닌 인정과 반성 그리고 포용을 토대로 성장하고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병원, 치과, 피트니스클럽- 한동안 걸음이 뜸했다가 오랜만에 찾을 때면, 언제나 '한꺼번에 밀린 변화며 교정'을 감당하느라 곤죽이 되곤 한다.

 그럴 때는 매번, 틈틈이 꾸준히 챙겼으면 더 나았을텐데 싶은 반성이 드는데, 다른 한 편으론 고통스럽고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이지만 그래도 이제부터 하나씩 고쳐 갈 수 있을 거란 마음을 갖곤 한다.

 앞으로 좀 더 신경쓰면서 챙기고 살아야지-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작심삼일을 매번 고쳐잡자면서.


 그런 연유로, 앞으로 누군가 나에게 무어라 말한다면, 그것을 바로 부정하거나 핑계 대지 않고, 건성으로 즉답하지 않으며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연습이 필요하겠다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의 세계로부터 반걸음 빠져나와, 보다 넓은 원으로 확장해가는 시작이지 않을까. 요새 삶의 안팎으로 이게 참 쉽지 않지만, 언제는 또 아니었는가 싶다. 삶은 견딜만한 정도의 숙제를 내어주니, 이 또한 한참을 슬기롭게 마주하고 나면 또 새로운 시야와 생각이 트이겠지. 결국 도망치거나 외면하지 않는 성실한 직면만이 나를 성장하고 변화시켜 준다.


- 2024. 5. 1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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