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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훈 Sep 12. 2024

대환장파티에서_4화 또 다시

동네의사의 환자일기 시리즈5

대환장파티에서...4화_또 다시



고관절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상황이어서 몇 차례 치료를 했는데 이번에는 초기반응이 너무 약했다. 두 세번 치료하면 분명히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도통 반응이 없었고 밑빠진 독에 물붓기를 하는 것 같았다. 불안, 공포라는 감정이 온몸을 휘감고 방패를 치고 있는 것 같았다. 프롤로 주사치료와 도수치료를 다 튕겨내는 것처럼 느껴져서 무슨 다른 일이 없냐고 수차례 물어 보았다.




OOO님은 고개를 돌리며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더이상 치료에 진전이 없으면 입원이라도 해서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이다. 이렇게 계속 넘어지는 상태에서는 치료 후에 귀가하는 것도 위태위태해 보였고 다리에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문제는 이런 힘줄염과 불안 장애를 함께 제대로 접근하여 치료할 만한 병원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대학병원은 중증도 기준에 맞지 않고 수술할 상황도 아니라서 입원을 시켜주지 않을테고 일반적인 정형외과에서는 심리적인 케어가 어려울 것이다. 정신과에 입원하자니 힘줄염을 잘 치료해 줄 수 있을지... 참 난감하다.


토요일 저녁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OOO님)


안녕하세요 몇 번이고 물어보셨는데

대답 안 드려 죄송해요.


원장님은 정신과 의사가 아니신데

정신과 의사라도 수치스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사실은 신고 안했고 서울에서 또 맞았어요.


협박이 무서웠구요.


서울 집 내놓고 이사하고 왔습니다.


왼쪽 다리가 잔상이 남아요.


상처는 자해했어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치료를

원장님께 받던지 입원을 하라면

의뢰서 받으러 월요일 내원하겠습니다.


말장난 같지만 속마음은 지난번처럼 좋아지면 좋겠습니다.


어디 병원을 가야 할지 막막해서 대구 오기 전 가능하냐고 여쭤본 거랍니다.


좋아질거라고 확신해주신 덕분에 용기가 생겼었어요.


어제 누군가 이야기할 때


의견인지 사실인지 생각하고,

사실만 받아들이고,

내가 받아들여야만 효과가 있는거


라는 귀한 말씀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걷는 게 자신이 없어 누워지냈다가 보조기로 연습도 하고 의지가 생기기도 했어요.



나쁜 생각이 드는 건 다리가 이렇게 힘이 없어서 사람들의 시선도 두렵구요.


원장님 얼굴 보고 말씀드릴 용기가 없었고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아 또 이렇게 구구절절 씁니다.



3일째 물어보셨고 오늘 안 잡히는게 있다고 하셔서.. 저도 찝찝해서요.


욕을 먹더라도 말씀드리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음 단단히 먹겠습니다.



세상엔 왜 이렇게 미친 놈들이 많을까?


OOO님에게 꼭 필요한 것은 용기 뿐이다.


이 상황을 반전시킬 힘은 OOO님 안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데스크 직원들, 간호팀원들, OOO님을 담당하던 치료사들 모두가 염려하고 있었다.


걱정과 염려는 상황을 반전시키는 좋은 에너지가 되질 못한다.


응원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OOO님에게 조금이라도 높은 에너지를 보내야겠다.


언어 그 자체가 지닌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조절하면서 사용해야만 한다.


용기와 긍정성을 높일 수 있는 언어를 선택하는 것도 치료과정에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나)


그러셨군요.


정말 힘드셨겠어요.


잘 하셨어요.


이렇게 용기내어 여기까지 오신 것만으로도 큰 걸음 하신 겁니다. 좋아지실 거에요.


이런 직접적인 상처는 생각만으로 해결되진 않습니다. 마음을 다잡는 것도 중요하고 몸을 추스르는 것도 중요해요. 두 가지 다 함 께 하면 분명히 한 달 뒤엔 다른 모습일 거에요.


세상엔 미친 놈이 꽤 많아요.


그런 인간들만 보면 세상이 온통 정글같아요.


그렇지만 눈을 돌려보면 OOO님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병원 모든 식구들이 OOO님을 걱정하고 응원하고 있어요.


눈치볼 것 없어요.


몸도 마음도 회복하고 하루 하루 조금씩 더 앞으로 나아가도록 도울게요.



이 지구별 여행은 내 맘대로 끝나지 않을 거예요.


우릴 이 땅으로 보낸 그 손길이 부드 럽게 우릴 감싸안는 그 순간까지는 자연스럽게 살아요.


끝나는 날도 자연스럽게...

오늘 하루도 자연스럽게...



OOO님)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 가장 빠른 예약이 까마득해서 그냥 극복하고 싶었어요.


원장님께서 고지혈증을 약없이 극복하신 것처럼요.


말씀, 조언, 저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도 없는 진흙을 걷는데 넘어져도 행복했습니다.



근육이 생기는 느낌도 받았구요.


늦더라도 건강한 모습 보여드릴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스스로 극복하고 싶었다는 것은 큰 변화다.


용기를 낸 것이다.


두려움과 불안에 끌려갈 뻔 했지만 용기를 내고 자신을 믿어 주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더구나 맨발걷기를 해보았다니 큰 발전이다.


젊은 여성분들 중에는 두려움과 불안에 맨발걷기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쌀을 찌푸리는 분들도 꽤많다.


그런데 스스로 맨발걷기에 도전한다니... 멋지다.



이거면 됐다!



넘어져도 일어나고 근육에 힘이 생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니... 다행이다.



희망적이다.


내가 OOO님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처럼 OOO님도 나를 믿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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