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훈 Sep 17. 2024

벌써 1년... 웃음 풍년 한가위

환자들이 행복하면 우리도 행복해요

벌써 1년... 웃음풍년 한가위



20년 간 의사생활을 해도 여전히 버거운 분들이 있다.


작년 이맘때 3개월간 음식을 삼키지 못해 우리 병원을 찾으셨던 분이었다.


아산병원, 경희대한방병원, 경대병원, 영대병원, 밀양의 어느 용하다는 병원 등 온갖 병원에서 수도 없이 내시경을 하고 CT, MRI를 찍었지만 원인을 몰라 유언장을 써놓은 분이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이상하게도 내 눈에는 환자분 만큼이나 남편분의 표정이 크게 들어왔다.


그분의 표정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다.


아내 옆을 지키느라 사업체를 포기하려던 참말로 순박하고 지고지순한 남자였다.



남편분은 우울증 약을 드시고 있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많은 어려운 고통을 해결해 왔건만 여전히 버거운 순간이 있다.


일 년 전 죽음의 그림자가 잔뜩 드리운 두 분을 보며 묵직한 부담과 함께 마음속으로 “도전!!”을 외쳤다.


자율신경실조증 증상의 극단적인 형태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이 분을 상담하고 치료하려면 한 시간이 지나간다.


대기실은 기다림에 지친 환자들로 북새통이 된다.


착한 우리 데스크 직원들은 원장의 이런 진료스타일 덕분에 사정하고 달래느라 진땀을 뺀다.


십여 차례의 치료와 치료예정 시간에 오지 않은 날은 퇴근 전에 40분 정도 환자분과 남편분을 번갈아 통화하며 도전을 계속했다.



그 도전은 3개월 간 계속되었고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명절 전에 두 부부가 보름달만큼이나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진료실로 들어왔다.


진료를 돕는 선생님이 대기자 명단에 이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내게 귀띔해 주었다.



원장님, 반가운 얼굴이 왔네요^^



작년 이맘때 그 난리통에 나를 도와 이 분을 함께 죽음의 언덕에서 끌어올리느라 수고한 모든 선생님들이 함께 기뻐했다.


대기실을 북새통으로 만들던 그분들이 이제는 대기실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한 시간 동안을 직원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며 정신없이 진료에 바쁜 나를 기다려 주었다.




이 분들의 환한 웃음을 보며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린 얼마나 아름답게 연결되어 있는지... 새삼 감사한다.


생사즉열반


생사즉열반이요, 번뇌즉보리라고 하던 깨달은 이의 말이 생각난다.


북새통이 곧 웃음바다요, 죽음의 그림자가 풍성한 삶의 근원이다.


그렇게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직원들도 모두 뿌듯해하며 살아가는 보람을 느낀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도 어떤 도전자가 나타날지 모른다.


그래도 피하지 말자!


부담스럽다고 피하면 내 뒤는 낭떠러지다.


벌써 1년 전...


그때 내가 이 분들을 다른 병원을 가보시라고 피했었다면 지금 이 아름다운 얼굴을 볼 수 있었을까!


두 부부의 환한 얼굴이 한가위 보름달 같아서 너무 보기 좋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피하지 마시고 아름다운 지구별 여행을 계속하시기를...


고통은 혼자 오지 않으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대환장파티에서_4화 또 다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