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사의 환자일기
2023년 11월 26일 (일)
드디어 강의 당일이다.
일요일 아침인데도 400여 명의 의사들이 강의에 참여했다.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거의 5시 전후에 일어나 준비하고 와야 하는데도 서울성모병원 대강당이 가득 차 있었다.
첫 차를 타고 온다더니 정말 강의장 입구에서 수줍게 웃으며 인사하는 환자분을 만났다.
나는 연자로 초청이 되었기 때문에 진행요원들에게 부탁해서 강의록을 하나 더 얻어서 환자분께 건넸다.
학회장님과 인사도 하고 강의도 준비해야 해서 환자분께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순 없었다.
이날 내 강의에 대해서는 다행스러운 점과 아쉬운 점이 모두 있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당일 새벽까지 열심히 자료를 줄이고 또 줄여서 1시간 반 안에 강의를 마무리할 정도로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내 강의가 많은 통증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들에게도 낯선 내용일 것이 자명한데 하필이면 점심시간 직후에 시간이 배정되었다는 것이다.
의사도 사람인지라 제아무리 집중하려고 해도 식후에 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대부분의 학회에서 점심 식사 후에는 많은 분들이 꾸벅꾸벅 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 강의가 통증의학에다가 영성, 심리, 감정에 대한 생소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10명 정도 만이라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강의를 준비했다. 누군가 한 번은 욕을 먹더라도 시작해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자아에 대한 통찰, 감정을 중심으로 하는 심리적 기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만성통증의 해결은 영원히 깊은 바닷속에 잠긴 보물선처럼 동화 속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시작은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나는 현대의학이 통증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는 방식이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 손상이 분명한 급성 통증이 나 해부학적 이상이 생긴 통증에는 현대의학이 잘 대처하지만 만성통증은 조직 손상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바탕으로 하는 접근법은 종종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이 지점에서 환자는 절망하고 의사는 오리무중에 빠지거나 고통을 호소하는 분들에게 마땅히 해 줄 것이 없는 것이다. 나는 이런 한계점에 다다른 분들에게 새로운 길이 있음을 제시하고 싶었다. 21세기에 17세기의 통증 개념을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가급적 통증을 다루는 의사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최대한 뇌과학적인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영성, 감정의 문제를 접근하고 내가 치료했던 환자들의 사례도 함께 발표했다.
그.런.데!!
와우~ 점심시간 직후 한 시간 반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400명의 참가자들 중 조는 사람은 딱 세 사람뿐이었다.
워낙 강의를 많이 했던 터라 강의 파일을 보지 않고도 강의를 할 수 있는 정도였기에 나는 강의 중에 플로어에서 참가자들의 반응을 보아가면서 강의의 속도나 깊이를 조절한다. 그래서 몇 명이 졸고 있는지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집중도가 떨어지면 사례를 좀 더 생생하게 표현하고, 집중도가 높으면 병태 생리에 대한 메커니즘과 생리적 상호 관계들을 더 깊이 설명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날 강의에는 참가자들의 몰입도가 워낙 높아서 준비해 간 내용의 거의 90% 이상을 다 쏟아 놓을 수 있었다.
강의가 끝나고 난 뒤 다른 학회의 학회장님 두 분이 오셔서 인상 깊은 내용이며 만성통증과 자율신경치료에 꼭 필요한 부분을 잘 짚어주었다면서 칭찬하고 격려해 주셨다. 또 다른 통증의학과 선생님은 본인이 불교 수행을 꽤 깊이 했는데 자신에게도 좋은 통찰이 되었다면서 감사 인사를 하셨다. 그 외에도 수많은 선생님들이 발표 후에 질문과 감사 인사를 하셔서 약간 어리둥절했다.
한편으론 참으로 감사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만성통증과 자율신경실조증에 대해 영성에 기반한 자아에 대한 이해, 감정을 기반한 심리학적인 접근을 할 수 있는 바탕이 갖춰졌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만성통증과 세 가지 자아 연결>
https://youtu.be/7H61qdvCvsA?si=Q7hPNsyyxPLtN5Kf
OOO 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강의가 모두 끝난 뒤에야 확인을 했다.
OOO 님)
원장님 귀중한 경험하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눈물 쏟고 은혜를 받았어요.
원장님 딕션이 좋으셔서 다들 제일 집중했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물 많이 드세요.
답하지 마시고 대구 조심히 내려가세요.
정신없으실 텐데 아는 척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
도움이 되셨다니 저도 보람이 있네요.
부디 어디서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불안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내 마음속 작은 강아지의 소리에 끌려가지 마시길...
이대로 온전하고 이대로 좋은 줄 알면 이 세상은 충분히 살아갈 가치가 있는 곳이에요.
오늘도 아름다운 지구별 소풍이 되시길~
OOO님)
미래를 끌어와서 고통받지 말자!! ONLY 현재!!
지구에서 행복한 의사라 소개하시는 거.
환자들과 이렇게 논다는 표현이 너무 멋지셨어요.
의사분들한테 환자분들한테 이렇게 어루만져 주라고 대변해 주시는 것 같아서 가슴 어딘가 계속 쿵 했답니다.
원장님 저를 위해 어려운 자리에 큰 힘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원장님 만나서 진짜 행복해요.
원장님 최고!!
저는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환자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스스로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인 환자의 모습이 더없이 아름답다.
창조주가 사람을 만든 뒤에 만물에게 이름을 붙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가장 소중한 자신에게 가장 걸맞은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창조주가 부여한 사람의 권리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OOO님 입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게 된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