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주인공 빅은 결혼식장 앞에서 도망을 쳤다. 그렇게 사랑하는 캐리를 두고. 물론 현실 속에서는 ‘절대’ 벌어지면 안 될 일이지만... 이 지구촌상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다.
영화에서는 그가 도망간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거대한 불안감과 긴장감이 그를 도망치게 만들었다는 걸.
이렇게 빅처럼 결혼을 앞두고 엄습해 오는 커다란 불안감, 공포감을 ‘메리지 블루’ 현상이라고 일컫는다.
메리지 블루 (marriage blue):
결혼을 앞두고 겪는 심리적 불안, 두려움, 우울감
결혼 준비의 마지막 관문으로 통하는 메리지 블루는 예비부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현상이다. 특히 통계적으로, 결혼을 준비하는 여성의 30% 이상이 경험한다고 알려져 있다.
나는 다행히(?) 70%에 해당됐다. 메리지 블루는 오지 않았다. 분명 나도 누군가와 평생 인격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게 두려웠던 시절도 있었는데. 막상 ‘누군가’의 주인공이 나타나니 두려움은 사라졌다.
이유가 무엇일까.
상대적으로 덜 예민한 성격 때문일까?
= (이건 절대 아니라고 100% 확신한다)
그렇다면 그와 인연이어서? 모든 게 다 잘 맞아서?
비슷한 가치관,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지만 우리도 모든 게 데칼코마니처럼 일치하지는 않았다. 한 배에서 나온 쌍둥이도 성향이 다르듯 그와 나도 다른 점은 존재했다.
나는 급행열차
그는 일반열차
예컨대 나는 성격이 급하다. 생각과 동시에 실행으로 옮겨야 하는 타입이다. 하지만 그는 느긋하다. 조선시대 선비마냥 여유롭다. 그의 여유로움이 때때론 나의 분노 게이지를 상승시키기도 했다.
또 나의 감정 곡선은 종종 롤러코스터를 타는 반면 그의 감정 그래프는 큰 변동이 없다. 내가 냉탕과 열탕을 넘나드는 사이 그는 그저 중탕에서 날 기다릴 뿐이다.
결혼 준비 내내 큰 싸움은 없었다. 약간의 토라짐, 서운함으로 투닥거리는 정도였다. 그 시간도 한 시간 이상을 소요하지 않았다. ‘욱’함이 냄비마냥 빨리 식는 나의 성격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그의 어른스러움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무엇보다 사소한 내 일상과 소소한 변화에 관심을 가졌다. 매일 반복되는 레퍼토리에도 지겨워하지 않고 궁금함을 보였다.
여자는 관심을 먹고 산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도 관심을 애정의 척도로 생각하는 보통(?)의 여자다. (이상하게도 남자 친구 한테는 예민한 생명체로 변신되는 거 같다.)
어쨌든 그의 한결같은 태도와 끊임없이 나의 의견을 묻고 적극 반영하는 모습은, 극도록 가시가 서는 시기인 결혼 준비 기간을 오히려 즐거운 순간으로 탈바꿈시켜줬다.
연애 때는 예측조차 할 수 없었던 다양한 난이도의 문제들을 직면했을 때, 선택의 연속에서 과부하되었을 때 등 모든 순간을 말이다.
그때는 생각할 여유조차 없어 미처 몰랐지만... 지금 와서 보니 나에게 메리지 블루가 오지 않았던 건, 그와의 ‘지속적 소통’이 끊이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거 같다.
메리지 블루 극복법으로도 긍정적인 마인드와 함께 상대(=예비 배우자)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추천하지 않는가!
나는 이 사람과 늙어서도
대화를 즐길 수 있을까?
결혼 생활의 다른 모든 것은 순간적이지만
함께 있는 시간 대부분은 대화를 하게 된다.
-프리드리히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