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고통일지라도, 고통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하더라도, 그래도.
얼마 전 친구들과 밥을 먹을 일이 있었습니다. 한인타운에서 저녁을 같이 먹고 커피를 한 잔 하는데 책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때 한 친구가 책 하나를 추천하더라고요. 엄청 슬퍼서 사람들이 엄청 운다고. 그게 쇼츠에 많이 뜬다면서 저한테 그 영상을 보여줬습니다.
여성분들이 책을 보면서 완전 대성통곡을 하시더라고요. 이런 류의 슬픔은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감정이라 그렇게 당기진 않았는데 다 같이 한 번 읽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럼 한 달 뒤에 다 읽고 다시 만나는 걸로! 하고 헤어졌는데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이거 거의 천 페이지짜리 책이더라고요.
초반부에 등장인물이 많이 등장해서 오래간만에 e북 메모 기능으로 인물들을 정리하면서 책을 읽었네요. 분량에 비해 책이 술술 넘어가서 2주일 정도만에 완독에 성공했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지쳤다는 생각이 든 건 오랜만이네요. 분량이 많아서 지친 게 아닌 조금 다른 의미로요.
본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이라면 마지막 문단은 읽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설은 뉴욕에 사는 네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친구는 각각 주드, 윌럼, 맬컴, 제이비입니다. 대학생 때부터 친한 친구들이었고 소설의 시작부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듯합니다.
주드는 백인이고 유능한 변호사이지만 몸이 조금 불편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묘한 매력이 있어 남자든 여자든 간에 그를 아주 좋아하죠.
윌럼 역시 백인, 그리고 배우 지망생입니다. 배우 지망생답게 아주 잘 생긴 친구지만 약간 게을러서 좋은 배역을 따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 형제들이 많이 죽은 터라, 그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지요.
맬컴은 흑인 혼혈로 보입니다. 건축 쪽에서 일을 하고 있고 집이 아주 잘 살아서 친구들 사이에서 물주 역을 맡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이비는 순혈 흑인이고, 예술가입니다. 가정환경이 썩 좋지 않았지만 훌륭하게 잘 자란 친구입니다. 분위기 메이커를 맡고 있습니다.
이렇게 네 명이 주연이지만 소설의 진 주인공은 주드입니다. 그는 신비로운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속내를 터놓지 않습니다. 과거도 숨겨져 있고, 가족보다 더 친한 세 친구들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지요.
소설은 네 명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주드가 트라우마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요.
소설에 대한 평을 남기기 전에 한 이야기를 먼저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 해리포터 시리즈 중 '불사조 기사단' 혹은 '혼혈왕자'가 나왔었을 때 즈음으로 기억을 합니다.
미국에 유명한 소설가인 스티븐 킹이 조앤 K 롤링 여사님께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작가라고 자신들이 창조한 인물들을 함부로 죽여선 안 된다. 특히 당신의 책은 어린아이들이 많이 보지 않느냐."
그리고 롤링 여사님은 "단편 소설에도 최소한 한 명 이상 죽어나가는 소설을 쓰는 당신에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다."라고 쿨하게 대답하셨죠.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사람을 함부로 죽여선 안된다."라는 말을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설에서 작가는 신이자 창조주입니다. 그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위해 소설 속 세상을 창조하고 인물들을 만들어 냅니다. 작가들은 자신의 창조물들이 행복하게, 때로는 불행하게, 때로는 불행했지만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고 행복했지만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지요.
하지만 작가들이 자신의 창조물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저는 딱히 좋아하지 않습니다. 만약 인물들이 고통을 겪고 불행에 빠진다면, 인물들이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일종의 '당위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위성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인물들이 작품 속에서 겪는 수많은 불행과 사건들은 단순히 '불행 혹은 고문 포르노'를 위한, 즉 독자들의 도덕심과 동정심을 건드려 억지 눈물을 짜내는 고문에 불가하기 때문이죠.
전 이 소설을 꽤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현실성 없이 잘난 4명의 주연은 소설의 몰입도를 좀 방해하긴 했습니다만, 생각보다 문장들이 좋았고 치밀한 심리묘사 또한 훌륭했습니다. 만약 소설의 결말부를 제외한다면, 전 이 소설을 제 명작 리스트에 올릴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구원'의 메시지가 있는 작품들을 좋아하거든요. 굳이 구원의 요소가 없더라도 어쨌든 기분 좋게 작품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설령 배드 엔딩이라도 최소한의 위로가 있었으면, 혹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좋지 않은 결말의 당위성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작품을 즐기는 동안 저는 인물들에게 감정이입 내지 공감을 많이 하는 편이라, 그들의 결말이 나쁘다면 제 기분이 너무 나빠지거든요.
하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그래서, 당신은 무엇을 위해서 주드를 이토록 불행하게 만들었습니까?'였습니다.
이 소설은 안타깝게도 작 중 인물들이 겪는 불행에 대한 당위성이 있지만, 상당히 부족한 작품입니다. 소설의 중반부부터는 주드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가 여태 겪어왔던 또한 겪고 있는 사건을 아주 잔인하게 묘사합니다.
작품의 초반부, 주드는 자해를 상습적으로 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게 이해가 안 되지만 1권 후반부에 들어서면 왜 주드가 자해를 하고 자신의 과거를 남들에게 말하지 않는지가 설명이 됩니다. 그의 불행했던 유년시절을 통해서요.
하지만 주드의 유년시절이 상당히 뜨악한 묘사가 등장하는 터라, 페이지를 넘기는 게 너무 고통스럽더라고요. 그리고 성인이 되고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주드의 끝없는 불행이 계속됩니다.
왜 작가는 이토록 주드를 잔인하게 몰아붙인 것일까?
주드가 어렸을 때 당한 수많은 폭력을 통해 아동성폭행 혹은 성추행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싶었나?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소설을 썼다기엔 분량이 조금 과하고, 등장인물들이 너무 많이 등장하죠.
주드와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서 이렇게 잘 나가고 멋진 사람들도 저마다 고통이 있고, 성장통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기엔 그들의 불행이 너무 과하죠.
결국 독자들의 감정을 건드리기 위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라고요. 숏츠에서 봤던 독자들의 눈물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천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을 읽는 동안 온갖 종류의 감정 고문을 당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드의 불행이 소설이 주는 메시지나 감동보다 너무나도 무거웠기에, 저는 '감동' 보다는 '지쳤다'라는 생각이 더 떠올랐고 이 소설이 저의 명작 리스트에 들기에는 조금 아쉽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런 감정 역시 소중한 것이고, 작가의 의도가 "당신들에게 한 방울 눈물을 흘리게 해주고 싶어서."라면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넘기기엔 주인공들이, 특히 주드가 너무 불쌍했습니다. 말 그대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남자의 인생을 보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거든요.
이토록 아픈 주드의 삶 속에서 무슨 메시지를, 의미를 찾아야 할까요. 삶의 모진 장난 속에서도 마음을 잡고 살아가려 했지만,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주드의 삶에서 말입니다.
숏츠에서 처럼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주드가 너무 안됐고, 그렇게 주드를 몰아 붙은 작가님이 조금 미웠습니다. 그에게 부여된 불행의 짐이 조금만 가벼웠더라도 저는
"주드. 삶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그대는 살아야 했습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부여된 불행의 짐이 너무도 무거웠기에,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떻게 그 짐을 견뎌내 왔는지 알아버렸기에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곳에선 꼭 행복하시기를."이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