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름 Jul 08. 2019

002 당신이 잠든 사이에

한국의 당신들이 잠든 시간 벌어지는 프라하의 이야기


한국과의 시차는 약 일곱 시간

내가 잘 때, 한국은 하루를 힘차게 시작하고 

내가 프라하의 길거리를 쏘다닐 때, 한국의 지인들은 점점 답장이 느려진다. 

가끔 새벽형 올빼미들이 나에게 답장을 해주지만 내가 느낀 프라하를 즉각 전해주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물론 일기를 밀리는 바람에 조금 늦었지만,,,

한국의 수많은 당신들이 잠든 사이에 내가 무얼 했는지 조금 풀어놓아 보려 한다. 




6.28 

학교 캠퍼스와 프라하 시내투어



오늘도 맑은 하늘로 반겨주는 프라하의 아침, 웃음꽃을 들고 살포시 찍어보았다.

한국에 있을 때도 갤러리에 구름이 절반을 넘었는데 프라하 와서 더 심해진 듯하다.

미세먼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한 하늘을 더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렌즈가 통탄스러울 뿐!



벌써 한국의 밥상이 그리워지는 간단한 아침을 먹은 후 거닌 캠퍼스는 자연 그 자체였다. 

한국에 있는 우리 학교도 나름 자부할만한 자연물이 있다지만

이곳은 그에 비할 수 없는 거대한 나무와 정원과 동물들이 함께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캠퍼스가 알록달록한 꽃들과 나무로 물들어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할 일인지,

앞으로 학교 가는 길이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이 당시 감정을 생각하며 적는 일기이기 때문에 지금 소감을 적어보자면, 정말 행복하다. 

조금은 싸늘한 공기 속에서 꽃 한 번 하늘 한 번 보며 걷다 보면 내가 유럽에 있다는 사실에 새삼 즐거워진다.)


이렇게 항상 드넓은 잔디와 함께 자연과 함께 자라서 그런 건지 

여기 체코 학생들은 낮에도 밤에도 길바닥에 참 잘 누워있는다.

햇빛을 받으면서, 별을 보면서 노래를 듣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 모습들은 한국에서 본적 없는 그것이라 참으로 생경했으나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온갖 매연에 미세먼지에 습기에 쩌들어 재빨리 실내로 향하는 우리 학생들과는 다르게

여유로운 모습이 부러웠던 것이다. 


맞아 여기 온 이후로 나는 여태껏 자각하지 못했던 "빨리빨리"한국인의 모습을 나에게서 발견했다.

종업원은 절대 손들어 부르지 않고 열심히 아이 컨택하려 노력하는 그 순간들,

사실은 조금 속이 터진다. 

속이 조금 근질근질하지만 종업원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사르르 녹는 느낌이랄까?

활짝 웃어주며 내 테이블에 도달하는 순간 다시금 행복감에 휩싸인다.

내가 변덕이 심한 건지 뭔지,, 일기를 쓰는 지금은 많이 적응했다.


차가 없이 널널한 도로도 

목줄 없이 자유롭게 강아지와 천천히 산보하는 사람들도 

길거리에 누워 낮잠을 즐기는 사람들까지도

일상이라고 생각하니 나도 괜스레 노곤해지는 기분.


이 기분 탓인지 일기를 계속 밀린다 ... 느긋 ...



그렇게 이 날은 프라하의 대표 관광지들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캠퍼스에서는 약 40분 정도 거리로 이날 이후 아주 내 집 마당처럼 들락날락거리게 되었다.)


제일 먼저 여전히 잘 보존되어있는 구 시가 광장 주변부터해서 천문시계까지 쭉 함께 보았는데

이 천문 시계탑은 정시마다 굉장히 화려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람들이 정시가 가까워질 때쯤 몰려드는데, 이때가 소매치기 타임이라고 한다. 다들 조심하시길..

일반적으로 뎅~뎅~하는 정시 알람과는 조금 다르게 매시 정각이 되면 12 사도들이 두 개의 창을 통해

천천히 돌아가며 나타났다가 들어가고 시계 위쪽의 황금색 닭이 울면서 마무리 짓는다. 


이후에 또 쓰겠지만 천문 시계탑 전망대에 들어가서 그 구조를 보니 더욱 신비로웠다.

그 시대에 이 건축기술이 가능하다는 것도, 이 디자인을 생각해냈다는 것도 새삼 믿기지 않았다. 



구시가 광장을 다 보고 바쁘게 찾아간 프라하 성과 그 뒤의 황금 소로

황금 소로의 골목들에는 아기자기한 공예품 가게가 정말 많았다.

이곳은 거의 묻지마 투어처럼 돌았기에, 아직 뭐라고 언급할 바가 없다. 

다시 가서 꼼꼼히 보고 오는 그 날 제대로 느낀 바를 생각해볼 것이다.



이 날의 느낀 점을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음식은 진짜 짜고 물보다 술이 더 시원하고 저렴하다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체코의 음식에 대해 큰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그 후로 먹는 것마다

소금 복불복 게임을 하게 되어 슬플 따름이다. 

추운 나라도 아니고 왜 대체 음식을 짜게 절여먹는건지... 한국의 음식들이 벌써 너무 그립다.




6.29 - 7.3

프라하 시내의 이곳저곳 


에펠탑을 닮은 페트르진 전망대 - 레트나 공원에서 바라 본 시내 - 전깃줄 마저 아름다운 프라하
프라하에서 방문한 이탈리안 식당 - 매달린 프로이트 동상 - 길거리마다 창문 너머로 유혹하는 캔디샵들

첫 번째 방문 때, 제대로 훑어보지 못했던 구시가 광장을 다시 둘러본 날

7시 - 8시가 넘도록 해는 지지 않고 맑은 하늘 아래에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특별한 걸 안 해도 그냥 길거리를 걷기만 해도 행복한 이 느낌.

계속해서 '우와'를 남발하며 사진기를 꺼내고 거리낌 없이 버튼을 눌렀다.

과연 이 오래된 필름 카메라가 어떤 사진을 내놓을지 기대되는 마음과 함께!


그리고 프라하는 시내 전체가 마치 에버랜드 같은 동화 속 마을 느낌을 주는데,

그와 잘 어울리는 캔디샵도 이곳저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각양각색의 젤리와 초콜릿들이 창문에 비치는데 어쩐지 그 안에 들어가 보면 한국인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대체 왜지,,,? 그냥 우연일까?


사실 프라하 시내를 돌아다녀보면 스타일링부터 한국인이라는 느낌이 확 꽂히는 분들을

많이 마주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너무나 반갑다.

평소에도 내적 친밀감을 어마어마하게 키워서 내 멋대로 인사를 건네곤 하는데

해외에만 나오면 한국인들을 만났을 때 너무 반가워서 인사를 하고 싶은 충동이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혼자 반가움을 속으로 삭이며 거닐다 보니 길거리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펍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 앞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다가 또 걷고

걷다가 걷다가 저번에 밖에서 보았던 천문 시계탑에 도달했다. 


프라하 천문 시계탑도 전망대가 있는데, 구 시가 광장을 한눈에 돌아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국제 학생증을 가지고 계신 학생분들은 꼭 한 번 방문해 보셨으면 한다.

조금 아찔한 높이이긴 했지만, 아름다운 그라데이션으로 물든 하늘과 프라하 전경을 볼 수 있기에

적당한 시간대를 찾아 꼭 다시 찾아가고 싶은 곳이다.


내가 포토샵을 자주 만지는 학과라서 그런지 뭔지 

이 곳의 그라데이션 하늘을 보면 스포이트로 색 이름을 추출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피어오른다.


그리고 또 영화 <바닐라 스카이> 속  톰 크루즈가 마주한 환상에 등장하는 

그 하늘을 매일같이 볼 수 있다는데서 정말 충만한 행복감을 느낀다. 


물론 사진은 실제 모습의 10퍼센트도 담아내지 못한다는 게 아쉽지만

보정 없이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하늘 아래 살아가는 이 나라의 사람들이 새삼 부러워진다.

(나는 한국의 하늘도 참 좋아하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가려진 지 오래라서 또다시 속이 부글거린다.)


어마어마한 경사의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 길거리의 기자(?) - 장난감 천국 햄리스


이제 구시가 광장을 지나 신시가지로


이 곳의 지하철 노선은 세 가지밖에 없다. 온갖 노선이 맞물려있는 한국보다는 훨씬 단순하다고 볼 수 있다.

유럽여행 초보자들도 떨지 않고 간편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곳인 것이다.


젊은이들이 가장 많다는 Mustek 역에서 내려 걷다 보면 이 곳이 명동인지 프라하인지 하는 착각이 든다.

분명 건물들은 프라하의 모양새가 맞는데

자라 / 스와로브스키 / H&M 등등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브랜드들이 길에 주-욱 배치되어 있다.

이국적인 풍경 속 익숙함을 느껴서 그런지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의 번화가에 널려있는 서브웨이와 스타벅스까지 보고 나니 이 장소에 대한 친밀함이 한층 높아졌달까.


이 곳 저곳 모두 구경하던 중 나는 꿈과 환상의 나라를 발견했다.

바로 장난감 가게 햄리스


영화 <나 홀로 집에2>에서 케빈이 방문한 장난감 가게가 떠오르기도 하고

그 어릴 적 인상 깊게 남은 <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이 떠오르기도 하는 그런 장소였다.


마블 덕후의 가슴을 뛰게 하는 아이언맨을 중심으로 

영화 프로모션을 위해 스파이더맨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고

무려 가게 중앙에는 화려한 불빛을 내뿜는 회전목마도 설치되어 있었다. 

2층에서 1층까지 내려오는 기나긴 미끄럼틀은 덤으로.


많은 아이들의 눈이 휭휭 돌며 장난감 가게 구석구석을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나서 사진 찍고 골라 담고 황홀해하던 시간들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몇 번 더 방문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했고,,,

이 글을 쓰는 시점도 이미 한 번 더 방문한 이후이다.



한국에도 들여오고 싶은 마음뿐이다.

현재 한국에 있는 토이XXX 같은 곳에는 차마 걸음 하지 못하는 소심쟁이 성인,,,


이렇게 한국의 지인들이 자는 시간  동안 나는 이것저것 많이도 했다.

흩어져 가는 기억을 겨우 엮어 쓰고 있긴 하지만

작년 여름 방학 두 달간 움직인 양보다 프라하의 일주일 이동량이 더 높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새끼발가락에 감각이 조금 없어진 것 같지만

더 열심히 걷고 또 걷고 프라하의 하루를 즐겨야겠다.


나는 이만 다음 글의 제목에 대해 고민하며 내일을 위해 빨리 자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001 Far From Hom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