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NGGO Aug 02. 2020

순한 남자 이야기

같이 살기 잘한 거 같아

이번엔 나랑 같이 사는 남자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우린 아르헨티나에서 만났다. 


난 이민을 갔고, 내 남편은 유학을 갔다 정착한 케이스였다.

우린 고등학생 때부터 교회에서 만나 알고 지냈고, 중간에 서로 친한 친구들이 많이 엮여있었지만

둘이 제대로 얘기하고 만나본적이 없는 그런 어중간한 사이였다.


워낙 작고 서로 엮인 친구들이 많았던 터라 친해질 만도 한데 단 한 번을 제대로 대화한 적이 없었다.

서로에게 무관심했다. 무려 14년 동안이나.


그도 그럴만한 게 나는 절친과 팔짱 끼고 내가 아는 장소에 가서, 내가 아는 사람들하고만 만나, 내가 즐겨먹는 것을 시켜 먹는 것을 좋아했고 내 남편은 모든 사람과 두루두루 잘 지내고, 새로운 것을 먹어보는 것을 좋아하며, 여러 가지 활동을 해 보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호산나의 밤" 같은 교회 행사에 가서 구경할 적에 내 남편은 주인공 역할을 맡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하였다. 


우린 서로를 싫어한다거나 하는 그런 문제를 가진 사이가 아닌, 정말 서로에게 무관심했다.




그러다 내가 스물다섯, 내 남편이 스물여섯이었을 때 급 속도로 친해졌다. 

그동안 따로 교류가 있던 사이가 아니었는데 정말 눈 깜짝할 사이 우리는 친해졌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리고 2019년 4월 스물일곱, 스물여덟에 결혼을 하였다.


매운 것을 좋아하는 여자와, 순한 맛 남자가 만나서.








그는 순한 맛 남자이다



화를 낼 줄을 모른다.

불합리적인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긴 하여도 논리적으로 생각하려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차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배려가 많다.



그 매력에 빠져 결혼했다.

매우 좋아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나는 자주 화가 난다.

이를테면...

언젠가 같이 공원에 자전거를 타러 나갔고 그곳에서 어떤 분이 뜬금없이 지나가며 우리에게 뭐라고 하였다.

그에 발끈한 나는 뒤에서 소리쳤고 그로 인해 일행분이 자전거로 우리를 위협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감성적으로 대응하였는데 그는 이성적으로 대응하며 나부터 말리고 보았다.

더 큰 싸움이 일기 전에 나부터 말린 것이다.

옳은 대응법이긴 했지만, 나는 속상했고 그것에 대해 화를 냈다. 

내가 잘못 대응한 것이니 야단칠 만도 한대 그는 미안해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우리는 싸우지 않는다.

싸움에 도달하지 않는다.

내가 자주 화가 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싸우지 않는다.



싸움이라는 정의는 방이 의견이 맞지 않아 그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일어나는 신체적 및 정신적 충돌을 이르는 말이다. 아무리 부부 싸움이 칼로 물 베기라고 하여도 그것이 쌓이면 쉽게 분노하게 되고 전에 있던 일들을 다시금 기억하며 들먹이게 되는데 내가 화가 나서 씩씩거릴 때면 그는 기다려준다. 내가 왜 화가 났고 속상했는지 말을 해줄 때까지. 그리고 씩씩거리는 내 모습을 안아주고 달래주며 진정시키고 본다. 그리고서 내가 화가 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한해 성질을 내면 그것을 매우 납득하며 이해해주고 먼저 사과해주니 (혹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주니) 싸움이 일어나지 못한다.



상대방이 나의 성질을 받아주니 내가 화낸 것에 나도 미안해지며 사과하게 된다.

나와 다름을 받아주니 나도 더불어 미안해진다.

그로 인해 내가 얼마나 쪼잔한 사람인지 알게 해 주니 화도 내가 냈고 사과도 받아냈지만 항상 내가 진 느낌이다.


순한 남자는 나를 쪼잔하게도 만들지만 나도 너그럽게 만든다.




작가의 이전글 결혼을 준비하며 2 (400만 원으로 결혼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