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기 위해 일한다.
어릴 때부터 게으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지금에와서 생각해 보니 몸이 많이 약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늘 감기를 달고 살고 결석이 잦았던 반친구가 1등을 독차지했던 것을 보면 다 핑계이다. 그냥 나는 게으른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아니 아무 생각이 없다. 수업시간에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면 옆 짝이 무슨 생각해? 라고 물었다. 아니 나는 아무 생각이 없어.
태어난 김에 산다.
태어난 김에 사는 것이다. 그렇다고 죽고 싶은 것도 아니다. 죽는 것도 준비가 필요하니까...가능한 한 아무 것도 안하고 될 수 있으면 적극적으로 더욱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어떻게 하면 더 놀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음.. 논다는 것도 무언가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방바닥에 찰싹 붙어 이불과 한 몸이 되어 뒹굴때가 가장 행복하다. 여행을 간다던가 친구들처럼 유명한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를 찾아다닌다던가 그도 아니면 그림을 그린다던가 음악을 한다던가... 그러한 것들은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누워있을 뿐이다. 그것만이 나의 행복이었다.
공부도 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행동만을 한다. 학교를 왔다 갔다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나 스스로 놀랍고 대견했다. 학교는 안갈 수 없었던 그런 시기이니까...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이다. 친구들은 영어 동아리에 들고 취업준비를 하고 여행을 다니고 늘 뭔가 하더라. 나는 그저 학교만 왔다갔다 했다. 다만 중고등학교에서는 지각을 한 적이 없는데, 대학은 늘상 지각이었다. 문득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공부를 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을 갔다. 이제까지는 아무것도 안해도 눈이 뜨이지 않았지만, 대학원은 소수라서 아무것도 안하면 눈에 뜨이더라. 실수했다.
목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아이'가 생겼을 때이다. 방금 태어난 '아이'는 혼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놀아주고 해야했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매우 열심히 산 시기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주어야 할 때뿐이다. 뭔가 의도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작지만 소중한 생명체'에 대한 의무감이라고 표현하자. 끊임없이 행복감을 주는 '경이로운 세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없는 내게 뭔가를 끊임없이 하게 만드는 놀라운 '아이'였다. 나에게 의무를 부여한 '아이', 내가 의무를 이행하면서 행복하게 하는 '아이', 그 '아이'는 내가 무언가를 하게 만들었다.
이제 목표가 생겼다. 일을 미루지 않는다. 빨리 해치운다. 그래야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있다. 나의 목표는 단순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목표이다. 어느날 매사 일을 빨리 처리하고 성실히 하는 박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일을 엄청 빨리 하네. 정말 놀라워.
빨리 해두어야 쉴 틈이 생겨요. 쉬기 위해서 일을 미루지 않아요.
쉴 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 하나를 끝내면 2개가 오더라. 2개를 끝내면 4개가 오더라. 왜 기하급수적으로 일거리가 늘어나는 것일까? 일줄이기를 해봐도 여전히 일은 늘어나더라. 아하. 그래서 직장인들이 주말을 기다리는 구나. 하루종일 이리저리 회의에 끌려다니고 내가 회의를 주재하기도 하고 진행과정을 체크하고 또 일거리를 받고... 쉴 틈이 없다. 잠깐의 쉴 틈은 커피를 마실 때뿐이다. 커피를 마시는 그 짧은 시간마저 업무적인 소통이 될 때가 많다. 어떤 사람은 담배를 핀다. 담배를 피면서 업무적인 소통을 한다(*지연 학연 보다 더 끈끈한 흡연.) 회사 내에서 쉴 틈이 그리 많지는 않다. 쉴 틈을 만들지 못하면 병원에 가게 된다. 쉴 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된 지금은 ... 쉬기 위해 일을 한다. 아무 것도 안하기 위해 일을 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반드시 쉰다. 잘 안될 때가 많지만 어지간하면 지키려고 애쓴다. 쉬는 동안은 아무 생각 안하는 것이 좋다. 몰두해야 한다. 그래야 생각이 안난다. 잠시라도 생각을 멈춘다. 아예 생각을 꺼둔다. 컴퓨터도 쉬지 않고 돌리면 과부하가 걸린다. 과부하 걸리지 않는 삶을 위해 쉴 틈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