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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정 변호사 Jul 29. 2022

오늘, 당신의 마음은 안녕한가요

불안을 불쏘시개 삼아 성공으로 달리는 우리들

참 이상한 일이다. 어느 날은 마음이 평안했다가 어느 날은 마음이 조급해진다.


내 이야기이다.


알고 있는 독자분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나는 외부에서 또는 내부에서 보아도 불안해 할 것도 조급해 할 것도 없는 상황처럼 보인다. 남편과 5년의 장거리 부부생활 이후 어느 나라에서 살지 고민하다가, 감사히도 싱가폴 로펌에서 좋은 자리를 제안받아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다. 새 로펌에 조인한지 이제 5개월정도 흘렀는데, Korea Desk를 어떻게 키워나갈지,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지만, 나름의 속도로 잘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는 무럭무럭 잘 커서 어느 덧 두 돌이 되어 제법 의사소통도 하고, 나날이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기에 육아로 방전되다가도 엄마가 되길 잘 했다는 기쁨이 가슴에 종종 차오른다.


이렇게 평온한 나날들을 감사하며, 이 일상을 감사만 하며 지내면 될텐데,

한국에서 한 달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 내 마음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과 조급함이 나를 재촉하는 것이었다.


아니, 너란 마음- 도대체 왜 그러는거야?


마음 속의 욕망들: 현대사회의 성공은 불안감을 먹고 자란다


마침 내 마음이 왜 이럴까 생각하고 있던 찰나, 지인이 추천해준 유투브 영상(조승연의 탐구생활: 돈과 경험은 많을 수록 좋은 것인가)이 운동 중에 뜨길래 눌러보았더니 당시 내 마음을 딱 설명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는 현대사회의 성공은 불안감을 먹고 자라며, 불안감이 높은 사람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그러다보니 현대사회에서 더욱 남보다 많은 성취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아니, 불안감을 불쏘시개로 해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은 매우 피곤한 매커니즘이 아닌가. 하지만 불편한 마음과 달리 이러한 내러티브가 쉽게 납득이 갔다.


스스로를 평안하고 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라 생각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성취하고 발전하고자 하는 강한 내적동기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아마도 그래서 10대, 20대, 30대에는 눈 앞의 타켓과 목표가 정해지면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달리는 라이프 스타일을 크게 힘들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성향이 어느 정도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도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 상태에서 만족하고 자족하는 순간, 내가 도태될 것 같은 불안감.


이 때의 불안감을 좀더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면,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도태"."발전 없음"."성장하지 않음"에 대한 불안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이런 감정은 참으로 낯설지가 않았다. 2007년 사법시험 합격하고, 2008년 미국 로스쿨에 교환학생을 갈 예정이었던 어느 대학시절- 당시 인생은 모든 것이 장미빛 같았다. 복귀 후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서 수료 후 법조인의 삶이 보장되어 있었고, 당시 난 그 어려운 사법시험을 단번에 합격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시절에도 나는 - 대학교 도서관이었는지 서점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알랭드 보통의 불안(The Anxiety)란 에세이집을 읽으면서 모든 것을 다 이룬것 같은 순간에, 불현듯 이제 이 다음엔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지? 여기서 무엇을 다시 나를 더 성장하고 새롭게 만들 경험들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마음 속 불안을 잠재우려 했었고, 그런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어쩌면, 15년이 흐른 지금에도 나이를 먹고 사회적 경력은 더해졌어도, 마음의 습관은 크게 바뀌지 못하여 다시 조급해하고 불안해 했었나보다.


일종의 불안감을 불쏘시개로 해서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다소 피곤한 생각과 마음의 습관이 젊은 날의 나의 성장과 성취의 동력이었다면, 마흔을 앞둔 이제는 그 방향과 마음의 생각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단단함


최근 폴인 페이퍼 에세이에도 언급했지만 최근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는 에세이집을 낸 가수, 변호사이기도 한 이소은 작가는 약 20년 정도 된 오랜 지인이다. 이소은 작가는 제목부터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며 명확하게 메세지를 전한다. 비슷한 고민의 과정 끝에 그녀는 무엇이 되지 않고, 어떤 타이틀을 더 더하지 않아도 지금의 자신 그 자체로 충만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과 내적 충만감에 대하여 진솔하게 말한다.


이소은 작가 에세이 중 많은 글귀들이 공감이 갔지만, 이와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글귀가 있었다.


현대인은 항 방향을 보며 나아가는 사고방식, 즉 '선형적 사고  Linear thinking' 에 익숙해져 있다. 시작점을 찍고, 그 점을 기준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직선을 그리며 우리 삶과 커리어의 방향을 잡는다. 이 패턴에서 벗어나면 바로 마음이 불편해지고, 왠지 모르게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고, 실패할 것 같은 불안감이 찾아온다. 하지만 꼭 직선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법은 없다. 때론 둥글게, 때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때론 새로운 점을 찍고, 때론 대각선을 그리며 가는 것이 우리의 삶일 텐데 말이다.

발췌 이소은,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 '삶의 Not to do list' 에세이 중


어쩌면 나의 불안과 조급함은 직선에서 이미 벗어나, 나만의 길을 지그재그이든, 선이든 점이든- 직선을 벗어나 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마음으로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나는 법대-사법시험-대형로펌-파트너)라는 너무나 직선?과 같은 삶을 살다가 아주 특이한 곳에서 갑자기 혼자 점을 찍은 상황이니 말이다. 어찌보면 개척자이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으니 말이다).


어느 날은 매우 여유롭고 자신만만하다가,

어느 날은 불안하고 조급해지는 나.


내일 모레면 곧 마흔이 되는 나는 여전히 고민하고 방황한다. 


"이끼"라는 존재로서의 자긍심, 그걸로도 이미 충분할 것 아닐까



국민참여재판 전문검사로 활동 중인 정명원 검사님이 쓰신 에세이집 <나의 민원인들> 서문에 보면, 스스로를 이끼라 칭하신다. 티비에 나오는 유명한 고위직이나 스타 검사들이 아니라, 검찰청 방방 마다 각자의 기록과 사건과 실체적 진실에 집중하며 묵묵히 일하는 - 본인을 포함한 - 검사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세상의 중심도, 삶의 중심도 아니고 다만 늘 어느 정도는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검찰청의 한 귀퉁이에서 분주했던 이끼의 이야기야. 각자의 그늘에서 기꺼이 이끼로서 존재하고자 부단했던 수많은 이끼 씨들의 이야기. 그 곳에서도 기꺼이 제 몫의 광합성을 멈추지 않은 나와 동료들의 이야기. 하여 나의 이야기가, 세상의 어딘가에서 이끼이거나 들풀이거나 다른 작은 무엇으로 거기에 있는 이들에게, 돌아보니 그래도 한 시절 제법 광합성을 해왔구나 하는 초록의 이끼가 발꿈치를 들어 멀리 전하는 경쾌한 인사가 되었으면 좋겠어.

Hi, 이끼 씨들~ 모두들 안녕하신가요?

발췌 정명원,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들>, 서문


Hi, 이끼 씨들~이라니. 너무나 위로가 되는 인사가 아닌가.


그래 어쩌면, 내가 왜 지금의 나로 충분하지 않다고 불안함을 느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나를 너무 크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항상 어제보다 발전하고, 무언가 더 성장하고 발전하고, 더 빛나는 내가 "항상" 되어야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마음에는 정 검사님의 에세이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 높은 나무, 화려한 꽃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지금의 나를 만들고 오늘의 내가 자신있게 앞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하루하루를 묵묵히 잘 보내온 정말 이끼와 같은 나의 시간들임에도 말이다.


높은 나무나 화려한 꽃이 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이끼만 좋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인생의 어떤 순간에도,

불안해하고 조급해하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위로해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오늘, 우리들의 하루는 조금 더 안녕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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