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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르쮸 Apr 06. 2023

그의 하루일과, 출근과 퇴근

땅콩이 관찰일지 day1


땅콩이 관찰일지 첫날, 오늘은 그의 출근과 퇴근을 관찰해 보았다.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을 하고 퇴근을 했다.


-아침-

6시쯤 알림이 한 번 울리면 우선 잠에서 깰 준비를 하고

7시에 다시 한번 알림이 울리면 침대에서 핸드폰을 켜고 30분가량 누워서 꼼지락 한다.

이때 같이 잠에서 깨어 옆을 쳐다보면 잠이 덜 깬 실눈으로 핸드폰을 흐끄므리하게 보고 있는 남편이 보인다.

잠에서 바로 눈뜨기 어려운 그 눈빛으로 말이다.

그러고 7시 30분쯤 되면 그는 이불 밖으로 나가 화장실로 직행한다.


씻는 건 금방이다. 남편은 정말 빨리 씻는다.

가끔 그 모습을 보며 ‘왜 이렇게 빨리 씻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저렇게 씻고 나오면 제대로 씻는 건가?라는 생각도 하지만 한편으론 물도 아끼고 좋은 습관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여하튼 씻고 나온 그는 핸드폰으로 노래를 틀고 입을 옷을 고른다.

혹은 대충 위에 옷만 걸치고 소파에 앉아 노래를 감상하거나 핸드폰을 본다.


퇴사한 후, 남편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게 되면서

가끔 남편이 준비를 잘하고 있는지 거실로 보러 나가면

옷은 대충 입고 소파에 앉아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옷은 금방 아무거나 입으면 되니까 저렇게 여유 있게 앉아있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고,

아직 아침은 쌀쌀한데 ‘춥지는 않은가?’라는 생각도 든다.


하루는 또 옷도 안 입고 앉아있길래 이불을 가져다 덮어주며

“이렇게 앉아있으면 감기 걸려”라고 했더니

“이렇게 있는 게 좋아 “라고 했다. 뭐가 좋은지 물어볼 걸 그랬나.

나도 여유롭게 준비하는 편인데 남편은 나보다 한 수 위인 것 같다.

그렇게 출근준비를 하고 8시 10분쯤 그의 소울메이트이자 없어서는 안 될 헤드폰을 챙겨 나간다.


-저녁-

그리고 저녁 6시가 넘으면 퇴근을 하고 돌아온다.

그는 돌아오면 우선 시계와 결혼반지를 빼고 아주 빠른 속도로 옷을 갈아입는다.

그러곤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발을 씻고 나온다. 다른 건 몰라도 발은 ‘꼭’ 씻는다.

그러면 저녁을 무얼 먹을지 냉장고 앞에서 한참 서있는다.

뒤적뒤적거리면서 딱히 먹을 게 없으면 배달을 시켜 먹는데 내가 퇴사한 후로는 집에서 해 먹는 경우가 많아졌다.

저녁을 먹은 후, 그는 소파에 앉아서 아침과 같은 자세로 혹은 좀 더 편하게 누워서 핸드폰을 한다.

‘핸드폰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싶을 정도로 핸드폰을 많이 본다.


10시 혹은 11시쯤 되면 슬슬 졸린지 안방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나 이제 자러 간다~”, “나는 이제 자야지~”

내가 늦게까지 할 일들을 하느라 먼저 자러 간다는 표현을 항상 하고 들어가는데 그가 안방으로 들어가면 나도 곧 따라 들어가고 싶어 진다.

하루 중 그를 가장 따뜻하게 안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잠자는 시간이어서 그런가,

‘자러 간다’는 말이 따뜻하면서도 포근하게 다가온다.


그의 출퇴근은 루틴 하다.

나도 출퇴근이 항상 루틴 했고 크게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남편도 그런 편이다. 무엇보다 일찍 출근하는 점이 나와 무섭게 닮았다.


9시까지 출근인데도 불구하고 항상 40분가량 일찍 출근해서 업무를 준비하는 것.

6시 칼퇴가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30분 정도는 앉아있다 퇴근하는 것.

출근할 때는 항상 옷을 덜 입고 소파에서 한참 앉아있는 것.

퇴근하고는 누구보다 빠르게 발을 씻고 옷을 갈아입는 것.

씻는 건 오래 걸리지 않지만 핸드폰은 오랫동안 보는 것.

시계와 반지, 그리고 헤드폰은 꼭 챙기고 나가는 것.


이런 모습들을 보자니 직장인의 하루일과나 다름없지만

그 속에서 남편만의 성향이 보여 그만의 출퇴근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남편의 출퇴근이 안쓰럽고 힘들어 보이기도 한다.


같은 루틴의 출퇴근을 보며 ‘참으로 부지런한 사람이구나 ‘

출근 전 소파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며 ‘참, 동요 없이 여유로운 사람이구나 ‘

씻는 게 오래 걸리지 않는 모습을 보며 ‘절약을 잘할 수 있겠구나.’ 혹은 ‘필요한 것만 쓰는구나’

시계와 반지, 헤드폰을 챙기는 모습을 보며 ‘중요한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구나 ‘


그의 출퇴근만 바라봐도 이런 여러 가지의 생각들이 든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재밌으면서도 앞으로의 관찰은 더더욱 새로운 것들이 많이 발견될 것 같다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무사히 출근과 퇴근을 해주어 감사하다.

앞으로도 그의 출퇴근을 바라보며 감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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