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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모도로 Mar 21. 2023

7. 기대에 맞춰 살아온 나,  실패해도 괜찮을까?

나의 지난 세월에 대답한다


00 공사에 합격했다고?
역시 우리 딸, 너무 장하다!


아빠, 엄마에게 회사 합격 소식을 전달한 날.

드디어 취업까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했다는 생각에

한없이 기뻤고 너무너무 행복했다.




어렸을 적부터 그 누구에게도 실망을 안겨주는 걸 싫어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맡았던 일은 해내려고 했고,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그리고

완벽해지고자 노력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속독학원을 다녔던 적이 있었다.

학원가는 날마다 책 한 권씩을 읽고 요약하는

숙제가 있었는데

나는 속독을 엄청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숙제만큼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해서

항상 학원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학원 선생님께서는 숙제를 발표하는 날

내가 가져간 숙제장을 다른 친구들에게

본보기로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00 이가 한 것 좀 보세요.
이렇게 쓰는 연습을 다 같이 해볼까요?

이것이 나에겐 달콤한 사탕이었을까,

아니면 날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 움직이게 하는 독이었을까.


날마다 숙제로 권유해 주신 책이

점점 어려워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초등학생이 감당하기엔

너무 두꺼운 책을 숙제로 내주셨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나는 누구보다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고

기대에 부응하고자 그 책을 읽으며 새벽이

되어서까지 꾸역꾸역 '울면서' 숙제를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엄마는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라'라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용납하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똑같았다.

부모님께서 도와주신 덕에 유학을 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대학교를 다녔다.

대학교 2학년 때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거였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나는 항상

'그림', '디자인'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멋지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디자이너들을 보면서

'미술'은 나에게 무한한 동경의 대상으로 다가왔었다.


'내가 이 학과에서 계속 공부하는 것이 맞는 걸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동경해 왔던 미대를 가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났었다.

어쩌면 하지 못하고 꾹 눌러 담아왔던 것들이

슬슬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발버둥 쳤던 것 같다.


그때 타지에서 인터넷 전화기를 들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이 학과에서 공부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미대에 가고 싶어요.

미대에 가려면 적어도 1년은 다시 수험생으로 돌아가서 준비해야 해요'


이 날도 나는 울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울면서 전화한 딸의 이야기에

엄마는 얼마나 걱정이 되셨을까.

그럼에도 '지금 학교는 졸업하는 게 좋지 않겠니'라는 말씀에 잠시 정막이 흘렀고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내 꿈은 다시 한번 져버렸지만

4년 내내 다니면서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고

졸업논문도 열심히 써서 논문집에 실렸고

무엇보다 밤을 새우며 공부하여 좋은 학점으로 졸업을 했다.


부모님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기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 사지 않기
모든 이들에게 잘한다고 칭찬받고
기대에 부응하기

그동안 나의 삶을 뒷받침해주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게 만들어줬던 원동력이자

스스로를 강박과 압박으로 밀어 넣게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퇴사하기 직전까지 밤새 울면서도

기대에 맞춰 살아오게 했던 이 마음들은

끊임없이 나를 갈등하게 만들었고

지금도 내 속에서 꿈틀대며 움직이고 있다.

'내가 좀 더 참고 잘하면 부모님이 행복하고 좋아하시겠지?'

'시댁 부모님께 예쁘고 좋은 며느리로 남으려면 지금을 버텨야겠지?'

'어디 가서 00 공사 다닌다고 말하면서 뽐낼 수 있겠지?'


하지만 퇴사를 하고 난 후,

이제는 이런 마음들에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다 들 수는 없고,

다 친해질 수는 없듯이

나 또한 모든 기대에 다 부응할 수 없다는 걸

인지하고 싶었다.


지금도 부단히 노력 중에 있다.

자꾸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그때마다 생각한다.


이게 정말로 너를 위한 거야?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거야?

나에게 '퇴사'는 지금껏 살아왔던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어쩌면 '실패'일지도 모른다.

사람들마다 인생에 있어 한번쯤은 실패를 한다는데

모든 기대를 저버린 나에게는 이것이 실패가 아니고 무엇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실패'보다는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려는

'도전'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실패해도 괜찮을까?'라고 묻는 나의 지난 세월에

현재의 나는 이렇게 대답하기로 했다.


실패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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