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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잉업 Jan 13. 2024

커피믹스와 헤어질 결심

너와의 추억은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길게




 이제는 헤어지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헤어져야 한다. 나는 이제 커피믹스와의 이별을 선언하겠다. 커피믹스를 줄여야지, 끊어야지 여러 번 시도했지만, 간절하지 않았다. '줄이면 좋지', '(언젠가는)끊으면 좋지'라는 느슨한 마음으로 하루 한두잔으로 타협을 하곤 했다. 그런데, 줄이는 것은 끊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아는가. 줄이겠다는 마음은 계속 마시고 싶다는 마음이 꽁꽁 숨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몇 주간은 꽤 줄였다가도 어느새 슬그머니 하루에도 서너잔씩 마시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새해가 되면 뭔가 결심을 하게 된다. 2024년 올해 나에겐 커피믹스와의 헤어질 결심을 이토록 비장하게 해 본다.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와 비슷할까? 니코틴 중독과 카페인 중독의 비교가 아니다. 담배에 들어있는 니코틴과는 별개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고 힘껏 빨았다가 후~ 연기를 내뱉는 그 순간의 후련함같은 것. 담배 한대 필래?하면서 친구와 나가서 말없이 함께 나누는 그 시간. 난 비흡연자임에도 담배를 수십년째 끊지 못하는 남편을 지켜보면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에는 니코틴이라는 물질 이외에도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단호하게 남편의 금연을 요구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커피믹스에 대한 나의 마음이 사실 그러하다. 굳이 커피가 아닌 커피믹스를 끊겠다고 결심하는 이유는 바로 커피 중독이 아닌 커피믹스에 심리적 중독이 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카페에 가면 주로 커피를 마시긴 하지만, 때로는 차를 주문하기도 하고, 쥬스를 마실 때도 있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마셔도 좋고, 안 마셔도 그만이라는 마음이 있다. 헌데, 커피믹스만큼은 다르다. 누군가가 커피믹스를 권하면 좀처럼 거절하지 못 하고, 대기실에 놓여있는 커피믹스를 보면 괜히 한잔 종이컵에 타서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든다. 드물지만 간혹 커피 자판기가 눈에 띄면 슬그머니 눈길이 가기도 한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그만 마셔도 되겠다는 마음이 드는데도 커피믹스를 습관적으로 마시는 나의 마음을 이제는 정리하려고 한다. 


 내가 커피믹스를 처음 본 것은 중학교 다닐 때였다. 방학 때가 되면 늦깎이 대학생이었던 외삼촌이 지리산 등반을 하고 서울로 올라가기 전 꼭 우리집에 하루 들르셨다. 어린 나이에 대학생인 외삼촌은 굉장한 어른처럼 느껴졌다. 내가 평소 보지 못하는 커다란 등산가방을 메고 오셨는데, 수줍음이 많았던 나는 그런 외삼촌에게  말을 걸지 못하고 관찰만 했었다. 나가면 앞산, 뒷산으로 둘러싸여 있던 동네였기에 등산화를 신고, 등산가방에 짐을 싸서 다니는 사람은 외삼촌이 처음이었다. 서울에서 오신 외삼촌의 등산가방은 나에게 뭔가 멋진 물건이었다. 큰 등산가방에는 등산용 컵이 고리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고, 옆주머니에는 커피믹스가 꽂혀 있었다. 번거롭게 커피, 프림, 설탕 몇 스푼인지 물을 필요도 없이 그냥 한봉지 툭 넣으면 되니 참 신기하였고, 빨간 비닐 포장지도 어린 나의 눈엔 고급져 보였다. 먼지 풀풀 날리던 시골에서 무료했던 그 시절 나에게 그것은 신문물처럼 여겨져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이 되면서이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씩 매점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셨다. 어른이 아닌데 커피를 마시는 것은 해롭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주로 율무차나 우유를 골랐지만, 아주 가끔 친구와 긴 고민을 얘기할 때는 달콤쌉쌀한 커피를 골랐던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자판기 커피는 본격적인 소비 아이템 중 하나가 되었다. 그 때는 동아리 선배, 동기, 후배들과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도 많았을까. '커피 한잔 마실래?' 이 말은 너와 이야기 나누고 싶다, 내 이야기 좀 들어줄래? 이런 의미와 같았다. 자판기 앞에 서서 동전 두개를 넣으면서 '뭐 마실래?' 이 한마디로 대화는 시작되었다. 그렇게 커피 한잔은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과 같은 의미였다. 늦은 밤 기숙사 매점과 도서관 앞의 자판기 커피는 시험기간 중 잠시 쉬어가게 도와주는 위로의 선물이기도 했다. 이제 자판기 커피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그 자리를 지금껏 커피믹스가 대체하고 있었다. 즐겁고 편안하고 위로가 되었던 그때 느낌과 커피믹스가 강렬하게 연결이 되어 있기에 지금껏 습관적으로 커피믹스를 마셔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헤어져야 한다. 커피믹스는 더이상 현재의 나에게는 매력적이지 않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커피믹스는 설탕이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한포 열량은 50kcal 정도 된다고 한다. 얇은 식빵 한 장과 비슷한 열량을 가진다. 다이어트에는 이정도 칼로리도 조심해야 하지만, 나에겐 설탕과 열량이 커피믹스를 끊을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내가 헤어질 결심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저 습관적으로 나도 모르게 마시게 되는 그 마음을 바꾸고 싶어서이다. 한 잔의 유혹이 자주 있겠지만, 잘 다독이며 이겨내 보자. 



 

브런치 첫 페이지에 커피믹스와 헤어질 결심을 이렇게 장황하게 쓰게 될 줄이야. 

공개적으로 이별을 고했으니 이제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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