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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해 Aug 10. 2021

성냥팔이 소녀는 성냥을 팔지 않았다

  성냥팔이 소녀는 불꽃 심지에 갇혀있었다. 풍선 안에 있는 것처럼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손바닥으로 불빛을 만져보았다. 손바닥이 공중에서 흩어졌다. 추위도 잊을 수 있었다. 주머니 안에는 일곱 개의 성냥이 남아 있었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온 걸까?’

  추위에서 벗어났으나 종일 둥둥 떠 있는 느낌이 싫었다. 지상으로 내려가 나머지 성냥을 팔아야 했다. 소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이곳으로 오기 전처럼 소리를 질렀다.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불빛 안에 갇혀서 그런지 소녀 쪽만 밝았다. 세상은 온통 검었다. 타버린 성냥개비처럼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이 피어올랐다.

  지상에 있을 때는 추위와 외로움에 떨었다. 폭설이 내려 세상을 다 얼려버릴 것 같았다. 지금은 따스했으나 외로웠다. 간혹 어디선가 쇳덩이를 두드리는 것처럼 간헐적으로 도시의 소음이 들렸다. 일정한 속도로 가슴을 짓누르는 소리였다.

  소녀는 외로움에 성냥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소녀 옆에 다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거기에는 지난번 소녀에게 빵은 나눠줬던 길거리 소년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몇 달 전에 전염병에 걸려 죽은 아이였다.

  “안녕? 제임스. 넌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네가 불렀잖아. 소녀야, 나는 너를 만나러 왔단다.”

  “날? 너는 먼 길을 떠났다고 그러던데?”

  “내 영혼은 사라지지 않았어. 이렇게 네 곁에 있는걸.”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녀는 두 번째 성냥에 불을 붙였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젊은 여자가 나타났다.

  “안녕? 아가야. 나를 알아보겠니?”

  “누구세요?”

  “네가 지난번 내게 성냥을 나눠준 사람이야.”

  젊은 여자가 손을 흔들며 웃었다. 소녀는 젊은 여자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것 같아 움직임을 멈췄다. 그랬더니 일정한 간격으로 심지 안에 든 소년과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소녀는 나머지 성냥에도 불을 붙였다. 그때마다 불꽃 안에서 사람들이 나왔고 두둥실 떠올랐다. 하늘은 마치 반딧불이가 반짝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저마다 감탄했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던 여자는 불빛을 바라보며 옷깃을 여몄다. 불빛이 품 안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따스했다.

  “나도 저들 틈에 끼고 싶어.”

  소녀는 불빛 안에 있는 것도 좋았지만 사람들 틈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다 불빛 안에 갇혀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상했다. 다들 평온한 모습인데도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는 왜 공중에 떠 있는 거죠?”

  그때 젊은 여자가 말했다.

  “우리는 저들처럼 땅에 발을 디딜 수 없어서 그런 거야.”

  “왜요?”

  “슬픔을 달래는 대신 땅에서 쫓겨났거든.”

  “누가 우리를 쫓아낼 수 있어요?”

  젊은 여자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가 울자 눈에서 별빛이 쏟아졌다.

  “가난한 사람들은 세상에서 살기 어려워. 너도 그랬잖아. 추위와 배고픔으로 시달릴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

  소녀는 잠시 대답을 머뭇거렸다. 젊은 여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눈발처럼 차가운 현실 앞에서 몇 번이고 자신을 외면했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잠깐이었으나 두둥실 떠올라 여기저기 바람이 부는 데로 떠돌아다니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살얼음판을 맨발로 걷는 듯한 추위도 잊을 수 있었다.

  ‘성냥개비가 한 개 남았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소녀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불꽃 심지에 갇힌 사람들은 편안해 보았다. 어둠을 뚫고 쌩쌩 불어오는 눈보라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녀는 마지막 성냥개비에 불을 붙이기 전 땅을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축제에 들떠 있었다. 소녀처럼 가난한 아이들은 여전히 추위에 떨며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마지막 성냥개비에 불을 붙였다. 불꽃이 타오르는 동안 소녀는 간절히 빌었다.

  ‘저를 지상으로 내려가게 해 주세요.’

  소녀의 바람대로 불꽃이 사그라질 때쯤 소녀의 두 발은 차가운 눈 위에 있었다. 소녀는 가난한 아이들이 웅크리고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아직 소녀의 몸에는 불꽃 심지에 있었던 따스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왜 성냥을 팔지 않았니?”

  아이가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난 성냥개비를 팔지 않았어. 대신 사람들이 너무나 그리워 밖으로 나온 거야.”

  “팔지 않아도 되니? 배가 고프지 않니?”

  아이는 소녀가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소녀는 아이를 향해 활짝 웃었다.

  “집에 있을 때가 더 춥고 외로워. 거리로 나오면 네가 있잖아.”

  밝게 웃는 소녀의 모습에 아이가 따라 웃었다.

  소녀의 주머니에 남은 성냥개비는 없었다. 잠시만이라도 따스한 온기가 되어줄 게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소녀와 아이는 서로의 몸을 껴안으며 추위를 달랬다. 성냥개비보다 더 따스했다.

  두 사람 어깨 위로 눈이 소복이 쌓였다. 둘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불꽃 심지에 갇혀있던 사람들이 두 사람 주위로 몰려들었다. 서로 부둥켜안으며 하나의 불꽃이 되어 두 사람을 동그랗게 에워쌌다. 눈도 녹일만큼 따스한 기운이 사방으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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