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양도엘 갔었다. 섬 속의 섬이라는 곳. 바닷물이 청자처럼 맑았고 숭숭 뚫린 현무암이 지천에 널린 곳이었다. 검은 돌 사시사이로 푸른 바닷물이 제 몸을 풀었는데, 검고 푸름이 서로 섞이지 않아 완고한 듯 단정했다.
바닷가를 따라 걷다가 뿔소라 구이집을 만났다. 장작불에 올려진 소라껍질 안에서 뽀글뽀글 거품 끓는 소리가 들렸다.
해녀 한 분이 마침 바닷물을 헤엄쳐 나오고 있었다. 지치고 힘겹게 헉헉 숨을 내쉬던 그녀의 해녀망 안에 커다란 뿔소라가 가득했다. 바다 앞에서 중년인지 노년인지 그 언저리 어디쯤으로 보이는 남성들이 꼬챙이를 들고 기다렸다가, 해녀가 망을 내려놓으면 그것을 질질 끌고 올라갔다.
“아즈망! 오늘 저녁에 돼지 한 마리 잡을 거니까 마을회관으로 옵서.”
꼬챙이를 들고서 주변을 어슬렁대던 한 아즈방이 말했다. 아직도 숨이 버거운 해녀 아즈망은 한 번 두 번 고개만 끄덕였다.
“다 같이 모여서 오랜만에 마을 잔치하는 거니까 다른 아즈망도 다들 오라고 합서. 알겠소?”
아즈방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비양도 사람은 내가 다 먹여살린다는 듯. 나는 아즈방의 우쭐대는 목소리가 거슬렸다. 해녀의 말라비틀어진 몸과 납작한 가슴이 아즈방의 거친 목소리에 휘청대는 거 같았다. 뿔소라는 차가운 바닷속에서 사투 끝에 쟁취한 해녀의 전리품이었다. 아즈방은 기진맥진한 해녀를 기다렸다가 꼬챙이를 휘두르며 전리품을 낚아챌 것 같았다.
아즈방의 생색내기가 길어졌다. 해녀 아즈망은 하품 같은 대답을 한 후 가쁜 숨만 내쉬고 있었다. 나는 아즈방의 말을 끊고 싶었다. 그들을 슬몃슬몃 훔쳐보다가 그곳에 가까이 갔을 때, 나는 뭔가 헐렁한 것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아즈방의 팔소매였다. 오른 손으론 꼬챙이를 쥐었지만 왼쪽 손은 팔소매 안쪽으로 사라져 헛방만 놓고 있었다. 나는 그만 머쓱해지고 말았다. 그때였다. 아즈방이 꼬챙이를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는 해녀 아즈망이 끙끙대며 옮기던 플라스틱 통을 대신 잡더니 질질 끌어 옮기는 것이었다. 두 발자국 가다가 다시 멈추고 또 두 발자국 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아즈방은 뿔소라가 가득 담긴 통을 한 손으로 간신히 그러나 당당하게 옮기고 있었다.
바닷바람은 거세게 불고 아즈방의 소맷자락은 하릴없이 흔들렸다. 나는 돌처럼 그 자리에 서서 비었지만 비우지 않은 것에 관해서, 채우고 있지만 허전한 것에 관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