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덕후가 본 ‘내뒤테’
처음 내 관심을 끈 건 소지섭이었다. 소지섭 이름 하나로도 대중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그가 오랜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었다. 최근 무거운 역할을 계속 맡아온 터라 이번 드라마의 내용이 궁금했다. 공식 소개를 참고하자면, 이 드라마는 “사라진 전설의 블랙 요원과 운명처럼 첩보 전쟁에 뛰어든 앞집 여자의 수상쩍은 환상의 첩보 콜라보”에 대한 이야기다. 설정에 구미가 당기는 요소들이 많다. 충분히 재밌을 법해서 <내 뒤에 테리우스>를 보기 시작했다.
소지섭이 연기하는 ‘김본’이라는 캐릭터는 예상대로 탄탄했다. 정극과 코믹 연기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노련미가 돋보였다. 혼자 있을 때는 한없이 고독하다가도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영락없이 순둥 해진다. 지루하지 않은 캐릭터다. 다른 등장인물과의 케미도 다양해서 보는 맛이 있다. 그중 합이 제일 잘 맞는 상대는 단연 정인선이 연기하는 ‘고애린’이다. <내 뒤에 테리우스>를 보기 전까지 정인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살인의 추억 걔’, ‘매직키드 마수리 걔’였다. 하지만 이번 연기를 통해 그 이미지들을 완전히 상쇄시켰다. 한마디로 연기를 정말 잘 한다는 소리다. 그녀가 나오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무슨 일이건 포기하지 않고 돌파구를 찾아나가는 당찬 캐릭터 설정도 마음에 든다. 손호준의 극 중 캐릭터인 ‘진용태’는 회를 거듭할수록 정체성을 뚜렷하게 찾아가는 느낌이다. 초반에는 역할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극이 전개되면서 악덕스러움과 코믹스러움이 적절하게 어우러지고 있다. 킹 캐슬 아줌마 정보국 ‘KIS’ 역시, 나왔다 하면 웃음을 보장하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내 뒤에 테리우스>는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누구 하나가 멱살 잡고 끌어가는 드라마’가 아니다.
<내 뒤에 테리우스>는 ‘고애린’이 주체가 되는 이야기다. 모든 근원적인 이야기는 애린으로부터 나온다. ‘차정일’의 죽음(극 중 애린의 남편)이나 ‘J 인터내셔널’의 내막 등 극 중 주요한 사건들은 모두 애린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있다. 여기서 테리우스가 조력자로 합세하면서 이야기가 시너지를 내고 있는 중이다. 이야기의 장르도 고루 섞였다. 억지스러운 판타지가 아닌 일상적인 내용이다. 웃길 땐 웃기고 진지할 땐 한없이 진지하다. 이 드라마에서 완벽한 짜임새는 중요치 않다. <내 뒤에 테리우스>라서 가능한 코믹적인 설정 때문에 시청자들은 마음 편하게 드라마를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심각한 상황임에도 ‘왕정남’(12회 엔딩 참조)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난 것처럼 말이다. 이때 너무 웃기다는 반응으로 실시간 채팅창이 도배가 됐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남아있는 회차 동안 본과 애린의 진득한 로맨스는 없었으면 한다. 드라마가 풀어내야 할 이야기가 많은데 그 사이에 로맨스가 들어가기엔 자리가 너무 비좁다. 로맨스가 성공 드라마의 공식은 아니다. 아쉬운 건 아직까지 첩보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12회까지 방송이 된 지금, 시청자들은 언제쯤 애린이 첩보 활동에 뛰어들지 학수고대하고 있다. 여기서 바라는 점은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스토리가 연출되는 것이다. 본과 애린이 각자의 기량을 루즈하지 않게 뿜어냈으면 좋겠다.
드라마 카피에 걸맞은 "치밀하고 은밀한 환상의 첩보 콜라보"를 기대한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마케팅이다. 그 흔한 인물별 포스터도 없다. 홈페이지에 있는 인물별 긴 소개 글도 좋지만 시각을 사로잡는 콘텐츠였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더 나아가 꽂히는 OST도 없다. <내 뒤에 테리우스>가 주력하고 있는 부분이 OST가 아니라도, OST는 드라마 정체성과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남은 회차 동안 드라마와 찰떡으로 어울리는 OST가 나와줬으면 한다. 또 온에어, 오프라인 프로모션을 가감 없이 진행할 필요도 있다. 단순 보도기사나 SNS 이벤트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시청 습관을 가시화하는 베리에이션도 다양하게 제작되어야 한다. <내 뒤에 테리우스>는 지지부진하던 MBC 수목드라마 시청률을 회복시켰다. 이 상승세를 쭉 이어나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마케팅 ★★☆☆☆
지난 5일, 강대선 책임프로듀서(CP)와 남궁성우 제작 PD를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시청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내 뒤에 테리우스>의 세세한 내용 설정부터 드라마 제작 환경의 전반까지 다방면으로 고민이 많아 보였다. 두 PD는 후반부에 드러나게 될 반전을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드라마는 많은 사람들의 협업이 필요하고, 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는 콘텐츠다. <내 뒤에 테리우스>는 “연출+극본+연기” 3박자의 화음이 좋다. 화기애애한 현장 분위기가 큰 몫 한다. 그리고 시청자들의 반응까지 잘 어우러지고 있는 작품이다.
구성원들의 합이 좋은 드라마 <내 뒤에 테리우스>가 황금길을 걷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