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길 위에서... 미국 동부 보딩스쿨을 가다 #5
#Scene 5
혼미한 상태에서 학교들 둘러보고 나오니, 어느새 점심때가 지났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과 메스꺼움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로변에 타이 음식점 간판이 보였다.
아이는 평소 좋아하는 '팟타이'를 주문했고 음식 생각이 전혀 없던 난
국물로 속을 달래 보자는 생각에 '똠양쿵'을 골랐다.
그런데 그 특유의 향과 매콤함이 전해지자마자, 속이 요동을 쳤다.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한참 동안 나오질 못했다.
속을 비워내니,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이젠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장시간 비행에 따른 시차 적응력도 떨어지고 음식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탈이 나면 비워내는 원초적 해법의 효능에 새삼 감탄하면서 머릿 속도 마음속도 답답할 땐 비워내고 다시 채우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새 아들 접시에 쌓여있던 '팟타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튼실한 위장이 부러웠다.
정신을 차리고 운전대를 잡았다. 오후에 투어 일정을 잡은 학교에 늦지 않으려 서둘렀다.
뉴욕주에 있는 사립학교 <EF Academy>에 도착했다. 전통의 고풍스러운 전형적인 미국 보딩스쿨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에도 지사를 두고 있고, 오랜 세월 해외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서 국내에선 그래도 인지도가 꽤 있는 편이다.
사진과 동영상에서 본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래되지 않은 건물들과 모던한 실내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다. 북유럽 국가에서 설립한 학교여서일까. 학교 곳곳에 그네들의 실용성과 간결함이 묻어났다. (스웨덴에서 태동한 글로벌 가구 기업 '이케아' 쇼룸 같기도 했다~ 최근에 만난 이케아 관계자는 가구 회사가 아니라 furnishing 회사라고 하긴 했다)
그래서인지 '학교'보다는 '학원'에 가까운 인상을 받았다. 유럽에서 만든 미국 내 국제학교로 유럽과 아시아 (한중일), 중남미에서 온 학생들이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었다.
전통 있고 역사가 깊은 미국의 학교들은 대개 고색창연한 석조 건물에 내부도 어딘지 어두침침한 편인데 EF는 이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분위기는 밝고 활기찬 데 내실은 어떨까?
직접 경험하지 않고선 파악하기 힘들지만, 우리가 그렸던 academic과 athletic이 융합된 '학교'의 모습보다는 거대 자본으로 굴러가는 '글로벌 입시학원'으로 다가왔다. 물론 미국의 많은 사립학교들이 자본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있다.
다시 말하지만 철저히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것이고,
이것도 선입견과 편견에서 오는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그런데 이 학교에 도착하기 전까지 시큰둥해하던 아들은 꽤 관심을 보였다. 학교 건물이 깔끔하고 기숙사도 좋아 보이고 심지어 화장실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우리가 가장 관심 있게 보는 시설 중 하나인 축구장을 둘러보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이렇게 하루에 학교 2곳을 돌아보는 숨 가쁜 일정이 마무리됐다. 뒤틀리던 속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됐는데.. 허기와 피곤이 몰려왔지만 지체할 수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다음 목적지인 Delaware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