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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May 10. 2021

#33. 토정비결을 괜히 봤다

난 앞으로 1년간 길흉화복 중에서 흉과 화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될 거다

平地風波(평지풍파) 驚人損財(경인손재) 평지에 풍파가 일어나니 사람들이 놀라고 재물 손실도 있겠다. 

深夜犬吠(심야견폐) 盜人窺門(도인규문) 심야에 개가 짖으니 도둑이 문틈을 엿보는구나.

樂極生悲(낙극생비) 有備無患(유비무환) 기쁨이 다하면 슬픔이 생기니 미리 대비해야 근심을 없앨 수 있다.

財數平吉(재수평길) 入手側出(입수즉출) 재물운은 평범하나 돈이 들어오는 즉시 나갈 것이다. 


2021년 내 운세다. 휴대전화를 뒤적거리다 생년월일과 난시를 입력하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돈을 잃고 도둑을 조심해야 하며 슬픈 일을 대비해야 한단다. 2020년도 그다지 별 볼 일 없었는데, 2021년은 더 안 좋을 거 같다. 재미 삼아 봤는데 기분이 좋지 않다. 

이동과 만남이 극도로 제한되고 있다. 오후 9시가 되면 주점과 상점이 문을 닫고 대중교통도 제한 운용된다. 일찍 귀가하라는 뜻이다. 정부는 휴일에도 집에 있으라며 엄포 섞인 당부를 한다. 이렇게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를 고민하며 휴대전화를 뒤적거렸고, 그렇게 토정 이지함 선생의 비결이 나의 무료함을 달래줄 거라 생각했다. 더불어 2020년이 힘들었으니(세상 모두가 그랬다) 부디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평지풍파’가 나왔다. 이지함 선생에 따르면 난 앞으로 1년간 길흉화복 중에서 흉과 화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될 거다.  

김선관이 자동차 회사들이 터 잡은 곳을 기반으로 길흉을 점쳤다. 풍수학자가 내놓은 땅의 형세와 지금 자동차 브랜드의 형편이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지는 게 오묘하면서도 재미있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풍수 해설은 무릎을 탁 치게 한다. 나도 풍수지리를 배워볼까 싶다. 더불어 <모터트렌드>가 2년 전 터를 잡은 서울 종로는 어떠한지 풍수학자에게 슬며시 던지니, ‘땅의 기운이 업종과 맞지 않는다’는 조심스러운 해석을 내놓았다. 바로 앞에 조선의 여러 왕 위패를 모시는 종묘가 있어 최고의 명당이 아닐까 싶었는데, 명당에도 여러 조건과 형태가 부합해야 하는가 보다. 

<모터트렌드>도 2021년 한국의 자동차 시장이 어떠한 형국으로 될지 점쳤다. 올 한해 출시될 차를 모두 추리고 그중에서 어떤 차들이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게 될지 예측했다. 2020년에 비해 출시되는 차의 수가 약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20년처럼 아파트값이 계속 오르고 주가지수가 연일 최고치를 기록한다면, 자동차 판매량은 2020년에 이어 올해도 최고치를 기록하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보니 2020년은 아파트 있고 주식 있는 이들이 큰돈을 번 해가 아닌가 싶다. 난 아파트는 없고 계속 떨어지는 주식만 있다. 심란하다. 이미 이지함 선생의 비결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인가? 더불어 일터 풍수지리도 좋지 않다 하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운이 좋지 않고 땅과 물의 기운이 내게 제대로 닿지 않는다 하여 내 인생에 큰 변화나 변고가 있을 거로 생각하진 않는다. 2020년 토정비결은 ‘뜻을 품고 집을 떠났다가 금옷을 입고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10년간의 고생과 노력이 이제야 영화로 돌아온다’고 했다. 하지만 금옷은 고사하고 10여 년 동안 계속 고생과 노력 중이다. 지금 사는 서울 개포동은 대모산의 정기를 받고 앞으로 양재천이 흐르는 배산임수에 좌우로 작은 언덕이 있어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라는데, 맥과 정기가 너무 강해서인지 잠을 잘 이루지 못해 이사를 생각하고 있다. 

대운과 명당이 아니라 하여 좌절하지 않고, 흉과 화가 많다고 해서 걱정하지 않는다. 설마 2020년 같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토정비결은 괜히 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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