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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May 10. 2021

#34. 21세기판 골드러시

예전보다 차를 쉽게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얼마 전 애플이 전기차를 만들기 위해 현대차와 접촉했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애플과 현대차 주가가 폭등하는 등 시장이 술렁였다. 세계 최고의 IT 회사와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사의 만남은 엄청난 시너지를 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LG는 세계 3위 자동차 부품 업체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전기차 파워트레인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LG는 이미 세계 최고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 기업임과 동시에 자동차 전장에서 선도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LG가 전기차 파워트레인을 비롯해 섀시, 내·외장재 등 자동차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해 납품하는 마그나와 손을 잡는다는 건, 언제든 완성차를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뜻이다. 

애플과 LG 등 초거대 기업이 아니더라도 전기차를 만들거나 만들겠다고 선언한 회사는 많다. 크로아티아의 리막(Rimac)은 전기차 기술력만으로 포르쉐와 현대차 등에서 엄청난 금액의 투자를 받았다. 최근엔 폭스바겐 그룹의 부가티를 인수한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사세를 키웠다. 테슬라에서 나온 기술자들이 설립한 루시드는 1000마력이 넘는 파워트레인에 한 번 충전으로 830km를 갈 수 있는 전기차를 선보였다. 전기차 스타트업 카누(Canoo)는 모듈형 전기차 플랫폼 기술만으로 현대차에서 투자를 받았고, 애플에서 인수를 시도할 정도였다. 이달에 소개된 미국의 전기차 스타트업 알파모터스도 작고 귀여운 도심형 전기차를 선보이면서 이미 1조원이 넘는 사전 예약을 기대하고 있다. 이외에도 전기차 스타트업은 세계 시장에 차고 치일 정도로 많다. 

사실 전기차 시장은 아직 파지 않은 금광이나 마찬가지다. 지금도 많은 전기차가 생산·판매되고 있지만, 내연기관 판매량의 5%도 되지 않는다. 내연기관이 없어지고 온전한 전기차 세상이 온다고 가정해보자. 몇십 개의 자동차 제조사가 독점하고 있는 지금의 시장구조는 완벽히 재편된다. 이미 전기차 판매는 테슬라가 독보적인 1위다. GM, 포드, 토요타 등 100년 내외의 시간 동안 시장을 지배했던 기업들은 전기차 시장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세상이 뒤집힌 변혁의 시대엔 제대로 된 전기차 기술만 있으면 돈을 긁어모을 수 있다. 이걸 일찌감치 간파한 일론 머스크는 온전한 전기차 시장이 오지 않았음에도 테슬라를 시가 총액 1위에 올렸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꼭꼭 숨겨놓았던 전기차 금광을 미국 돌아이가 찾아내 가장 먼저 입성한 것이다. 그렇게 제2, 제3의 테슬라를 꿈꾸는 이들이 속속 전기차 시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많은 기업과 스타트업들이 머스크를 따라 전기차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건 내연기관에 비해 전기차는 기술집약도가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내연기관의 핵심 부품인 파워트레인(엔진+변속기)은 공학 기술의 정점에 있다. 신생 회사가 감히 만들 수 없거니와 만든다고 해도 엄청난 투자와 시간이 요구된다. 물론 사다 쓸 수도 있지만, 지속적인 핵심부품 구매는 수익구조에 치명적이어서 지속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 

엔진은 자동차 제조사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그런데 자동차 제조사들이 무기를 잃게 됐다. 엔진과 변속기는 전기모터로 대체됐고 석유 대신 배터리를 사용하는 시대가 왔다. 흡입-압축-폭발-배기의 복잡한 행정이 충전과 방전으로 간소화되면서 2만 개에 이르던 자동차 부품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예전보다 차를 쉽게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고, 그 시대는 누구도 선점하지 않았으니 눈에 불을 켜고 전기차 시장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건 마치 19세기 미국 캘리포니아에 금광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골드러시 현상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내연기관 시대를 지속하고 전기차 시대를 어떻게든 늦추려 했던 자동차 제조사들의 카르텔이 무너지면서 전기차를 향한 21세기판 골드러시가 시작됐다. 꿈과 희망, 돈과 권력이 전기차 세상에 있다. 자! 어서 주인 없는 금덩이를 움켜쥐려 달려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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