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권의 책에 숨겨진 포르쉐의 15년
오늘은 책을 한 권 소개할까 합니다. 자동차 애호가와 포르쉐 마니아라면 한 권쯤 탐을 낼만한 책이에요.
바로 'Porsche Unseen Design Studies'입니다.
표지를 장식한 차가 무엇인지 아시겠어요?
바로 포르쉐의 하이퍼 콘셉트카 919 스트리트입니다. 포르쉐의 LMP1 경주자 919 하이브리드 에보를 베이스로 만든 콘셉트입니다.
'UNSEEN' 말 그대로 이 책은 그동안 포르쉐가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콘셉트 및 디자인 스터디 모델 15종을 모은 책입니다.
자! 그럼 책을 한 번 살펴볼까요?
우선 목차는 이렇습니다.
15개의 모델을 4개의 카테고리로 나눴죠.
익숙한 이름도 있고 '뭐지?'하는 부분도 있을 거예요.
스핀 오프는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은 파생 모델입니다.
목차에서 보시는 것처럼 네 종의 파생모델들에 대한 소개와 이미지가 있어요.
아래 보시는 차는 포르쉐 박스터를 베이스로 한 박스터 버그스파이더 입니다.
1950년대 후반 포르쉐는 알프스를 넘나드는 힐클라임 경주인 유럽 힐클라임 챔피언십(European Hillclimb Championship)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어요. 당시 경주차가 포르쉐 909 BERGSPYDER였죠. 가파를 경사로를 오르는 경주여서 무게를 줄이는 게 아주 중요했죠.
당시 포르쉐의 경주차는 400kg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건 뭐 거의 비이성적이면서 급진적인 경량화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박스터 버그스파이더는 이 전설적인 경주차의 경의를 표하기 위해 만든 스핀 오프 모델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운전석밖에 없어요. 캔버스 루프도 없고 윈드실드도 아주 낮게 잘라냈습니다. 그렇게 무게를 1130kg으로 줄였죠. 엔진은 카이맨 gt4에 들어가는 3.8리터 393마력입니다.
A필러가 없어 룸미러를 아래에 놓을 걸 볼 수 있어요. 정말 왕년의 레이스카 느낌이 물씬 나네요. 물론 운전자 보호를 위해 헤드레스트 뒤에는 롤바를 단 것도 볼 수 있고요. 이 멋진 자동차는 생산이 안 됐죠. 당연합니다. A필러가 없으니 안전규정을 절대 통과할 수 없을 테니까요. 다만 책에선 뒤 엔진룸 위에 뉘르부르크링 스티커를 붙인 박스터 버그스파이더가 도로를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독특하고 아름다운 박스터를 이미지를 'PORSCHE UNSEEN'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다음은 LITTLE REBELS입니다. 'SMALL SPORTS CARS'라는 뜻입니다. 포르쉐가 지금의 박스터보다 더 작은 스포츠카를 만들었으면 어땠을까요? 더 많은 소비자들이 포르쉐를 경험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포르쉐 비전 916은 2016년에 구상된 디자인 콘셉트입니다.
책에선 포르쉐가 1970년대 초 실제로 916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했던 적이 있다고 하네요. 작지만 빠르고 정교하게 움직이는 스포츠카 콘셉트였죠. 하지만 아시는 것처럼 생산에 들어가진 않았어요. 그리고 먼 훗날 2016년에 포르쉐 디자인팀은 40여 년 전의 프로토타입을 되살려 비전 916을 그려냈습니다. 그런데 콘셉트가 많이 달라졌어요. 이 차는 콘셉트거든요.
예전에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로너-포르쉐'라는 전기차를 만든 적이 있어요. 그 전기차와 마찬가지로 네 바퀴 허브에 전기 모터를 달아 달리는 작고 빠른 전기 스포츠카 콘셉트입니다. 혹시 모르죠. 본격적인 전기차 세상이 오면 비전 916이 916이라는 전기차를 포르쉐 전시장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다음으로 하이퍼카를 볼까요?
가장 먼저 등장한 차가 919 스트리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919 하이브리드 에보 경주차의 로드카 버전 콘셉트에요. 포르쉐에서 한국인 자동차 디자이너 정우성 씨가 디자인했습니다.
919 하이브리드 에보는 2015년부터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를 3년 연속 제패한 경주차입니다. 포르쉐의 유구한 레이싱 역사에서도 또렷하게 빛나는 모델 중 하나죠. 2016년 르망 현장에서 포르쉐 경주차가 우승하는 모습을 지켜봤었는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네요.
919 하이브리드 얼마나 빨랐냐면요. 2018년에 티모 베른하르트가 이 차를 끌고 뉘르부르크링을 공략했는데요. 5분 19.55초 만에 달리는 놀라운 스피드를 보여줬어요.
포르쉐는 LMP1을 제패하고 왕좌를 다시 친척인 아우디에게 내주고 르망을 떠납니다. 그리고 독일 바이작에 있는 포르쉐 디자인팀은 919 하이브리드 경주차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919 스트리트를 선보이죠. 뒷모습을 보면 거대한 윙이 없는걸 빼면 거의 똑같은 걸 볼 수 있어요.
책에는 '아마추어 레이서에게 선사하는 LMP1 경주차의 짜릿한 드라이빙 경험'이라고 적혀있는데요. 저는 이렇게 무식하게 빠른 지상용 이동 수단은 절대 타지 않을 겁니다. 시속 400km로 달리는 건 무섭잖아요. 물론 탈 일도 없겠지만요.
아시겠지만 이 차는 양산되지 않았어요. 목업으로 제작돼 세상 어딘가를 돌며 포르쉐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죠. 그리고 조만간 포르쉐 919 스트리트를 한국에서 만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밝힐 순간이 오면 다시 알려드릴게요.
왓즈 넥스트는 포르쉐가 구상하는 미래 비전 이야기에요. 그런데 생감새가 영 포르쉐 같지 않은 이 차는 뭘까요?
우린 이렇게 생긴 포르쉐를 본적이 없어요. 생소해도 너무 생소하죠. 그런데 콘셉트를 이해하면 '아~~~'하실겁니다. 이 차의 이름은 Renndienst입니다. 영어로 하면 Race Service가 되죠. 이제 감이 좀 오시나요?
자동차 경주장엔 경주차만 있는 건 아닙니다. 경주차보다 훨씬 더 많은 지원차가 있죠. 포르쉐 비전 렌디스트는 포르쉐가 출전하는 자동차 경주에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콘셉트의 6인승 밴입니다.
사실 포르쉐에게는 실용적인 버스 스타일의 설계는 절대 안된다는 종교와 같은 디자인 신념이 있어요. 그들이 여태까지 내놓은 차를 보더라도 알 수 있잖아요. SUV도 스포츠카처럼 디자인하니까요. 이 미니밴도 포르쉐의 디자인 종교를 그대로 따릅니다. 낮고 넓으며 매끈하죠. 폭스바겐 서비스 밴과 비교해보세요. 이 차가 얼마나 낮은지.
또 휠하우스를 넓힌 걸 보세요. 코너에서도 단단하게 차체를 지지해줄 것 같죠? 이 책엔 이런 재미있는 디자인 스토리가 가득합니다.
포르쉐 언씬은 처음부터 끝까지 포르쉐의 비밀을 포르쉐 독자와 팬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책입니다. 그저 공개되지 않은 모델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포르쉐 역사와 레이스를 디자인으로 설명하고 소개하는 책입니다. 글은 아주 적고 사진이 많지만 포르쉐의 서사가 농밀하게 담겨있어요.
330페이지나 되고 종이가 두꺼워 무게가 2.2kg(직접 달아봤어요)나 되는 무거운 책이에요. 즉 들고 다니면서 가볍게 보는 책이 아니라 책상 앞에서 진중한 자세로 대할 수밖에 없는 책이죠. 어때요? 포르쉐 팬이시라면 하나쯤은 소유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저도 지난 며칠간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며 포르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공부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정리할 때 슬쩍슬쩍 뒤져보는 테이블 메이트 북으로도 좋을 거 같아요.
지난 17년 동안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제가 만든 책이 아닌 이런 좋은 책을 소개하는 것도 즐겁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