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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ura gamsung Aug 27. 2024

방문객과 울타리에 대하여

한 사람의 소우주를 맞이하는 것

세상에 사람이 온다는 걸 알려준 시가 있다.

책방에서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사람의 인생을 읽는 것'과 같은 맥락인 것 같다.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나는 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우주가 굉장히 흥미롭다.

 

사람을 알아갈 때,

나에게 먼저 보이는 건 '현재'이다.

들을 수 있는 건 '과거'와 꿈꾸는 '미래'이다.

 

'현재'에서 내가 발견할 수 있는 건 '태도', '가치관'.

이것들은 단 기간에 형성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것들을 만들어 낸 '과거' 사건이 있을 터.

당연히 궁금해진다.


이런 과거가 쌓여 현재가 되었을 것이니

가끔 그 과거를 놓친 걸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현재를 쌓아가며 꿈꾸는 '미래'도

당연히 궁금해진다.


그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 미래의 꿈이

반드시 이뤄지길 응원한다.

 

사람을 알아갈 때, 이 세 가지의 소우주가 나에게 온다니.

거기에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과 그래서 더 단단해졌을 마음이

나에게 온다니.

 

사람이 나에게 온다는 건 이렇게나 멋진 일이다.

고로, 사람을 마주하고 알아간다는 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일이다.

 

나에겐 이게 바로 '사랑'이다.

 

그 사람의 소우주를 궁금해하는 것.

그 사람의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환대해 주는 것.

 

나의 온 집중을 호기심과 관심에게 쏟는 것이

나에게는 '사랑'이다.

 

물론 아무에게나 이런 관심과 사랑을 보내기엔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다.

놀랍게도 나도 남의 사사로운 것엔 관심이 없는 타입이다.


나에게도 나름의 결계가 있다.

열리냐 안 열리냐의 기준은 나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지금 하나 떠오르는 것은

'응? 저런 면이 있었어?' 일 것이다.

그런 방문객들에겐 버선발로 달려 나가는 것 같다.

 "그래서 그거 뭔데~~~?"



어린 시절에 나는,

사랑을 많이 못 받고 자란 아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맞벌이라 애정결핍이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보다 더 많은 관심을 다른 사람에게 쏟는 게,

나를 향한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돌이켜보면,

부모님의 빈자리를 채워준 감사한 우리 외가 쪽 식구들이 있었고,

앞 집 어르신들과 소꿉친구들이 있었다.


(내가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부모님을 기다릴 때면

담배를 태우러 나온 앞집 아저씨는 수줍음이 많던 나에게 먼저 손을 흔들어 주신 게 아직도 생각난다.)


받은 관심과 사랑이 있기에,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지만, 확실히 나를 희생해서 남에게 쏟는 관심이 좀 있긴 하다.

이건... 점차 고치려고 노력 중이다.

나를 우선순위를 두는 연습.

어려워

 


울타리는 밖의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안에 있는 내가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막는 느낌이기도 하다.


즉 맞벌이인 아이들은 애정결핍이 많다.라는

사회적인 통념에

내가 나를 편견 어린 시선으로 가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라는 걸

최근에 생각을 고쳐먹고 있다.


그리고

나의 울타리와 나의 세상이 조금 더 넓어지길 바라며,

불편한 곳에 나를 던져서 부딪혀보는 연습을 한다.


이제껏 저 사회적 통념 뒤에 숨어 피했던 것들..

아직까지 어색한 사람과 1:1, 콜 포비아는 좀 남아 있지만

점점 나아지는 듯하다.

 

방문객들에게 check list를 들이밀어 해당사항이 없으면 울타리 안으로 못 들어오십니다.

라고 하진 않으니까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연습도 하게 된다.

다른 소우주라고 생각하면 꽤 괜찮다.

다른 게 당연하고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게 당연하다.


아직도 연습과 실수 투성이지만,

'시도와 용기'에 초점을 맞추면

꽤나 there, there 하다.

 


오늘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람을 들여다보며,

사람을 듣고, 그대로 보고,

소우주를 들여다보고 이해하려 연습을 한다.

 

그렇게 내 울타리를 넓혀간다.

그렇게 나의 사랑의 땅덩이도 넓혀간다.


수많은 방문객을 받아들일 줄도

방문객 안에서 더욱 내 사람들과 잘 지낼 줄도

유독 나의 가치를 더 알아주는 사람을 발견할 줄도

아는 지혜도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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