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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ura gamsung Sep 02. 2024

꿀 먹은 벙어리에 대하여

[해석불가]입니다.

벌써 1년 하고도 6개월이다.

이 포지션에서 일을 한지가.

365+ 182.5 = 547.5일 = 13140시간이다.


난 이 시간 동안 얼마나 성장했을까?


아무리 칭찬세례를 부어봐도,

긍정파워를 가동해 봐도


나는 제자리걸음이다.


열심히 끙끙대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마치 내 허리춤엔 보잉 747 비행기가 묶여있는 것처럼

자꾸만 뒤로만 당겨진다.


첫 번째,

열심히 떠들어 재끼는 나와 다른 모국어를 가진

사람의 말을 듣고만 있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순간이다.


이전처럼 긴장하거나, 식은땀이 등 뒤에 흐르거나

그렇지 않지만,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이해하고 싶다. 대화에 참여하고 싶다.

근데 진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어색한 추임새와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상대방은 귀신같이 안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렇지만 자비는 없다. 자기 할 말을 이어가는 것뿐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듣고 싶지 않아도 진동과 파동에 의해

들을 수밖에 없다.

나에게 있어 언어가 아닌 소리에 불과하다.


내 뇌에선 삐용삐용

빨간빛의 사이렌이 울리며

[해석불가]가 계속 깜빡인다.


연신 아는 단어를 주워본다.

짜깁기 하여, 나만의 소설을 써본다.


이런 뜻인가? 한 번 되물어본다.

완전 잘못 파악했다. 또 다르게 설명을 한다.

그것도 [해석불가]


엄청 천천히 얘기해 준다. 발음도 또박또박해준다.

'아.. 자존심 상해' 꿀 먹은 벙어리 주제에

자존심이 상한다. 이런 내가 미워지는 순간이다.


하..... 집에 가고 싶다....


두 번째,

일단 상대방이 표정이 좋지 않다.

질문이 있단다, 무릎이 아픈데 다른 곳을 치료하면

보험은 어찌 되는 거냐 묻는다.

내 옆에 나보다 더 그 나라 언어를 잘하는 사람이 대답을 한다.


나는 또 꿀 먹은 벙어리이다.


하.... 집에 가고 싶다....


나중에 내가 또 띄엄띄엄 설명을 했지만,

진짜 멋없다. 울고 싶다.


애증.

미국 그리고 영어.


오늘은 유독 쓰다.

그리고 진절머리 난다. 지긋지긋하다.


(I've had it. I'm sick of it.

이딴 영어 표현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도

웃기지만 감사하네.)


나아지지 않는 날 데리고 사는 기분이다.

너무나도 선명하지 못하고 흐릿한 내가 되는 순간을

나는 도무지 견디기가 힘들다.


그저 진동과 파동이 만들어낸 소리에,

나는 오늘도 좌절하고 오늘도 나를 미워한다.

오늘도 미안해하고 오늘도 초라해진다.


나의 모국어가 한국어인 게 자랑스럽다.

그런데 오늘은 나의 모국어가

한국어인 게 야속하다.


글을 쓰면서

이 어마무시한 감정과 감동을 담아내는

무궁무진한 단어들과

주어동사목적어등등의 뒤죽박죽 순서에도

뜻이 전달되는 엄청난 문법과

모든 소리를 받아 적을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나는 좋았다.


그러나 언어학습면에서

한글은 지독하게 불리하다.


물론 타고난 언어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상관없겠지만,

나는 순수하게 노력파이기에

언어의 높디높은 장벽 앞에 서서

나는 멍하니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그렇지만,

원대한 꿈도 꿔본다.


팟캐스트에서 영어로 내 생각을, 지식을

마이크 앞에 앉아 자유롭게 토론하는 모습을 말이다.

나는 그런 나의 모습을 뚜렷하게 꿈을 꿔본다.

(이미 게스트들과 패널들도 생각해 놨다.)


유학을 가고 싶다.

영어공부와 전공공부를 위해 말이다.


다른 세상에 내가 던져졌을 때

어떻게 헤쳐나갈지 궁금하다.


그렇지만 오늘의 이 초라함부터

헤쳐나가야 할 것 같다.


노를 계속 저으면 물이 들어온다는데,

그렇게 묵묵히 노를 저어야겠지.


그렇게 내 삶에 그냥저냥

되면 되는대로 안되면 안 되는 대로 해야겠지.


나 오늘 진짜 초라했다. 무능했고, 실망스러웠다.

그렇지만 나는 도망치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 진심을 다해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그래, 오늘의 초라함은 이 노력으로 퉁치자.

그렇지만 잊지 말자. 오늘의 좌절감과 무능감을.

내 Motivation으로 삼자.


오늘 이 두 모먼트가 생긴 게

감사하다. 나아갈 연료가 생겼으니.


I have to bet on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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