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차를 못 샀다. 하고 싶은 건 많고, 돈과 수입은 한정되어 있고, 내 주식은 상한가를 치지 않을 안전빵이라, 차곡차곡 모은 돈을 천만 원대로 쓰기란 여간 손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보니, BMW-T를 이용한다. Bus, Metro, Walk + Train
BMW안에는 배려와 무례와 질서와 무질서가 난무한다. 마치 냉탕과 온탕처럼, 인류애가 박살 났다가 사라졌다가, 마음이 평화로웠다가 화로 가득했다가 한다. 나도 성장 중인 한 인간이라,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감히 판단할 수 없지만. '기본'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우리가 배우는 '공중도덕'이라는 것이 말이다.
안타까운 건 특정 호선에 따라 이 공중도덕이 달라진다는 걸 새삼 느꼈다. 특정 동네만 지나거나 한가로운 호선은 타고 가면 정말 평화롭다. 임산부석이 비어있고 노인좌석에서 실랑이하는 사람들도 없으며, 서로의 스페이스를 지키며 서있다. 꼬맹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자리를 양보하고, 어르신들도 굳이 자리 양보를 강요하는 뉘앙스를 풍기며 서있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길거나 환승 구간이 많은 복잡한 호선은 카오스 그 자체다. 일단 내리고 타지 않거나, 어깨빵과 밀기, 임산부석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키가 작은 편이라 손잡이를 잡으려는 팔꿈치에 자주 맞는데 실수로 치더라도 사과하지 않거나 발 밟히기, 가방 끈으로 얼굴 맞기, 새치기 등등.. 굳이 뭐라 하진 않지만, 상당히 피곤해진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민폐를 끼칠 수 있기에 조심한다.
(아, 갑자기 생각나네. 그래서 그런가? 유독 칸과 칸사이의 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렸을 적에 거기 타서 스케이트 보드놀이~ 하면서 중심 잡기하고 그랬는데. 아, 그 자리에 있으면 뭔가 이런 치임을 덜 받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빛나는 보석 같은 곰돌이들이 있다. 바로 '앞으로 가방을 멘 사람들'이다. 무려 10 몇 년 전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아침마다 버스를 탔었다. 그 버스에는 3개? 정도 되는 학교들의 학생들이 탔었다. 아침은 늘 만원 버스였고 뒤로 타는 애들에게 카드를 찍으라는 기사님의 정겨운 샤우팅으로 아침을 시작하곤 했다. 그때 앞으로 가방을 메었다. 그냥 우리에겐 그게 당연한 거였다. 내 가방이 누군가에게 치이는 것도 별로였거니와 누군가가 지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있었던 건지... 그때 우리들은 초록색 교복을 입은 시금치곰돌이들이었다. 진회색 교복을 입은 비둘기곰돌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10대 때 자연스럽게 배운 '앞으로 가방메기' 는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졌고, 이런 곰돌이들이 멸종직전이라, 같은 곰돌이들을 발견하면 여간 반가울 수가 없다. (속으로 박수를 오백만 번 치고 있다.)
사실 앞으로 가방을 메면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면서 마치 임신한 몸처럼 허리에 부담이 가고 어깨가 말리면서 등도 아프다. 그리고 흔들리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중심 잡기도 힘들어진다. 이런 불편을 감수하는 이유는 그저 하나다. 사람들이 지나다닐 때 덜 불편하게, 내 가방이 방해되지 않았으면 하는 그 마음이거나, 가방이 치이는 게 싫거나 그 둘 중하나지 않을까. (진짜 가방이 소중할 수도 있고) 어째 거나, 저째 거나, 남에게 피해 주는 건 최소화하기 위한 마음이니까. 나는 그 곰돌이들의 마음이 좋다. 본인들의 불편함을 조금 감수하는 마음. 사실 그런 대단한 마음을 갖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럴 것이라 믿고 싶다.
오늘도 지하철 계단을 오르면서 몇몇의 곰돌이들을 발견했다. 다 큰 어른들이 그러고 있으면, 가끔 피식 웃음이 난다. 귀여운 곰돌이 같아서 말이다. 나는 앞으로도 기꺼이 곰돌이가 되어보겠다. 그러니, 다들 BMW-T를 이용할 때 기꺼이 귀여운 곰돌이가 되어보자. 가방을 뒤로 맨 거북이가 되었을 때 보다, 서로 눈살 찌푸려지는 상황이 생길 확률이 더 낮아질 것이다. 또 거북이로 돌아갈 땐, 뒤에를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 누군가 내가 휘두르는 가방에 맞을 수도 있다. 서로 곰돌이가 되었을 때 눈이 마주치면 엄지 척을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나의 가방 앞 좌석에 탄 테니스 춘식이. 뒷좌석엔 발리볼 춘식이와 푸바오, 원하는 대로 부적, 치즈냥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