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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sha Mar 25. 2023

별이 된 오란씨




하늘에서 달을 따다~하늘에서 별을 따다~두 손에 담아 드려요오~오오란씨이히~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오! 오,오,오! 오란씨! 오란씨 퐈인~

이 노래가 추억의 광고 10위에 들었다며 순위 차트를 보여주는 티브이 프로그램에 나왔다.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따라 하게 만드는 광고 음악에 나도 모르게 추억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


 내가 5~6살 때였다. 쌍둥이 동생과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손을 맞잡고 심부름을 가다 모르는 길로 빠져 길을 잃어버렸다. 어린 쌍둥이가 아주 용감하게도 길을 꼭 찾겠다며 걷다가 먼 동네까지 가게 된 것이다. 처음엔 혼자가 아니라 그랬는지 전혀 무섭지 않았다. 다만 어둠에 네온사인이 빛을 발하고 있을 즈음 슬슬 엄마한테 혼이 날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또 궁둥짝과 등짝이 남아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몸으로 으스스 느껴질 때쯤 누군가가 우리에게 말을 붙여왔다.


“야들아 너네들 엄마 어디갔노? 와 느그 둘만 이 밤에 돌아다니고 있노?”  누가 말을 시켰는지 머리를 들어보니 경찰 옷을 입은 한 아저씨였다. 순간 겁에 질렸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상대방 아저씨가 경찰이라는 이유로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싶어 짧은 순간에 내 과거를 돌아보았다. 그 단시간에, 동생 과자를 빼앗아 먹은 것, 싸우다 머리칼을 잡아당긴 것, 등등 과거의 잘못들이 줄줄이 한꺼번에 떠올라 “뿌엥~”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경찰 아저씨는 당황하기 시작했고 울지 말라며 우리를 바로 앞에 있는 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알고 보니, 운 좋게도 동생과 나는 경찰서 앞에서 어디로 갈지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기억 속의 경찰서 안은 중앙의 높은 데스크와 벽 앞에 일자로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등받이 없는 시멘트 의자가 벽을 삥 둘러 길게 붙어 있었다. 3면의 벽을 둘러 길게 이어진 시멘트 의자의 끝에는 철창이 있었다. 아마도 경범죄의 사람들을 가두는 곳인 듯했다. 우리 둘은 눈물을 금세 그치고 그 시멘트 의자에 앉아 새어 나오는 소심한 목소리로 우리들의 이름, 그리고 엄마, 아빠 이름을 말씀드리고 눈을 깜빡이며 앉아있었다. 왜 그랬는지 집 전화번호를 외워야 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얼른 집을 알아낼 방법이 없어 그저 앉아 경찰서를 구경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한 아주머니께서 들어오셔서 쨍 강 쨍 강 유리병 부딪치는 소리가 나는 검은 봉지를 데스크 위에 놓았다. 아주머니는 무슨 잘못이라도 한 듯 연신 고개를 숙였다. 어린 우리는 검은 봉지의 유리병이 무엇일까, 또 그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궁금할 뿐, 아주머님의 말소리는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드디어 한 경찰 아저씨가 검은 봉지를 열었다. 봉지 안에는 그 유명한  ‘달 따다 별 따다 두 손에 준다던 오란씨’가 여러 병 들어있었다. 앗, 바로 저거다 저거. 엄마한테 사달라고 그렇게 졸랐건만 엄마는 “천석꾼 만석꾼도 사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사면 금방 망한다.”를 반복하시며 한 번도 사주지 않으셨던 그 음. 료. 수. 동생과 나의 눈은 동시에 커졌다.  그리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슬로비디오처럼 아주머니가 주신 ‘오란씨’는 마개가 '퐁' 하고 열린 후, 컵에 따라져 경찰 아저씨들이 먼저 드시고 몇 개는 병째로 철창 안으로 넣어 주셨다. 동생과 나는 철창 쪽으로 조금씩 조금씩 엉덩이 걸음으로 다가갔다. 철창 안의 아저씨들은 ‘오란씨’에는 관심도 없었고, 그 음료는 오랜 시간 그대로 철창 봉 옆에 외로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는 꿀에 벌이 꼬이듯 계속 다가갔지만 건드릴 수없어  음료수병 앞에서 계속 침만 흘리고 있었다. 그런 우리를 발견한 경찰 아저씨께서는 우리가 짠했는지 허리가 잘록한 베이지색 유리컵 하나에 ‘오란씨’를 담아 우리에게 주셨다.


동생의 손 둘, 내 손 둘. 합이 4개의 손으로 컵 하나를 부여잡고 천천히 서로의 입에 음료를 넣어주며 참 행복하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의 첫 경찰서 경험은 청량하고 달콤했다. 그 맛이 너무 강했던지라 엄마아빠가 우리를 어찌 찾아내서 경찰서로 데리러 오셨는지도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이 글을 쓰는 중에 갑자기 등이 화끈거리는 걸 보니 그때 등짝도 꽤나 맞은 듯하다.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데이트를 하면 상대방이 더 좋아진다고 했나. 길을 잃어 심장이 두근거린 상태에서 만난 청량함이라 그런지 아직도 선명히 기억이 난다. 자매들이 많아서 먹을 것이 항상 부족했던 어린 시절의 옛 음식에 대한 추억은 단지 미각뿐 아니라 오감을 자극한다. 웅성거리던 경찰서 소리, 베이지색 유리컵 안에서 출렁거리던 음료의 움직임, 그 음료의 달달한 향기, 톡톡 튀던 단맛, 놓칠세라 움켜잡았던 유리잔의 느낌. 심지어 등짝의 후끈함까지 곁들여져 실상은 불안했을 내 길 잃은 어린 시절을 달콤함으로 바꾸어 놓았다. 추억은, 하늘에서 달과 별을 딴 것이 아니라 경찰서에서 ‘오란씨’를 따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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