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인 동생과 나, 3살 많은 작은언니와 그보다 3살이 더 많은 큰언니. 이렇게 우리는 네 자매이다. 어찌 보면 나이 차가 비슷하다 보니 나에게 사춘기가 온 무렵, 우습게도 시기가 서로 맞물려 자매들에게도 함께 찾아왔다. 사춘기는 외모부터 시작해서 내면까지 끊임없이 자신을 향한 비판과 열등감의 화살이 날아드는 시기지만, 우리에게는 자신을 겨냥하고 있을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툭하면 입을 옷으로 싸웠다. 왠지 못생긴 내 얼굴에 우울한 표정으로 고민하다가도 입으려던 셔츠가 없어지면 불같이 화를 내며 범인을 물색하러 다녔다. 범인을 찾으면 복수는 당연한 것이었다. 다음날은 내가 언니의 바지를 몰래 꺼내 입고 새벽이슬을 맞으며 학교에 갔다. 신발 사이즈가 아주 조금씩 달라서 신발을 돌아가며 신을 수 없는데도, 새것의 아름다움에 취해 저녁에 날아올 뜨거운 등짝 스매싱의 무서움을 무찌르고 발가락을 구겨가며 새 신을 신고 급히 튀어 나갔다. 옷이든 신발이든 사이즈가 작아서 불편했던 건 그저 승리의 트로피였다.
욕실이 두 개 있었지만, 안방 욕실은 아버지 전용이어서 엄마를 포함한 우리 자매는 거실 욕실을 사용했다. 자연스레 그 욕실은 항상 누군가가 사용 중이었다. 먼저 씻기 위한 욕실 쟁탈전은 일상이 되었다. 욕실에 들어가기만 하면 적어도 2시간을 씻는 작은언니의 탓을 제일 많이 했었다. 덕분에 손에 물을 묻혀 눈곱만 떼고 학교에 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작은언니만 엄마의 외모를 닮고 나머지는 아버지의 외모를 닮아서 작은언니는 은근히 외모 콤플렉스가 생기던 시기였다. 동생과 나는 작은언니가 안 보는 틈을 타 우리보다 못생겨서 오래 씻어야 한다며 뒷담화를 하기도 했었다.
아침잠이 많았던 나는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정신을 차려 양말 찾으면 구멍 안 난 예쁜 아이들은 벌써 팔려 가고, 발가락이 숨을 크게 쉴 수 있는 구멍 난 양말만이 나를 반겨 주었다. 그 구멍을 발가락 사이에 숨기느라 발가락 근육이 자연스레 발달하였었다. 아무 생각 없이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크게 구멍 난 양말을 보고 얼굴이 화끈해지기도 했었다. 주말에 친구를 만나려고 잘 차려입고 ‘오늘 나 어떠냐?’고 언니에게 물어볼라치면 ‘무엇을 걸쳐 입어도 촌스럽다.’며 아무거나 걸치라고 무안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사춘기의 범주에서 자신들을 빼달라고 손사래를 치는 진짜 사춘기들이 4명 함께 살았다.
만만하던 쌍둥이 동생과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서로 머리채도 가끔 휘어잡았으니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볼만했다. 동생과는 주로 이불을 서로 더 덮으려고 하거나 과자나 맛있는 음식을 더 먹으려고 하는 등의 부끄러울 정도로 소소한 이유로 최선을 다하여 싸웠다. 그래서인지 서로에게 던지는 불똥은 아주 작고 조잡해서 마음속에 있는 감정들이 깊어질 틈이 없이 뱉어져 나오다 보니 화해 또한 금방 하게 되었다. 혹시라도 화해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작은언니는 무서운 얼굴로 거실에서 우리를 서로 마주 보게 앉히고서는 각자의 사정을 이야기하게 해서 남은 감정이 없도록 중재자의 역할을 했다. 바로 그 중재자에게 삐딱한 감정이 생기면 쌍둥이 동생과 함께 불만을 토로하며 중재자는 마녀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사춘기를 겪으니 언니와 동생이라는 역할에 더해 서로에게 동지라는 역할, 적이라는 역할, 일침을 가하는 선생의 역할도 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서로를 제일 미워했었고 동시에 서로를 제일 이해했다. 전쟁터의 군인들처럼, 사춘기라는 전쟁터에서 우리는 모두가 라이언 일병이었다. 자신의 마음과 싸우려던 과녁을 서로에게 맞혀두고서 서로를 또는 자신을 구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