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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sha Mar 15. 2023

'내'가 '나'라서 행복한 나라

만학도의 틈새 시선

오늘도 어김없이 지하철 안, 문에 기대어 서서 책을 펴고 예습을 하는 중이다. 오로지 지하철에서만 하는 공부이건만 타인의 시선에서는 세상 이렇게 모범생일 수가 없다. 책과 펜을 들고 열심히 사전을 찾아 꼬부랑글씨아래 한글이나 영어로 뜻을 적고 있다. 더듬거리며 글을 읽어보고 모르는 것들은 선생님께 물어보리라 밑줄도 긋는다. 집에서는 내내 닫혀있던 책이 유독 지하철에서만 이렇게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목적지인 정차역이 가까워 오자 집에서부터 가져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정신을 한 번 더 깨운 뒤  발걸음을 옮겨 딛는다.


 아침마다 프랑스어를 배우러 다닌 지가 벌써 1년. 처음 주변에서는 금방 그만둘 거라고 생각을 했는지 아직도 공부 중이라고 하면 친구들이 놀라기도 하고 어디다 써먹을 거냐며 놀리기도 한다. 프랑스로 대학원을 가고자 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으나 슬프게도 자꾸 꿈이 위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처음은 프랑스어 실력 때문이었고, 다음은 갑자기 오른 프랑스의 학교 학비 때문이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실력만큼은 쌓아 놓아야 썩은 호박이라도 찔러볼 수 있다 싶어 열심히 만학도를 자칭하고 있다.


 그 나라 언어를 배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함께 배우는 것이 문화와 사상이다. 나 또한 자연스럽게 문화와 친근해졌다. 프랑스어 강의 시간을 통해, 자연스레 들으면서 또 경험하면서 여러 가지를 느끼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느낀 프랑스적인 생각과 문화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한 번은 강의 시간에 우리 반에서 같이 공부하는 나와 연령대가 비슷한 학생 A가 프랑스인 선생님께 질문을 했는데, 그 질문은 프랑스에서 좀 알아주는 직업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선생님께서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말해 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A는 프랑스에서 돈을 많이 버는 인기 있는 직업이 무엇이냐고 다시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살짝 당황해하시며 열심히 하면 다 많이 번다고, 너도 나도 원하는 인기 있는 직업보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이 인기 있는 직업이라고 하셨다. 특히 나라에서 젊은이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많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돈을 많이 벌 수 도 있다고 덧붙이시기도 하셨다. 우문현답을 들으며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라 간의 시선이 다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확실히 프랑스의 시선은 남보다 나를 중심으로 한다. 남들이 생각하는 ‘나’ 보다도 내가 원하는 ‘나’를 더 중시한다. 어릴 때부터 프랑스의 부모들은 수많은 대화를 통해 아이들이 자신이 바라는 색이 무엇인지 취향이 무엇인지 성향이 어떤지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가 누구인지 찾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나는 어느 누구와도 같을 수가 없다. 그래서 틀에 박히지 않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많이 배출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어느 날, 프랑스어 수업시간에 같이 공부하시는 어르신 B께서 프랑스인 남자 선생님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분에게 누군가 소개를 해주고 싶다며 지도해 주시는 한국인 선생님께 넌지시 의견을 내비쳤다. 한국인 선생님께서는 놀라며 프랑스인들은 소개팅 자체가 없고 누군가를 소개해준다고 하면 무례할 수 있다고 했다. 보통은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이 정확하므로 자신이 직접 찾는다고 하셨다. 작년에 한 프랑스인 만화가와 대화를 나누었을 때 한국인들이 결혼을 위해 선을 보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한국인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조금은 그 말이 이해가 갔다. 참으로 개개인의 개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나라이다.


 내가 준비하고 있는 언어 레벨 시험만 보더라도 한국과는 많이 다른 형식이다. 한국에서 치고 있는 토익이나 텝스 같은 영어시험과는 다르게 어느 레벨 이상부터는 자신의 생각을 확고하게 펼칠 수 있어야만 점수를 얻을 수 있다. 그에 따르는 타당한 근거 또한 논리적으로 적어야 한다. 그 안에 생각이 없거나, 당연히 주제를 벗어나는 내용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 말 그대로 논술시험이다. 자신의 생각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스스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러므로 모두가 독특한 개개인이 된다. 영화 ‘따뜻한 색 블루’를 보면 고등학생들의 수업시간이 여러 번 등장한다. 주로 책을 읽고 어떤 의도로 그 글을 썼는지 보다 자신이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어떤 글이든 읽고 나면 자신만의 생각이 더해져 또 다른 자신만의 내용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보다 더 여성에게 보수적이던 프랑스가 68 혁명을 거치고 성 관념이 완전히 바뀌면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로운 프랑스식 성문화가 나타났다. 동시에 여성의 권위와 지위가 높아지면서 여성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덕분에 여자는 더욱 여성으로서의 권리와 대우를 받는다. 부인으로서의 인내와 엄마로서의 희생이 아니라 온전한 한 여성으로서 존경받고 대우받는다. 나는 특히 이점이 마음에 들었다. 결혼 후의 일생을 남편과 자식을 위해 바치는 것이 아닌 본인의 삶을 펼치며 살아가는 것 같아 보았다. 게다가 사랑까지 받으며. 당연히 그에 대한 노력도 있어야 하겠지만 언제나 우리나라 엄마들을 응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본받았으면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현재 취업에 목메고 고통스러워하며 결혼율과 출산율의 저조로 인해 위기를 안고 있다. 작은 구멍으로나마 세상을 보는 내 시선일 수도 있겠지만 남들이 보기에 번지르르한 직업 말고 내가 원하는 직업, 남들이 보기에도 멋진 배우자 말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자를 만나 살면 우리나라 행복 지수가 조금이라도 더 높아지지 않을까? 빙산의 일각이라 아직 얼마 안 되는 문화적 차이나 의견을 내 세우기에는 내가 가진 정보나 생각이 어림도 없지만 약간은 부러운 마음이다. 그 나라 언어를 공부하는 처지라 더 좋게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같이 오로지 인스타그램만을 위해 관종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학업과 취업에 억눌려 자존감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프랑스식 사고방식이 가미되었으면 한다. 조금 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며,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온전한 ‘나’를 사랑하기를 바란다. 우리에게는 행복할 권리가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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