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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sha Apr 09. 2023

윷놀이 방정식

네 자매 이야기 2



 봄을 맞이하며 엄마 혼자 계신 집으로 오래간만에 네 딸들이 대청소를 하러 모였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짐을 내려놓고 각자 맡은 구역을 쓸고 닦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큰언니는 본인이 너무나 사랑하는 부엌과 냉장고를 맡았고, 작은언니는 장롱정리와 안 쓰는 옷가지와 물건들 버리기, 셋째인 나는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와 화장실 청소, 막내는 커튼 및  이불 빨래와 베란다 청소를 맡았다. 생각보다 청소가 빨리 진행되어서 점심때가 되었을 때에는 어느 정도 청소가 거의 완료되어 있었다.

“점심 먹고 하자.”

 막내의 말에 모두들 그러자며 거실 중앙에 둘러앉았다. 청소하는 날은 무조건 짜장면이라며 내가 휴대폰 배달 어플로 검색을 하던 중 막내가 느닷없이 윷을 바닥에 펼쳤다. “점심값 내기 한 판할까? 어때?” 청소를 하면서 찾았다며 내기를 제안하자 모두들 수긍하며 한 마디씩 던졌다. “좋지. 오래간만에 짜장면 좀  얻어먹을까?” 큰 언니 말에,  “누구 맘대로? 나는 내기에 져 본 적이 없거든~.” 작은 언니가 거들었다.



“그러면 윷놀이 판을 하나 그려야겠네.”

나는 버리려던 큰 달력을 뒤집어 윷판을 대충 그리고 장식대에서 윷놀이 말들을 하나씩 골랐다. “출발점에서 2바퀴씩 먼저 돌고 마지막 남은 사람이 짜장면 쏘는 거다!” “콜! 콜!” “윷 하나에 뒷도 표시되어 있는지 확인해 봐.” “어. 되어있네. 뒷도가 없으면 재미없지.” 윷 하나의 뒤에 X자를 그려 넣은 것을 확인하고서 부릉부릉. 다들 시동이 걸렸다.

만국 공통 묵찌빠로 순서를 정한 뒤 말을 일렬로 줄을 세웠다. 막내가 1번 타자로 다음은 작은언니, 큰언니, 나의 순서였다. 후두둑. “헉! 이게 머고? 벌써 사기를 치나?” “아싸~이게 웬 떡이고.” 막내가 던진  윷은 뒷도의 자태를 드러내며 누워 있었다. 뒷도가 첫 시도에서 나오면 말이 윷판 한 바퀴를 돈 것으로 치기 때문에 막내는 첫 시도에서 벌써 한 바퀴를 얻은 셈이었다.


“뭔데? 시집도 부잣집으로 잘 가더니 뭘 해도 될 사람은 되는 가베. 쳇.” 작은 언니는 볼멘소리를 하며 윷을 날렸다. 도, 개, 걸, 윷, 모! ‘모’다. “우와. 이렇게 진도 빨리 빼기 있나? 어릴 때부터 공부도 잘 하드만 진도도 빨리 빼네.” 내 말에 “ 얼른 윷 내놔 바라. 내 차례다.”


큰언니가 윷을 받아 들었다. 결과는 '도'. “껄껄껄.” “웃지 말지. 니꺼 잘 나오나 한 번 보자.” 내 웃음에 큰언니가 도끼눈을 뜨며 말한다. “아니, 처음부터 윷이 너무 우리를 표현하는 것 같아서. 하하하하.” “그래 내는 둘째보다 공부 못했다. 인정!! 됐나? 그만 웃고 던지기나 하시지?”


후두둑. 도! 큰언니가 기겁했다. “뭐고? 딸랑 한 칸 움직였는 데 따라 잡힌 거가?” “아이고 배야! 초장부터 웃겨 죽겠네. 언니는 처음부터 다시!” 내가 윷을 막내에게 건네주며 말한다. 말이 따라 잡히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우리 동네 규칙을 따른 것이다. “어릴 때부터 주야장천 큰언니 패션을 따라 하더니만 이제는 윷놀이도 따라 하나?” 막내가 윷을 던지며 내게 말했다. 막내의 결과도 '도'! “파하하. 지도 맨날 큰언니 화장품 따라서 사더니만 니도 어디 못 가네.” 내가 배꼽을 잡는다. “바보야. 니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막내가 작은언니에게 윷을 건네며 내게 말했다.


 작은 언니는 빨리빨리 하자며 윷을 날렸다. 후둑. 또다. 또 ‘모‘가 나왔다. “역시 실속파. 바닥에 떨어진 돈도 자기돈 아니면 절대 안 줍더니 요행 없이 혼자서 잘도 가네.” 큰언니가 떨어진 윷을 모으며 말한다. “이번에는 나도 간다!” 주문을 외우듯 큰소리로 외치며 윷을 던진다. 도! 또 ’도‘가 나왔다. “이거, 이거 ’도‘가 지나친 거 아니가?” 나는 배꼽을 잡으며 큰언니를 놀려 댔다.


씩씩 거리는 큰언니를 뒤로 하고 후두둑. 윷을 던졌다. 걸! 내 말을 상쾌하게 움직이며 3칸 이동한다. “오, 게다가 지름길이다. 역시 나는 운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어.” 내가 신나서 윷을 막내에게 넘겼다. “그래 가 운이 많이 좋지. 옛날에 당연히 못 간다고 생각했던 어학연수도 기적적으로 간 걸 보면.” 동생이 말했다. “글체? 돈 없어서 당연히 못 간다고 생각했는데, 아빠가 갑자기 목돈 벌어 와서 완전 로또였지.” 내가 거들었다.


후두둑. 막내의 ’모‘에 “운은 네가 좋은 거 아닌가요, 전원주택 사모님? 게다가 지름길로 바로 내려오는데?” 시샘 어린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투둑. 배가 고픈 작은언니가 말없이 다음 윷을 던졌다. 모! 순간 모두가 조용하다. 또 ’모‘가 나왔다. “역시 승승장구하던 사람은 윷놀이도 시원하게 하는구나.” “윷놀이도 '놀이'라기보다는 '두뇌 싸움' 인거지. 암만.” 막내와 작은 언니의 대화다. “이 상황에서 저런 말만 안 하면 정말 똑똑한 거지.” 큰언니 말에 모두가 깔깔 거린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윷을 던지는 게 우리 살아온 인생이랑 자꾸 빗대어지네. 좋은 것이든 힘들었던 것이든 간에 윷놀이하는 거랑 우리 인생이랑 비슷하게 굴러가는 것 같네.”

 내 말에, “ 윷놀이처럼 한판에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게 다른 점이겠지?” 막내가 덧붙인다. “ 다음 라운드의 결과를 알 수 없다는 점도 다른 점이고요.” 큰언니가 더한다. “근데 우리 짜장면은 시키고 이러고 있는 거 맞나?” 작은언니 말에 “ 뭐? 시키고 시작한 거 아니었어? 빨리 주문하고 다시 하자!” 배고픈 목소리로 큰언니가 말한다. 결국 주문을 하고 난 후 계속된 윷놀이의 패자는 내가 되었고 이때다 싶어 막내는 탕수육을 추가 주문했다.


그  탕수육을 양념에 콕콕 찍어 먹으며 생각했다. 이 ‘새옹지마’ 같은 네 딸들의 인생이 윷놀이 방정식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결과도 알 수 없고,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조금 다행인 것은 윷놀이 판처럼 한 바퀴로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말을 타고 다음 수를 기다린다. 도, 개, 걸, 윷, 모, 뒷도까지. 이번에 져서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다음 라운드에서 지치지 않기 위해, 나아갈 힘을 얻기 위해 이번 판을 양분으로 삼아 본다. 나와 비슷한 다른 말들이 내 인생에 함께해서 외롭지 않아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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