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향은 향긋하다. 달콤하면서 시큼하며 은은하면서 강하다. 냄새를 맡을수록 정겹다. 어쩜 이리도 좋을까.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다. 사과 자체의 향이 좋아서 기분이 좋은 걸까, 사과를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어 사과향이 좋은 걸까? 아니면, 두 가지 다인가?
사과는 내 일상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밥을 먹듯 일상적이다. 내가 가진 사과의 기억. 사과가 가진 내 추억. 나는 그동안 사과를 먹은 것이었을까 추억을 먹은 것이었을까? 사과 향이 좋아서 먹었지만 맛있었다는 기억이 더 커졌을 수도 있고, 맛있어서 자주 먹었지만 맛있는 향이 더 기억에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무엇이 먼저인지, 어느 것이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사과향이 가지고 있는 그 기억과 행복했던 추억만이 중요하다.
우리는 살면서 추억 또는 기억을 일상의 물건이나 행동, 또는 사람 속에 녹여가며 살고 있다. 추억이 있는 일기, 어릴 적 학교 친구들, 지금의 가족까지. 나는 나의 일부가 되고 내 친구들의 일부가 되고, 가족의 일부가 되고, 또 내가 먹는 사과의 일부도 된다. 물건, 행동, 사람. 서로가 서로의 일부가 되어 따로 떨어져서는 기억도 추억도 없다.
사과가 내는 향은 사과자체의 향이기도 하겠지만 내 기억과 추억의 향이기도 하다. 사과향이 향기롭다는 것은 내가 가진 추억의 향이 향기롭다는 것이다. 사과 향에 쓰라린 기억을 담은 사람은 결코 사과 향이 좋지 못할 것이다.
내 주변에는 사과 향처럼 향기로운 것들이 많다. 좋은 추억을 담고 좋은 향을 풍기며 나의 일상에 오래도록 자리 잡고 있다. 설사 그것이 지금은 필요 없다 하더러도 내 기억의 일부를 쉬이 버리기엔 마음이 안타깝다.
노력과 인내의 향은 작지만 더욱 진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사과 하나가 먹기 좋은 열매로 좋은 향을 내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 같다. 내 주변사람들과 물건들이 나의 향기로운 일부이듯 나도 진하고 향기로운 일부가 되려면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듯이.
사과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어본다. 달콤하고 향긋한 향에 혀까지 즐겁다. 그 맛에 흥분되어 나도 모르게 빨리 씹어 삼킨다. 그리고 또다시 베어 문다. 이번에는 천천히 음미하리라 다짐하면서. 맛과 향을 내는 데도 인내가 필요하겠지만 그것을 느끼는데도 인내가 필요하다. 그 인내의 향이 사과의 것인지 내 기분의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즐겁다. 입과 혀, 마음까지 즐거워지는 이런 인내라면 매일 기분 좋게 견딜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