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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ish Jun 30. 2018

잃어버린 10년 (feat.야구)

선택의 자유에서 방황하는 인간

몸이 게으른 나는 스포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은 수영과 자전거 타기 정도이다 (저녁에 가끔 따릉이를 타는 것을 운동으로 쳐준다면 말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귀찮아 운동을 싫어한다면, 보는 것은 좋아할 수 있을 법도 한데, 아니다. 나는 보는 것이 하는 것보다 더 버겁다.

냅다 빨리 달리는 것이 룰인 육상이나, 점수 싸움인 피겨 스케이팅, 표적판의 중앙을 노리며 쏘는 양궁과 같이, 게임의 룰을 배우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경기는 그나마 낫지만, 테니스, 야구, 골프와 같은 스포츠에는 영 흥미가 없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이 국가대항전이어야 "나의 조국"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경기 중간중간에 TV 중계를 보면서 경기가 풀리는 양상을 체크할 정도였다. 우리나라가 이기고 있으면 기뻤고, 우리나라가 밀리고 있으면 아쉬웠으나 다 그때뿐이었다.


룰이고 뭐고 멍때리는 게 최고다 (출처: 효리네민박)


우리 집에서 스포츠를 즐겨 보는 사람은 아빠뿐이었다. 축구, 야구, 테니스, 골프, 배구 등 아빠는 여러 스포츠 중계를 가리지 않고 봤다. 아빠의 스포츠 사랑은 내게는 그다지 달갑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TV 채널 결정권을 아빠가 쥐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요일 오후, TV 앞에 누워 느긋하게 가요 프로그램이나 버라이어티 프로가 보고 싶은데 아빠는 자꾸 야구 중계만 보았다.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에 채널을 바꿔 놓아도 아빠는 리모컨을 빼앗아 다시 채널을 야구 중계에 맞췄다.

리모컨을 빼앗은 아빠를 보고 "다른 거 보고 싶다고요"라고 말해도 나의 의견은 가볍게 묵살되었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엄마도, 야구만 보는 아빠에게  딱히 볼멘소리를 내지 않았고, 언니는 이미 포기한 듯 TV를 보는 기쁨을, 인터넷을 하는 기쁨으로 대체하였다. 최소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그것이 알고 싶어 한숨을 폭 쉬고 나는 약간은 짜증스럽게 물었다.
 
"아. 그럼 언제 끝나요?"

"모르지 그건. 9회까지 해야지."

"한 회에 몇 분씩 하는데요."

"안 정해져 있어."

"네???? 지금 몇 회인데요?"

"지금 4회"

놀라움에 입이 턱 하고 벌어졌을 때, "이닝 종료!"라는 캐스터의 말이 귀에 꽂혔다.

"이제 5회예요? 잠깐, 4회 끝났으니까 오, 육, 칠, 팔, 구. 이제 다섯 번만 더 하면 끝나요?"
나는 어린아이처럼 손가락을 하나하나를 접으며 앞으로 남은 이닝을 헤아려봤다.

"아니. 이제 4회 말."

"방금 4회 끝났다면서요."

"팀마다 하나씩 가져가. 앞에 하면 4회 초, 뒤에 하면 4회 말."

뭔 소리야. 아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분명 한국어인데 그 의미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4회가 끝났는데 또 4회라니. 아~ 정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스포츠다. 정말이지 맘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스포츠다.  

경기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야구는 내게 그냥 길~~~~~~~고 지루한 스포츠였다. (출처: 아빠 어디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야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 이놈의 야구는 한번 시작하면 왜 끝날 생각을 안 하는 건지. 왜 야구 중계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하는 것 같은지. 왜 야구 선수들은 다른 운동선수들과 달리 몸이 저렇게 둔해 보이는 건지. 왜 저 사람은 허공에 스윙을 세 번 하고 그냥 돌아가는 건지. 왜 갑자기 떼로 달려들어 싸우는 건지. 방송국 놈들은 왜 야구 중계를 핑계로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멋대로 결방시키는 건지.

일주일을 기다린 드라마가 야구 경기의 연장(아마도 국가대항전)을 이유로 느닷없이 취소되었을 때, 나는 정말 야구가 미웠다. 뛰어난 작품성과 배우들의 호연으로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드라마를 제쳐두고 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저런 스포츠를 끝까지 방영하기를 선택하는지 이해가 잘 되질 않았다. 야구 중계를 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우리 집만 해도 7할 5푼의 비율로 야구 말고 다른 것을 보기 원하고 있지 않은가?



규칙은커녕, 스트라이크니 볼이니 하는 기본적인 용어에도 무지했던 내가 처음으로 야구 경기를 제대로 본 것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었다. 그날은 온 가족이 모인 날이었는데 고깃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우리 집안의 남자들은 야구 중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고기를 굽다가도 벽에 매달려 있는 TV 화면을 쳐다보고 환호하기도 했고 탄식을 하기도 했다. 물론 욕도 나왔다. 서비스로 제공되는 시원한 물냉면까지 먹었음에도 양 팀은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다행히 고깃집에서 우리 집까지 걸어서 5분 거리라 우리는 이닝이 끝나고 광고가 나오는 틈을 타 우리 집으로 빠르게 이동해 다 같이 야구 중계를 봤다. 이례적으로 나도 그 자리에 껴서 경기가 끝날 때까지 지켜봤는데 그것은 아마도 절대로 져서는 안 되는 경기, "한일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경기를 보며 나는 야구의 룰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는데, "공이 담장을 넘어갑니다!!!!!!!!!"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캐스터의 흥분지수를 보아하니 "홈런"이란 것이 제일 좋은 듯하고, "볼입니다"와 "스트라이크!"를 말하는 캐스터의 목소리의 온도차를 보아하니 볼보다는 스트라이크가 나은 것 같았다. 타자들이 투수가 던진 공을 맞혀서 친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라 타격 후 그라운드에 한 번 떨어져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대략적인 룰을 이해하니 야구가 전처럼 지루하지 않았다. 한국의 선수들이 잘 해주니 더 흥이 났다. 결국 그날의 경기는 5:3으로 승리를 거뒀고 한국 팀은 대만과 쿠바를 상대로 연승을 뽑아내며 베이징 올림픽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쿠바 전 때의 그 쫄깃함이란. 가슴을 쓸어내린 순간들이 지나 마침내 우승이 확정되었을 때, 나는 사람들이 왜 야구를 보는 심리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2008년 올림픽에서 한국은 야구 종목 금메달을 땄다. (출처: 한국일보)


그 후로도 오랫동안 야구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지 않았다. 야구에 흥미를 붙이려면 응원하는 팀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정규리그에 어떤 팀이 있는지도 몰랐고 어느 팀을 좋아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국가대항전이야 내 나라를 응원하면 되지만, 내가 정서적으로 소속감을 가지고 응원할 수 있는 팀은 무슨 팀일까. 그냥 잘하는 팀을 응원하면 되는 건가 싶었는데 연고지에 따라 특정 팀을 응원하는 것이 암묵적인 룰인 것 같았다. 물론 대세를 거스르는 것은 자유지만, 개중에는 응원하는 팀을 보고 그 사람의 출신지를 멋대로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역주의는 야구에도 세력을 뻗친 모양이었다. 나는 출생은 서울이고 유년시절을 보낸 곳은 경기도 부천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 다시 서울로 왔으니 내 연고지는 서울인 셈인가. 좋다. 그럼 서울에 홈구장이 있는 팀을 응원해보자. 그러나 이게 웬걸, 팀이 세 개나 되었다. 한 팀만 있었으면, 서울 시민의 프라이드를 가지고 고민할 것도 없이, 마음을 주기가 수월했을 텐데 인구가 많아서 그런지 야구팀도 세 개나 되었다. 에이 정말. 즐겨보려고 했더니 뭐 이렇게 신경 쓸 게 많아. 야구에 정 붙여 보려는 첫 번째 시도는 그렇게 좌절됐다.


8개의 선택지가 주어졌지만, 나는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했다.




몸이 게을러서 생각까지도 게을러진 것일까. 나에게 세 개의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나는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고민하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곰과 쌍둥이, 영웅 사이에서 (혹은 8개의 팀 중에서) 나는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했다. 하나를 선택하고자 하면, 다른 것이 근사해 보였고, 어느 날에는 셋 다 고만고만해 보였다. 무엇이든 결정할 수 있었는데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가이드라인 없이 무제한의 자유가 허락이 되었을 때, 사람은 당황한다. 진정 자유해도 되는 것일까 의문이 들기 시작하며, 나의 판단과 기분 내킴에 따라 A를 선택한 나의 이성이 어쩐지 미덥지가 않다. 자신이 얼마나 특출 날 것 없는, 보통의 존재인지는 모름지기 본인이 제일 잘 아는 법이다. 자신의 이성에 온전히 기대지 못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기 시작한다. 선택지에 대한 타인들의 견해가 갑자기 궁금하다. 그렇게 모여진 여러 의견 중 평균값을 구해 우리는 그것을 "긍정"의 범주에 분류할 것인지, "부정"의 범주에 분류할 것인지 결정한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결론은 어쩐지 안도감을 준다. 주류에 속한다는 것은 그런 안도감을 주는 것이다. 주류에 속함으로써 당신은 든든한 아군들을 얻을 수도 있고, 꽤 끈끈한 유대감과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은폐하기도 용이하다. 1루 응원석에 원정팀 유니폼을 입고 있어봐라.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카메라에도 잘 잡힌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고른 선택이 정말 온전한 내 선택이라 말할 수 있을까. 외부에 의해 은연중에 주어진, 때로는 강요된 "보기" 혹은 이미 마킹이 되어있는 "답안지"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사실, 그것이 "내가 한 결정" 이건 "이미 정답 체크가 되어있는 보기" 이건 본인이 그 결정의 결과와 부산물들을 책임감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만에 하나, 선택의 결과가 나의 최소한의 기대치에 상응하지 않을 때, 우리는 이런 말을 하기가 쉽다.

"뭐야. 두산 잘한다더니 스윕 당했잖아." 라거나  "넥센 홈구장이 국내 최초 돔구장이라 직관하기 좋다고 하더니, 날씨 영향받지 않는 거 말고 좋은 게 없잖아. 의자 간격 왜 이렇게 좁아?"





비단, 야구만의 일일까. 취업이 잘 된다 하여 선택한 전공이 자신의 적성이 맞지 않아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는 청춘들. 세간에서 좋다 하는 대기업에 입사하고 나서도 보람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 조기유학의 열풍에 휩쓸려 외국으로 떠났다가 학업을 마치고 정착하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자리를 비운 새 바뀐 한국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 "정도(正道)"라고 믿었던 것들이 흔들려 방황하고, 무너지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좌절의 크기가 클수록 비난의 방향, 책임의 방향이 외부 쪽으로 흐르기 쉽다. 남 탓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세상 억울해진다. '당신과 당신의 말을 믿었는데 지금 이게 뭐냐'라며 따져 묻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누가 내 말대로 하래? 네 생각대로 했으면 됐잖아"라고 말을 들으면 정말 할 말이 없다. 슬프지만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말이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미치기를 원하지만, 그 후에 일까지는 책임지려 하지 않는 비정한 세상에 산다. 억울하지만 그것을 호소해봤자, 더 현명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난이 돌아올 뿐이다. 결국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는 게 보편적인 생각이다.  

자신이 신념과 가치관에 따른, 자신이 수긍하고 납득할 수 있는 근거에 기반을 둔 선택을 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선택에 따른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억울함에 복장이 터지는 일은 없다. 인간이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은 우리가 "자신의 잘못"을 너무 오래, 너무 길게 나 자신을 자책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타인, 환경, 구조 등 외부로 그 비난의 화살을 겨누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능동적으로 한 나의 선택"은 "남 탓"의 여지를 확 줄여준다. 남 탓을 할 수도 없고, 나의 자아도 보호해야 하므로 보다 이미 일어난 일에 오래 매어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좌절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구조의 부조리함을 비판하지 말자는 의미가 아니다. 외부의 탓만 하느라 그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타인의 조언을 받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잘못된 것은 "사고의 과정"이 없고, 나의 신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따져 묻고 확인하는 과정이 생략된 맹목적 수용이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제대로 된 훈련을 거의 받지 못하고 성장하였는데, 그래서 "온전히 내가 결정해야 하는 선택"이 주어졌을 때, 선택이 갑자기 부담스러워지며, 선택의 자유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한다. 내 일은 내가 결정하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내가 결정하고 싶지 않은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그 일이 있고 몇 년이 지난 올해, 나는 마침내 응원팀을 정했다 - 그것은 내 연고지와 관련이 없는 선택이었으며, 온전히 내가 생각하고 내린 나의 결정이었다. 스트라이크와 타구 하나에 울고 웃고, 아웃카운트 하나에 맘 졸이며 인생에서 처음으로 매일매일 야구를 보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야구 경기가 없는 월요일이 그렇게 싫다.) "선택의 자유"를 부담스러워할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잘 누렸다면 이 재미를 좀 더 일찍 알았지 않았을까. 잃어버린 10년이 야속하다. 아우 정말, 생각할수록 아까워 죽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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