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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ish Mar 04. 2020

나의 꿈은 당신의 안주가 아닙니다.

꼭 말을 해야겠다면, 좀 더 진지한 맥락에서 다뤄주시죠.

출처 : Unsplash

나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나는 굉장히 프라이빗한 사람이다. 타인이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나 불만은 없지만, 남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타고난 성격이 속내를 말로 드러내지 않는 타입인 것 같다. 만약 내가 내밀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했다면, 그건 그 사람을 아주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속을 보일만큼 신뢰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들 전부와 모든 이야기를 똑같이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청자와 나의 관계, 현재 각자가 처한 상황, 자라온 환경, 가치관, 인연이 시작된 시점과 장소, 가까워지게 된 계기 등 여러 가지 이유에 따라서 어떤 이야기는 하지만, 어떤 이야기는 함구한다.


나는 타인과의 갈등, 가정의 문제,  경제적 어려움, 직장에서 느끼는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고민, 낮아진 자존감, 스스로에 대한 실망 등 나의 마음을 총요하게 휘젓는 수많은 생각들을 아주 소수의 사람들과, 부분적으로 나눈다. 가령, 엄마에게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직장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다. 친언니에게는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때만은 그것에 대해 털어놓지 못한다. 곤란함에서 벗어난 후에야 "사실은 이랬어"라고 때늦은 고백으로 대신 한다. 존경하는 선배에게는 가정의 문제를 알려줄 수 없고, 직장 동료에게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드러낼 수 없다. 그 이유가 상대에 대한 배려이건, 알량한 자존심이건, 나 스스로 느끼는 부끄러움이건, 나는 나를 드러내는 일에 소극적인 사람이다.




그중에서 나는 "나의 꿈 (실현시키고 싶은 이상)"을 밝히는 것에 가장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데. 그렇게 된 계기는 십여 년 전 아버지와 나눈 대화에 있다. 20대 초반, 나는 외국에 있었고, 현지 대학교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현지 대학 진학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당시만 해도 가고 싶은 대학, 하고 싶은 전공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던 때였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고,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었다. 비싼 국제 통화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한참을 뜸을 들이다 아주 어렵게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나의 꿈을 아버지에게 처음 털어놓았다. 아버지의 반응은 잔혹하고도 단호했다. 


너는 글을 쓸만한 사람이 아니야.


"너는 글을 쓸만한 사람이 아니야. 작가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야 하는 줄 아니?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 줄 알아? 작가는 너와 맞지 않아."


아버지의 말은 상처가 되었다. (출처 : Unsplash)


그 말이 어찌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 나는 그 날 내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밤하늘의 모습은 어땠는지, 어느 난간에 기대어 있었는지, 사용했던 핸드폰의 기종은 어떻게 생겼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생생히 기억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버지 역시,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갖지 못해 괴로워했고 내면적으로 불안정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판단의 허점이나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며 그런 자신감의 결핍을 채워야 했던 것이라고, 그도 아주 연약한 사람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하지만, 스무 살의 나는 너무 쉽게 그의 말을 믿었다. 어찌 그러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는 인생의 선배였고, 나의 부모였다. 나는 그의 평가에 과도한 권위를 부여했고, 그로 인해 나는 아주 오랫동안 감히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글 쓸 용기를 내지 못하고, 십 년을 허비한 후에야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싶다"라는 꿈을 꾸는 중이다. 글로 밥벌이는 못할지라도, 꼭 업이 아니더라도 계속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꿈을. 오랜 망설임 끝에 "글을 쓰겠노라"는 결심을 한 이후 매일 조금씩 글을 썼고, 결국 운 좋게 브런치 작가가 되어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작가"라는 나의 꿈을 밝히는 것이 조심스럽다. 작문에 대한 나의 오랜 열망은 오직 측근 중에서도 아주 극소수만 알고 있으며, 자주 만나며 왕래하는 친구들 중에서도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많다.  


글쓰기는 오랜 꿈이었다. (출처 : Unsplah)


그런데, 어쩌다 이것을 나의 상사 A에게 털어놓게 되었다. 점심식사를 하고 난 후, 커피를 함께 마시며 대화를 하다 보니 인생의 목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A가 먼저 자신의 원대한 꿈에 대해 말해주었다.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A의 꿈과 그것을 당당하게 밝히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A는 자신의 꿈에 확실한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말로 그런 사람이 될 것이라는 그 한치의 의심 없음이 듣는 사람한테까지 전달될 정도였다. 자신의 꿈에 대해 열정에 찬 그의 스피치가 한참 이어지고 난 뒤, 그는 나에게 무엇이 하고 싶냐고 물었다. 그의 질문에 십여 년 전 아버지의 대답이 떠올라 잠시 망설임이 일었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대놓고 면박이야 주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 의문형의 문장"은 나의 상처와 직결되어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오랜 시간 봐왔고, 그는 타인을 존중하고 예의가 바른 성품의 사람이었다. 이 사람에게는 말해도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런 마음이 들었다고 해서 갑자기 아무렇지 않게 툭- 하니 공개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한참을 부끄러워하며 망설이다가 아주 어렵게 나의 꿈을 밝혔다.


"원래 잘 말 안 하는 건데....."


"에이 뭔데요?"


"내 주제에 라는 생각도 있고.........."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당당하게 말해보세요. 꿈인데 어때요."


"저는 사실............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죽기 전에 책 한 권 내는 게 소원이에요."


"책 내면 되죠! Sweetish씨는 할 수 있어요."


"조금 부끄럽고, 실제로 이루기 전까지는 주변 사람들이 아는 거 싫어해서 잘 얘기 안 하는데 어렵게 말씀드린 거예요. 제가 오늘 이 얘기를 A님에게 할 줄은 몰랐네요."


"잘 어울리는데. 좀 더 자신감을 가져요!"


"하하. 감사합니다. A님도 꿈을 이루실 수 있어요! 나중에 저 모르는 척하기 없깁니다!"


나의 꿈과 관련된 그와의 에피소드가 그렇게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아름답고 훈훈하게 마무리를 가졌다면 좋았으련만. 현실을 그렇지 못했다.






그 일이 있고, 2년 후, A와 나는 거래처 사람들과 저녁식사 자리를 갖게 되었다. 바이어를 접대하는 중요한 자리였던 만큼 A는 술 먹는 속도와 양을 조절하지 못하고 상대가 권하는 술을 다 받아 마셨다. 그는 말이 많아졌고, 목소리와 제스처가 평소보다 두 배는 커졌다. 술에 취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결례를 범할 정도의 수준은 아녔기에, 나는 그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을 하면, 원래 그가 의도했을 문장으로 수정해서 다시 말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조용히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평소의 그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지만,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고, 술자리라는 상황의 특성상 약간의 무례함은 "술탓"으로 어느 정도 용인이 되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던 중 갑자기 그가 나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주된 내용은 나의 업무능력과 조용한 성품에 대한 칭찬이었다. 그렇게 나의 칭찬을 이어가던 그가 갑자기 느닷없이 나의 꿈을 공개해버렸다.


그걸 여기서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출처 : 세바퀴 캡처)


"Sweetish씨는 글을 쓰고 싶어 해요."


"아 그래요? 역시 문학을 전공했으니까. 어떤 글 쓰고 싶어요? 소설? 에세이?"


참고로 난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나의 전공을 말했을 때 (영어영미문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듯, 바이어 역시 영어영미문화라는 내 전공을 듣고 영문학으로 오단했을 뿐이었다. 특이한 전공 탓에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둘 다 좋아합니다.”


"오오 대단하네. 멋져요."


멋지다는 칭찬과 격려로 그 주제에 관한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되었지만, 갑작스러운 나의 꿈 아웃팅에 나는 당황스러웠고, 몹시 불쾌했다. 거래처 사람들에 대한 호감과는 별개로 나는 나의 꿈을 그들과 공유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알고 지낸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었다. 나에게 "글"은 동경의 대상이었고, "글 쓰는 행위"는 지극히 이상적이어서 나 스스로도 그 꿈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이제 세 번 만난 사람에게 이렇게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필히 나의 꿈이 알려져야 한다면, 조금 더 진지한 맥락에서였으면 싶었다.


내가 신성시 여겨온 “글쓰기”에 대한 나의 꿈은 그렇게 술자리에서 안주처럼 질겅질겅 씹히고 소비되었다.


그의 의도 자체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는 경우 없거나 사악한 사람이 아니었고, 문제의 그 발언 역시 미주알고주알 계속된 내 칭찬 뒤에 이어진 말이었다. 아마도 상사로서 나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겠지만, 그의 의도가 얼마나 좋았는지와는 무관하게 나는 그의 그 선의적인 아웃팅에 일종의 모욕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에게도 아주 어렵게 꺼냈던 이야기였고, 분명 말했을 당시 "이루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밝히는 것을 꺼려한다"라고 밝혔음에도, 신뢰하던 사람에 의해 내던져진 꿈이 그렇게 술자리 가십처럼 소비되는 것을 나는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그 일은 견딜 수 없이 서글픈 일이었다.




그날의 일은 나에게 다시 한번 상처가 되었다. (출처 : Unsplash)


누군가에게는 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으로 넘길 수 있는 일이겠지만, 천성이 “프라이빗한 나”에게 그것은 별안간 닥친 재난과도 같았다. 그날의 그 대화가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로 인해 내가 얼마나 애성이 났는지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일에 뭘 그리 유난을 떠냐며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 소중해 감히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었던 꿈에 A가 보인 태도는 경솔했고 무신경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제 십여 년 전과는 다른 듯 비슷한 이유로 다시 내 주변 사람들에게 "글을 쓰고 싶다"라고 말하는 것을 더욱 삼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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