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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Nov 13. 2023

다시 한번 마블에게 기대를, <더 마블스>

뱅글에서 찾은 멀티버스 사가의 큰 그림

*본 글에는 <더 마블스>를 비롯한 MCU 작품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들 하지만, 그 시절 온 세계를 물들였던 마블의 찬란함은 정말 언제까지라도 이어질 것만 같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불문하고 매대를 가득 채웠던 콜라보 상품들은 물론이요, 드넓은 유튜브 속 마블 콘텐츠의 총량은 아무리 스크롤을 내려봐도 끝이 없을 정도였다. 누군가는 원작과의 비교를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작품을 분석했고, 또 누군가는 숨겨진 이스터 에그를 찾아내며 마블이 그려나갈 큰 그림을 예측했다. 당시의 마블 작품들은 한 편의 영화로서뿐만 아니라 새로운 콘텐츠의 원천으로서도 기능하며 마치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이 우리네 세상을 슈퍼히어로들로 채워갔다.


절대다수가 환호하던 시절이 지나 이제는 ‘호불호’라는 표현 없이 마블 작품을 논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하지만 그렇게 평가가 엇갈리는 와중에도 어느 정도의 화제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라는 거대한 틀에 아직은 기대의 여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그것은 미리 제목이 공개된 <어벤져스> 시리즈의 후속일 수도 있겠고, 합류가 코앞으로 다가온 엑스맨이나 판타스틱 포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 이번에는 캐럴 댄버스에 집중했던 지난 글과 달리, MCU 속에서 <더 마블스>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또 다음을 위해 무엇을 남겼는지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상상을 풀어보고자 한다.



영화 <더 마블스>는 2019년 작 <캡틴 마블>의 후속 격인 작품이지만, 사실 이야기 속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캐릭터는 다름 아닌 카말라 칸, 즉 미즈 마블이다. 물론 <더 마블스>가 해당 캐릭터의 스크린 데뷔작이라는 점에서도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하겠지만, 드라마 <미즈 마블>에서 끝맺지 못한 이야기가 이번 작을 통해 이어졌다는 점에서도 우리는 그에게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마치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속 팔찌 ‘텐 링즈’와 같이, 카말라가 받은 ‘뱅글’ 또한 데뷔작인 드라마에서는 그리 많은 정보가 밝혀지지 않았었다. <더 마블스> 이전까지 우리가 알 수 있던 정보라고는, 그것이 착용자의 잠재 능력을 깨어나게 한다는 것, 다른 시공간으로의 이동을 가능케 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양팔에 착용되게끔 한 쌍으로 존재한다는 것뿐이었다.


다행히도 아직 재등장이 한참 남은 샹치와는 달리 미즈 마블은 재빠르게 <더 마블스>로 이어져, 본작에서 뱅글에 관한 추가적 정보들을 기대할 수 있었다. 물론 드라마 속에서 밝혀진 뱅글의 이전 사용자가 캡틴 마블과는 떼어놓을 수 없는 크리 종족이었던 만큼, 또 원작의 초대 캡틴인 마-벨 역시 뱅글과 유사한 ‘밴드’를 착용했던 만큼, 캡틴 마블과의 팀업을 통해 뱅글의 진실이 드러날 것은 어느 정도 확실시되어 있었다.


캡틴 마-벨


이윽고 성사된 미즈 마블과 캡틴 마블의 만남에서, 카말라의 뱅글을 본 캐럴은 그것을 크리 신화 속 ‘퀀텀 밴드’라 칭하였다. 한편으로는 다소 남발되는 것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그만큼 마블 세계관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단어 ‘퀀텀(양자)’이 쓰였기에, 우리는 이 뱅글을 통해 수많은 연결점들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원작의 설정들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또 MCU 속 다른 작품들과는 어떻게 이어지는지. 연계되는 작품 수는 늘어감에도 왜인지 한데 모이지 않던 멀티버스 사가의 작품들을, 양자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묶어볼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앤트맨과 와스프> 시리즈에서 주 무대로 등장한 퀀텀 렐름, 다시 말해 양자 영역일 테다. 본래 MCU의 양자 영역은 아원자의 크기로 작아져야 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원작의 마이크로버스를 연상케 하지만, 아쉽게도 마블은 판권 문제로 인해 그 명칭을 사용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아원자 세계를 명명하기 위해 ‘에너지양의 최소 단위’를 뜻하는 양자라는 용어를 끌어왔고, 그 결과 양자 영역은 마이크로버스만이 아니라 코믹스의 퀀텀 존까지도 떠오르게 하는 복합적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코믹스 속 마이크로버스(좌)와 퀀텀 존(우)


나름 직관적 이름을 지닌 마이크로버스와 달리 퀀텀 존은 그 이름부터 다소간 막연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간단히 설명하고 지나가자면 원작에서 퀀텀 존은 마블 세계관 속 모든 실제 에너지의 기원이 되는 곳인데,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름을 통해 유추할 수 있듯, 다름 아닌 퀀텀 밴드가 에너지를 끌어오는 곳 역시 바로 이 퀀텀 존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위의 두 차원이 양자 영역으로 결합된 MCU에서는, 퀀텀 밴드의 에너지원이 곧 양자 에너지임을 미루어 볼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양자 에너지가 시공간을 뛰어넘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력한 힘이라는 것까지 추측할 수도 있으리라. 실제로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에서 정복자 캉 또한 멀티버스를 이동하기 위해 양자 에너지로 코어를 충전했었으니 말이다.


과거 치타우리 셉터와 테서렉트, 아가모토의 눈 등 인피니티 사가 속 아티팩트들은 그 속에 스톤을 품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니 멀티버스 사가의 아티팩트들도 멀티버스 혹은 차원 이동과 관련된 성질을 공유하고 있으리라 예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가령 텐 링즈와 뱅글, 어쩌면 드라마 <로키> 속 계속 존재하는 자의 템패드까지 모두 양자 에너지를 힘의 원천으로 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양자 영역이 점점 더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만큼, 멀티버스를 넘나들 앞으로의 이야기에 이곳이 핵심적인 장소로서 기능할 것은 명확해 보인다.


양자 영역


영화 <더 마블스>에서 다른 누구보다 미즈 마블에게 주목해야 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엑스맨, 뮤턴트들의 등장이 드라마 <미즈 마블> 속에서 예고되었기 때문이다. 카말라의 몸을 구성하고 있다던 ‘돌연변이’ 유전자와 그에 맞춰 흘러나온 엑스맨 TV 시리즈의 주제곡은,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속 프로페서 엑스의 등장과 함께 엑스맨의 합류가 머지않았음을 알리는 매우 직접적인 암시였다.


그리고 이러한 예고 끝에 <더 마블스>의 쿠키에 이르러서야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엑스맨의 출연이 성사되었는데, 재밌게도 그들의 세계로 넘어간 인물은 여지를 쌓아왔던 카말라가 아니라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는 모니카 램보였다. 어째서 마블은 카말라를 우리가 보던 지구에 남겨놓고, 모니카를 엑스맨과의 사절로 선택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모니카를 구조한 바이너리가 양팔에 차고 있던 퀀텀 밴드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무수히 많은 캉들과의 전쟁이 벌어질 <캉 다이너스티>나 온 멀티버스의 히어로와 빌런이 집결할 <시크릿 워즈>를 대비해, 필시 각각의 진영마다 차원을 이동할 힘이나 도구가 필요하게 될 테다. 누군가는 웜홀과 양자 영역을 통해, 누군가는 마법이나 차베즈의 능력을 통해, 또 누군가는 비프로스트를 사용하여 저마다의 문을 열어가겠지.


그 순간이 찾아왔을 때 닉 퓨리와 미즈 마블을 비롯한 캡틴 마블 진영은 다시 둘로 나뉜 퀀텀 밴드의 힘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마블은 이제껏 남겨왔던 힌트에도 불구하고 카말라를 이곳에 남겨놓은 것이 아니었을까. 영화의 결말에서 모니카의 귀환을 기다리던 캐럴의 대사처럼, 언젠가는 바이너리가 뱅글을 사용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재회의 문을 열어내기를 한껏 기대해 본다.



분명 <더 마블스>는 완성도를 차치하더라도 단순한 재미보다 아쉬움이 더 크게 남는 작품이었다. 말살자라 불린 히어로와 지도자로 추앙받는 빌런, 전편부터 이어진 크리와 스크럴의 대립에 세 히어로 간 감정적인 어긋남까지. 얼마든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었음에도, 영화는 MCU 최단 러닝타임을 선택하며 얇고 좁은 단 한 명의 성장담으로 남고 말았다.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에 긍정적인 감상을 보내온 것은, 영화가 하나의 개별 작품으로서는 아쉬울지언정 MCU라는 거대한 파이 속에서는 나름의 역할을 해내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과히 피상적이고 산발적이었던 페이즈 4와 5의 작품들이 양자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어져 정리될 수 있었고, 드라마로 데뷔한 히어로들이 커다란 이질감 없이 스크린에 안착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코믹스 속, 드라마 속, 혹은 20세기 폭스나 소니의 유니버스 속 MCU 합류를 기다리는 수많은 캐릭터들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었기에, 나는 영화로부터 앞으로도 마블에 기대할 에너지를 다시 한번 받아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의 침체가 계속되어 언젠가 혹평이 주를 이루는 때가 온다면, 내 기대도 결국에는 사그라들 수밖에 없겠지. 그러니 부디 그때가 오기 전에 마블이 작품들의 퀄리티에 조금 더 유념해 주기를, 그렇게 마블의 인기가 다시 반등하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함께 모여 저마다의 상상을 나누던 그때의 즐거움이 우리 앞에 돌아오기를 팬으로서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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