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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리 Jan 12. 2024

을로 보셨다면 심히 착각하신 겁니다만.

나는 광고‘대행사’에 다니지만, ‘광고주’와 ‘대행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지양한다.


우선 ‘광고주’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밉다. 내가 사랑하는 광고에 주인을 뜻하는 '주主'가 붙으니, 이것이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또한 ‘대행사’라는 단어에는 '타자를 대신해 어떤 일을 행함'의 뜻이 담겨있기에 주체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어불성설임을 담고 있다. 클라이언트는 광고회사의 ‘전문성’을 빌어 그들의 브랜드를 광고하지만, 어째 일을 하다 보면 갑과 을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는 퇴색되고 바스러져 갑질을 당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클라이언트들은 마치 자력으로 나와 동료의 노동력을 무제한 구매한 것과 같이 행동한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야근, 출장, 파견을 요구하고, 부글부글 끓는 내 속에 집중하다 문득 내 옆을 바라보면 상사는 웃으며 그러겠다고 한다.


이런 요청을 한다니…. 예의 없는 사람!


입 밖으로 이런 말을 내뱉지는 못하리라. 하지만 번복되는 무례함에 반박하지 못하는 상황에 분통이 터진다.

나는 광고업이 좋아 광고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 들어왔는데, 회사는 끊임없이 나에게 서비스업 종사자의 자세가 우선이라고 닦달하기도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몇몇은 이러한 환경을 못 견디고 인하우스에 들어가기도 하고,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나 또한 최근 이 광고업계의 고질적인 ‘관계 맺음’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다. 부당한 요청에도 상냥한 로봇처럼 대응해야 하는 이 관계는, 근본적으로 나와 내 일에 대한 자존감에 생채기를 낸다. 아무리 그들이 광고회사 직원들을 ’을’로 본다 한들, 그들의 언어가 지침이나 명령이 되어 우리에게 받들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충분히 안다. 이를테면, 내가 일해온 두 광고회사의 주 클라이언트는 같은 그룹사였고, 나의 회사나 그들의 회사나 어차피 주인은 한 오너였다. 그 오너의 왼쪽 주머니에서 오른쪽 주머니로 돈을 옮기는 일을 하면서 그 돈을 전달해 주는 고용인은 또 다른 고용인에게 갑질을 하는 모양새다.


다만, 광고회사 사람들은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대응하고 만족도를 높여주는 활동이 '프로'로서 더 적합하다고 느끼기에 그렇게 행동할 뿐이다. 하지만 가랑비에 어깨 젖는 줄 모르고 몇십 년 이 일을 하다 보면 점점 비굴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 광고업을 오래 견뎌내기 위해 스스로를 지킬 방법을 찾는다. 요즘은 부당한 클라이언트의 요청에는 뜸을 들이는 방법으로 나름의 항쟁을 하기도 한다. 칼답 하는 내 성향에, 조금이라도 회신이 늦어지는 건 '나 지금 불편하다.'는 걸 티 내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를 느끼고 마음을 충분히 누그러뜨리는 나만의 방법으로부터 회사에서 내 태도는 좀 더 명확해지고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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