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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리 Jan 31. 2024

직장인 부러움병

직장인이 너무나도 부러워졌다.


퇴사 후 반년 좀 지났을까. 아침 아홉 시 체육복을 걸치고 책 가득 백팩을 멘 나와 그들은 달랐다. 대부분의 길 위 사람들은 사원증을 주머니 한편에 구겨놓거나 건 채로 일을 하러 가고 있었다. 한때 나도 이들과 같이 출근했는데. 맨 얼굴의 무방비 차림을 한 내가 그리도 부끄러웠다. 은행대출 설문조사의 직업을 묻는 란에 '무직' 혹은 '주부' 밖에 체크할 수 없는 내 애매한 신분이란. 그 우울감은 점점 기폭제가 되어갔다. 그중 가장 쓸쓸한 시간은 점심시간.


혼자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자면 식사를 마치고 온 직장인들의 수다가 뒤편으로 들린다.

“대리님, 요즘 넷플릭스 뭐 보세요?”

“어제 축구 대박이었어요.”

대화를 풍족하게 이끄는 소재 한 꾸러미가 내 귓가로 스친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주인의 귀가를 기다리는 강아지 마냥 남편의 퇴근을 기다렸다. 그리고 참기 힘들 만큼 외로울 때에는 카톡으로 내 마음을 표했다. “나도 수다 떨고 싶어."


전 직장에서는 밥도 거르고 점심시간만 되면 필라테스에 다녀올 만큼 바쁜 내 시간을 보냈던 나였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동료와의 일상적인 점심시간이 애틋해지다니 사람 일은 참 모를 일이다. 이렇게 '직장인 부러움병'에 걸린 것이 다시금 재취업 준비의 계기가 됐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이직에 성공한 이후, 점심시간을 함께 할 동료가 생긴 나는 어찌나 신이 났던지. 점심시간이면 새로운 동료들과 직장 인근 맛집을 찾아다니고 2차로 커피를, 부족한 날은 3차로 디저트까지 먹었다. 그러다가도 다시금 신년이 되자 한두 명씩 개인 약속을 잡으며 동료들이 다 함께 점심을 먹을 일이 줄어들고는 했는데, 혼자 뭐 먹을까 고민하는 내게 팀 막내가 따뜻하게 말해주었다.


- 프로님 혼자 밥 먹어야 하는 날이면 저랑 같이 가시죠.


브런치 가게에서의 우아한 혼밥은 물론이고, 레스토랑에서 고기 썰어 먹는 것쯤이야 가뿐히 해 내는 나였기에 혼밥의 최고 레벨을 찍어온 이력이 있다. 그러나 '직장인들끼리 점심 먹는 게 그리웠다'는 내 후기를 토대로 동료들은 나를 '혼밥 초보'로 믿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여전히 나는 혼자 먹는 밥도 좋아하고, 밥 대신 카페에서 한 시간 여유를 만끽하는 시간도 사랑한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는 또 생각해 본다. 내가 휴직을 하고 카페에서 다소 외로이 공부를 하던 와중에 희희낙락 수다 나누던 그 무리 중 한 명이 내가 되었구나. 개구리가 올챙이 적 시절을 떠올리듯, 혼밥 지수 6, 함밥 지수 4 정도로 비등비등할 때면, 혼자 밥 먹고자 하는 마음을 살짝 누르고는 한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힘차게 "점심식사 같이 가시죠!"를 외친다. 나도 모를만치 이상하게 그립고 부러웠던 그 점심시간을 즐겨 보기로 한다. 렛츠 함밥 투게더.


매거진의 이전글 을로 보셨다면 심히 착각하신 겁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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