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편과 결혼한 가장 결정적 이유는 너무나 재미있는 대화 때문이었다.
난 대화의 주파수가 맞는 사람이라면 덮어놓고 좋아하는 편인데, 외모나 조건보다 티키타카가 있는 사람이 훨씬 좋았다.
아무리 외모가 훌륭하고 매력적인 사람이어도 대화가 맞지 않으면 흥미를 금방 잃었다. 그러다 같이 있으면 제일 웃긴 남편을 만나 1년 만에 결혼을 결심했다.
내가 “오빠랑 대화가 너무 재밌어서 결혼했어.”라고 말하면, 남편은 억울해한다. 외모가 괜찮아서 결혼했다는 말을 듣고싶다나. 그런데 대화의 주파수가 맞아서 결혼을 했다고 하니, 내 결혼은 무척이나 성공한 것 같다고 말하는 식이다. (그는 내 전남친들의 사진을 보고 내 말이 진심임을 알며 더 억울해하는 눈치다.)
이토록 자존감 높고 자기애가 충만한 사람이라는 걸 결혼 전에 알았다면, 결혼 결심이 조금 더 어려웠으려나 싶다. 그렇다고 남편 같은 말동무를 어디서 찾을까 잠시 고민해 보면 이 또한 내가 감당할 만한 일이다.
언젠가 이효리가 이상순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 이효리 : 오빠는 나랑 왜 결혼했어?
- 이상순 : 네 항공 마일리지 쓰려고
- 이효리 : 나는 오빠랑 이야기하는 게 제일 재밌어. 난 오빠랑 이야기하려고 결혼한 거 같아
그 말을 들으며 나도 무릎을 탁 치며 “맞다, 나도 나도”했다.
하지만 아무리 잘 맞는 짝꿍이어도, 결혼생활 중 다툼은 피할 수 없다.
결혼은 2시간짜리 로맨스물이 아니다. 엔딩크래딧이 없는, 수십년 동안 카메라가 돌아가는 어드벤처물 혹은 서스펜스에 가깝다. 예상 못한 구간에서 발생하는 갈등 속에서 문제 해결의 단서를 찾거나, 혹은 이마저도 덮어놓고 무언가 막연히 풀리기를 기다리면서, 다시금 같이 손 붙잡고 미션을 완수할 수 있는 “방탈출 게임” 같은 것이다.
두 사람이 의견을 모으지 못하면 결국 게임 오버로 끝난다. 이 게임에 성공하기 위해선, 우린 대화를 통해 수많은 단서를 찾고, 각자 지킬 수 있는 약속들을 통해 서로를 맞춰 나가야 한다.
“생활비는 제 때 제때 가계부에 기록을 해 줬으면 좋겠어.“
“맥주는 일주일에 한 번만 마셨음 해. 단 나랑 마시는 건 제외. “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말들로 각자 원하는 걸 명확히 이야기하고, 또 지켜야 한다. 프러포즈와 같이 ‘평생 행복하게 해 줄게.’ 같은 두루뭉술한 약속 말고.
나는 얼마 전 미용실에서 다소 과한 지출을 하고 왔고 (파마비가 오른 걸 어쩌나), 남편에게 예산을 사전 공유하지 않았고 (예상비용도 부부간 공유해야 하는가), 내 기준 과하진 않았으나 우리 집 재정 담당자의 눈에는 거슬렸으니 우린 또 하나의 약속을 했다.
나는 큰 소비 전에 예산을 사전 공유하기로, 남편은 내 소비에 화부터 내지 않기로.
아무 말도 않는 냉전보다야, 대화를 통해 지킬 수 있는 숱한 약속들을 만들어내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진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