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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영 Sep 03. 2022

멸치가루

너무나도 선명한 죽음의 경험, 유체이탈

이른 아침 냉장고 청소, 그리 꼼꼼한 성격이 아닌 나의 평소 냉장고 정리법은, 냉장고 속 제품을 대충 본다. 오래된 것을 가려낸다. 비움의 미학 실천, 지저분한 것은 버린다. 한번 쓱 닦아준다. 냉장고 정리를 끝낸다. 간단하다.


그런 내가 오늘 뭔 바람에 냉동실을 꼼꼼히도 치우기 시작했다. 냉동고 안이 뭐가 그리 복잡하고 많이 들었던지 한 칸 한 칸 치우며 슬슬 지쳐가던 그때, 냉동실 구석 한편 조그만 통 안에서 2005년 제조 멸치가루를 발견했다. 오늘이 2018년 2월 14일이니 참 오래도 되었다. 기분이 묘했다. 현재 나이 마흔아홉, 나에게는 이른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일찍이 마흔넷의 나이로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환갑을 겨우 넘기고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두 분 다 일찍 생을 마감하셨고, 딸은 엄마를 닮는다는 말을 익히 들었던 나는, 생의 마지노선을 마흔넷으로 생각한 때가 있었다. 그 세월이 과거가 되고 5년이나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한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아들애가 4살쯤 명치가 조여 오는 고통으로 응급실을 간 적이 있었다. 혼자 둘 수 없어 응급실로 데려 온 아들은 천진난만하게 응급실 이곳저곳을 살피며 돌아다녔다. 그런 아들을 보며 '저 어린아이를 남겨두고 죽으면 어떡하지!!' 나의 아픔보다 아이에 대한 염려가 먼저였다. 내가 엄마를 닮아 일찍 죽고 내 아이가 나처럼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기면 안 되는데 하는 성급한 염려를 했다.


병명은 역류성 식도염, 병원에서는 괜찮다고 했지만 몸무게가 8kg이 빠졌다. 아픔이 계속되는 어느 날 거실에서 지쳐 잠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나 자신'이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이구나' 생각하며 이젠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신랑이 나를 깨우는 모습을 보며 나는 깨어났다.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되는 '유체이탈'이었다.  그 후로도 가위눌림과 잦은 악몽으로 나의 삶은 고통이었다.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이제는 많이 좋아져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래도 맘 한편 죽음의 트라우마를 계속 가지고 살았었다.


아들 초4에 북경으로 가족여행을 나서는 당시도 비행기를 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여행을 가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혹여 이번 여행이 내 인생에서 가족과 하는 첫 해외여행이자 마지막 해외여행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염려로 여행을 다녀왔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여러 번의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해외여행을 다니고 있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한 걱정이 항상 먼저였던 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때는 그랬다. 죽음이 두려웠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잘 안다. 하지만 지켜주고 싶은 아이가 있을 땐 삶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는 것 같다. 그래도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는 살아야지,  초등학생이 되면 직장은 다니고 지 밥벌이는 할 때까지는 살아야지, 계속해서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기고 욕심이 생겼다. 그럴수록 더 두려웠다. 죽음의 두려움에 현재를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쓸모없는 염려로 불안했던 나, 그런 내가 생의 마지노선 마흔넷을 넘기고, 이런 넋두리를 쓰고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편안해진 나는, 이제야 나의 삶에 집중하며 온전히 나로 살아가고 있다. 그 누구도  삶의 마지막, 죽음의 시기를 모른다. 모든 것은 운명에 맡겨두고 지금-여기, 현재에 만족하며 많이 웃고, 사랑하며 잘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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